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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정 고국산천이 그립다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36-마지막 회)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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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0  16: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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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헐리우드 거리에서 만난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단독으로 찍으려고 기다리다가 빼어난 여성의 미모에 넘어가 나도 한 장 찰칵. [사진제공-임영태]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의 출국 수속

6월 27일 토요일. 새벽 3시, 우리는 아바나 숙소를 출발했다.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지금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가는 길이 약간은 낯설다. 아마도 밤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옆에 앉은 운전사의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덩치는 내 두 배는 될 듯 엄청나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150킬로쯤 나갈 것 같은 라티노 체형이다. 어둠속을 택시가 질주한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공항이 안 나온다.

‘이 친구,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리고 가봐야 아무 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기분이 으스스하다. 나중에 원장님이 나를 놀려 먹었다. ‘앞자리에 앉아서 쫀 거 같던데?’ 그 말에 난 그냥 웃어 넘겼지만 약간 걱정이 됐던 건 사실이다. 멕시코라면 충분이 그런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곳은 혁명 쿠바, 사회주의 쿠바가 아닌가. 쿠바와 멕시코 치안은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쿠바나 멕시코나 비슷한 사람들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제 우리가 가게 될 미국은 또 다른 나라다.

우리는 약간은 시간 여유가 있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 동안 CD를 몇 개 샀다. ‘체 게바라 노래’나 ‘관타나메라’ 같은 쿠바 음악이었다. 면세점도 아닌 바깥 대합실에서 샀으므로 가격이 비쌌다. 안에 면세점이 있느냐고 물으니 가게 주인이 없다는 식으로 답한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그 가게보다 더 큰 면세점들이 있다. 어쨌든 환전한 쿠바 돈(CUC)은 공항에서 다 쓰고 가기로 했다. 남겨봐야 쓸 곳이 없다.

수속은 느리게 진행됐다. 직원들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꾸물꾸물된다. 수속을 밟고 있는 직원들이 모두 남자여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출국 수속 직원들이 대부분 여성인데 남성들보다 훨씬 손이 빠르고 일처리가 깔끔하다. 수하물을 부치고, 들어올 때 제출하고 남은 비자 한쪽을 제시했다.

그때 우리 수하물 처리를 맡은 남자 직원이 슬며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좋은 자리가 있는데 75불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우리 바로 옆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아저씨가 계속 화를 내고 있다. 가만 보니 수하물표 인쇄를 하는데 계속 종이가 걸리면서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몇 번씩 기계를 빼가지고 옆에 가져갔다 다시 가져오기를 반복한다.

돌아다보니 우리 뒤에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다. 과연 6시 전까지 줄 선 이 승객들의 짐 수속을 다 밟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모르겠다. 우리는 끝났으니, 들어가서 탑승할 때까지 쉬도록 하자. 안녕, 쿠바여! 언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하늘에서 본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모습(JOSE MARTI INTERNATIONAL AIRPORT, facebook). [사진제공-임영태]

 

   
▲ 체 게바라 노래 ‘아스따 시엠쁘레 꼬만단떼’를 불러 인기를 얻은 프랑스의 가수 겸 배우 나딸리 까르도네(Nnathalie Cardone). 그녀는 다른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노래를 불러 대중화에 성공했다. [사진제공-임영태]

 

   
▲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출국 수속장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사진3>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면세점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쿠바 아바나에서 만난 비엔날레 작품. [사진제공-임영태]

 

   
▲ 투어버스 위에서 바라본 말레꼰 해변.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 거리에서 마주친 체 게바라의 초상.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 [사진제공-임영태]

 

   
▲ 라보카 해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 항구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 말레꼰 해안에 정박 중인 유람선. [사진제공-임영태]


멕시코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우리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쿠바나 항공의 탑승을 완료했다. 비행기는 6시 정각에 이륙했다. 7시 45분에 멕시코시티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했다. 시차가 1시간 늦어졌으니 그만큼의 시간을 득봤다고 해야 할까? 글쎄 그게 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표준시차 때문에 한 시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멕시코 입국 수속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내 얼굴이 시꺼멓게 타서 도둑놈 인상이었던 탓일까? 아니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짐 가운데 의심스러운 것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하긴 약간의 해프닝이 있기는 했다.

비행기에 내려서 짐을 찾아가지고 입국수속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마약 탐지견이 내 옆에 와서 ‘킁킁’ 거린다. 개를 끌고 다니던 직원이 내가 들고 있던 노란 비닐 가방에 파란색 테이프를 붙이며 절대 손을 대지 말라는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아침에 산 짠맛나는 그 비스켓을 안 버리고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게 확인이 되어서 무사히 넘어갔다.

다음 우리는 모든 짐을 전부 검색대에 올려놓고 통과시켰다. 검색대를 지나 우리 일행의 모든 짐을 전부 카트에 싣고 나가는데, 그 중 내 캐리어를 지목하며 열어 보라고 한다. 나는 잠가둔 캐리어 열쇄를 열고 짐을 좍 펼쳤다.

술 때문에 그러나? 아닌데? 술병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담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닌데? 여직원이 짐 가운데서 책을 들춰본다. 내가 책을 많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LA에 사는 친구에게 주려고 10권짜리 세계사 한 질, 단행본 한 권, 그리고 쿠바-멕시코 여행서 2권, 멕시코에서 산 유물관련 도록 2권 등 책장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캐리어 속에 책이 많았다. 그들은 책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방 밑바닥까지 살펴보고는 닫으라고 한다. 가방 밑바닥에 있었던 물티슈까지 살펴본 다음이다. 그게 의심스러웠던 것일까?

그렇게 가방 검색을 당하고 나니 기분이 별로다. 그래도 더 이상 귀찮은 문제 생기지 않고 무사히 통과했으니 그냥 감사해야 할 따름이다.

입국 수속이 끝나 밖으로 나온 다음 우리는 다시 멕시코 항공(에어로 멕시코)으로 이동했다. 거기까지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야, 이거 멕시코 국적기라고 확실히 잘 해놨네.’ 이런 생각이 든다. LA 공항에도 이런 시설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걸어서 이동했으니. ‘교수님, 맹한 우리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 

티켓팅과 수하물 부치는 절차가 확실히 쿠바보다는 빠르고 친절하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조금은 느리게 일할 필요도 있지. 그리고 불친절하지는 않지만 약간은 손님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도 필요하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손님은 ‘왕’이라면서 너무 일하는 직원들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약간은 바뀔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켓팅을 하고 수하물을 붙이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어서 그런가? 멕시코의 출국장 검색 과정이 장난이 아니다. 하긴 미국 주변 국가들의 경우, 미국에 준하는 검색절차를 밟도록 협조 요청을 한 상태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는데 그걸 실감하게 된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마침내 ‘OK' 사인이 떨어졌고, 비로소 모든 검색절차가 끝났다. 이거, 혹시 미국 들어갈 때는 팬티까지 벗어보라고 그러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상관있나? 걸릴 게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기분은 엄청 나쁠 것이다. 혼자 지레 상상해 본다.

   
▲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Benito Juarez Arptaerial) 전경. [사진제공-임영태]

 

   
▲ 국제공항 터미털2 출국수속장과 내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소칼로 헌법 광장을 중심으로 한 멕시코시티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소칼로 광장 주변 모습 1. [사진제공-임영태]

 

   
▲ 소칼로 광장 주변 모습 2.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시티 거리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시티의 예술궁전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시티 알라메다 공원에 있는 멕시코의 국부 베니토 후아레스 추모비(Al Benemerito Benito Juarez La Patria). [사진제공-임영태]

 

   
▲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 부근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만난 유물들 1.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만난 유물들 2.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 마야 문명 유적. 치첸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 [사진제공-임영태]

 

   
▲ 멕시코 툴룸의 마야유적. [사진제공-임영태]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우리 비행기는 12시 35분 LA행이다. 12시부터 탑승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최소 1시간 이상은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2층에 자리한 공항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쿠바에서 지내다 며칠 만에 먹어보는 멕시코 음식이 반가웠다. 입맛에도 맞았다.

그런데 LA행 멕시코 항공이 20분 연착이라는 기내방송이 들려온다. LA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데 전화가 제대로 안 된다. 할 수 없이 문자와 페이스 북으로 연착사실을 알리는 메시지를 띠운다. 그래도 직접 통화를 하고 싶어서 계속 전화를 했지만 안 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해외로밍을 제대로 하지 않고 차단시켜 놓은 상태에서 풀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할 수 없다. 그냥 가자. 연락은 되었겠지. 안되면 서로 좀 기다리지 뭐.

하지만 20분이나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원래 도착예정 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그렇다면 40분이나 빨리 날아간 셈이다. 그리고 까다로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미국 입국 수속 간단히 끝났다. 우리는 짐 찾고 입국수속 밟는데 한 시간쯤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겨우 20분 만에 모든 절차가 싱겁게 끝났다. 오후 2시 40분 LA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2시 30분도 안 돼 도착했고, 수속을 끝내고 공항대합실로 나가니 3시가 채 안 됐다.

우리를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는 아직 안 보인다. 한 10분쯤 기다리다가 전화를 한다. 하지만 역시 내 핸드폰 전화가 안 된다. 할 수 없이 통신사에 전화를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로밍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니 설명대로 따라 하라고 안내해 준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그 안내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는 수 없이 이 대표 전화로 했더니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지금 막 공항 주차장에 차를 대는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3시 20분쯤에 만날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난 게 몇 년 만인가? 6년만이다. 2009년 부친상을 당해 그가 서울에 왔을 때 본 게 마지막이다. 반갑다, 친구야. 우리는 악수를 했다.

우리 모두의 여행은 여기서 끝난다. 교수님과 원장님 두 분과 우리는 헤어진다. “서울에서 다시 봐요. 조심하십시오.” 이 대표와 나는 친구집에서 며칠 지내며 LA 구경을 좀 한 뒤에,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다. 교수님은 오늘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자고 내일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원장님은 미국 여행을 얼마간 더 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LAX) 모습과 조망도. [사진제공-임영태]

 

   
▲ LA 국제공항 원경. [사진제공-임영태]

 

   
▲ LA 국제공항 입출국 수속장. [사진제공-임영태]


황량한 캘리포니아의 자연 경관

친구집은 LA 한인 타운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에는 라티노와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약간은 주택가격이 싼 편에 속하는 지역이라고 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한 뒤 짐을 내려놓고 바로 다시 차에 올랐다. 부인과 함께 4명은 실은 차는 LA 근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산들이 황량하다. 풀도 나무도 모두 메말랐다. 산은 산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산이 아니다. 이 대표가 계속해서 “저게 무슨 산이야. 푸른 나무가 있고 싱싱한 풀이 있어야지. 저건 산이 아니야. 우리나라 산이 정말 산이지”라고 말한다. 나도 이 대표 생각에 동감했지만 한편으로, ‘저 산 너머가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사막’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은 납득이 되기도 했다. 애리조나 사막과 네바다 사막이, 그리고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라스베가스가 저 너머에 있다고 한다.

나중에 LA 주변을 돌아보면서 보니까 강도 모두 메마른 건천이었다. 원래 건조한 지역인데다가 비가 오지 않아서 물부족이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산불이 많이 나는 것도, 한번 산불이 나면 끄기가 힘든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특히 LA의 경우는 물을 모두 주변 주에서 사다가 쓰는 형편이어서 물을 아끼도록 시에서도 강력히 계도하고 있다고 한다. 전에는 주택에 잔디 심고 물주기를 권장했는데, 지금은 잔디를 캐내면 보조금을 주고 일주일에 3회 이상 물을 주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풍경과 물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역시 우리의 ‘고국산천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아름다운 산천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도 아껴 써야 할 것이고 자연도 파괴하지 않는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캘리포니아 남북을 관통하는 5번 프리웨이 도로를 타고 2시간가량 북쪽으로 달렸다. 그 사이 우리는 주로 백인 중산층이 사는 숲과 집들이 조화를 이루며 조경이 잘 된 작은 도시를 지나서 베이커스필드 고갯길을 넘었다. 고갯길 옆으로 고먼 패스, 작은 통나무캐빈, 렌트용 트레일러 등이 준비돼 있는 RV리조트로 보았다. 그러고도 얼마간 더 가다가 옆길로 빠져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갔다. 그곳에 2세들의 교육공동체를 위한 농장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마침 그날 저녁 농장을 돌보던 한 분의 귀국을 기념하는 송별회가 그곳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더니 이미 파티는 시작한 상태였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한 뒤 파티에 합류했다.

멕시코만까지 원정을 가서 잡은 대어로 떤 푸짐한 생선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어(참치) 종류로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낚시로 잡았다는데 이건 이 분야의 프로가 아니고는 도저히 낚을 수 없는 대어였다. 돼지 바비큐도 있고, 농장에서 기른 싱싱한 무기농 야채도 듬뿍 마련돼 있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한국김치도 잔뜩 있었다.

나와 이 대표는 그동안 못 먹은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생선회, 생선구이, 돼지바베큐를 안주삼아 소주와 맥주도 한잔했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 황량한 캘리포니아의 산 풍경. 캘리포니아 지역은 여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 풀과 나무들이 시들어 황량해 보인다. [사진제공-임영태]

 

   
▲ 캘리포니아의 산 풍경. 겨울과 봄에 약간의 비가 내려 그나마 초목이 초록색을 띠게 된다. [사진제공-임영태]

 

   
▲ 비교적 수목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산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로스엔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캘리포니아 주 도로 지도. [사진제공-임영태]

 

   
▲ 농장 주변의 초목도 여름이지만 생기를 잃고 시들어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농장 비닐하우스에 싱싱한 유기농 채소가 자라고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사진28> 농장에는 개와 더불어 닭, 오리도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LA 게티 센터를 둘러보다

6월 28일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농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농장은 2만 5천 평 규모로 상당히 넓었고, 그 일부에 아이들을 위한 생태농원이 조성돼 있었다. 농장에는 나무 위의 집이 있고, 비닐하우스에서 치커리, 상추, 마늘 등의 무기농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오리, 닭, 토끼 등의 작은 가축들도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 후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들을 채집했는데, 그것들은 공동체 성원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게 될 것들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로 해장과 숙취에 좋은 콩나물 김칫국이 준비돼 있었다. 쌀밥과 함께 생선, 고기, 김치, 야채가 준비됐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족구를 2게임이나 뛰었다. 우리 일행이 일찍 떠날 계획이 아니었다면 오전 내내 족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있을 경우 누군가는 승부욕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10시 30분, 우리 일행은 농장을 출발했다. LA 외곽에 위치한 게티 센터(Getty Center)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게리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부호로 미술품 수집에 많은 돈을 투자한 인물이다.(주1) 그는 지금의 자리에 미술관을 지어 사람들에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차비만 18달러를 받는다. 게티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지만 그의 가문에는 비극이 뒤따랐다고 한다.(주2)

게티 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모노레일 전차를 타고 센터로 입장했다. 정말 게리센터는 산위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태평양 바다와 LA 다운타운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경치도 좋고, 미술 작품을 비롯한 많은 볼거리와 함께 휴식처로서 좋은 곳이었다. 도시락 싸서 하루쯤 지낼 수 있는 곳이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하루 종일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20달러를 주고 미술관 도록을 한 권 구입했다.

이곳에는 5400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한 바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와 세잔의 ‘사과’, 모네의 ‘건초더미’와 ‘봄날’ 등 인상파 화가들의 걸작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또한 루벤스가 한복을 입은 조선 남자를 모델로 그린 드로잉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주3) 그 외에도 미술품과 수집품이 상당히 많아서 꼼꼼히 본다면 며칠은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도, 미술품을 감상할 능력도 부족한 사람들이어서 대충 둘러보는데도 익숙한 편이다. 우리는 센터를 건성으로 휙 둘러보고 2시 30분경에 게리 센터를 떠났다. 친구가 교회 성가대원이어서 그 준비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내로 가는 길도 상당히 막히는데다가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해변길을 헤매다가 교회에 늦어졌다. 친구 부인과 우리는 한인타운의 한 음식점에 내리고 친구만 먼저 교회로 갔다. 친구는 점심도 못 먹어 배가 상당히 고팠겠지만 성가대 연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가야 했다.

우리는 한인타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는 육개장을 시켰는데 상당한 수준급이었다. 한국의 육개장 전문점에 버금가는 그런 맛이었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가격도 생각보다는 저렴했다. 한국보다는 약간 비싸지만 미국 물가수준 생각하면 적절한 수준이라고 여겨졌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음식값이 ‘원가격+세금(10%)+팁(15%)’으로 구성돼 있어서 계산이 약간 복잡했다. 육개장의 경우, 세전 가격이 9달러쯤 됐으니까 세금(0.9달러)과 팁(1.35달러)을 포함하면 11.25달러(한화로 약 13,000원) 정도 되는 셈이었다.

점심 식사 후 교회로 향했다. 이미 주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교회였지만 성가대 수준은 상당했다. 오랜만에 교회에서 듣는 성가여서 그랬던지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경공부였다. 예수 재림을 주제로 한 목사님의 성경공부 내용은 상당히 신선했다. 이 대표는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신학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예배 후 공동식사 시간이 있었다.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준비해 와서 예배 후 공동식사를 한다고 했다. 떡, 파스타, 커피, 과일이 준비되어 있어서 푸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막 점심을 먹고 난 뒤라 배가 불러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과일과 떡을 몇 조각 맛있게 먹었다.

교회 만남 뒤 우리는 몇 사람과 함께 한인 타운에 있는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뒤 다시 맥주집으로 이동해서 생맥주도 한잔했다. 그러다 보니 12시가 다 돼서야 숙소인 친구집으로 갈 수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부인과는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 게티 센터의 건립자 장 폴 게티.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 전경.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바라본 태평양 바닷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바라본 LA.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만난 미술품 1.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만난 미술품 2.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만난 미술품 3.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만난 미술품 4.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에서 만난 미술품 5.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 정문 앞에 있는 소나무. [사진제공-임영태]

 

   
▲ 게티 센터 야외 전시작품. [사진제공-임영태]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 헐리우드 돌아보기

6월 29일 월요일. 나는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났다. 친구 부인은 출근을 했고, 친구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은 북어 해장국에 김치가 있는 한식이었다.

우리의 처음 계획은 태평양 바닷가에 가서 한나절 노는 것이었다. LA에는 8대 비치(주4)가 있을 정도로 해변이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도저히 갈 수 있는 시간이 안 났다. 아마 몸이 덜 피곤했다면 서둘러서 갔을 것이다. 피곤하더라도 우리가 멕시코-쿠바 여행할 때처럼 생각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동안 여정으로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친 상태였고, 꼭 비치에 가서 물놀이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그다지 안 들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 뒤 점심은 한인타운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원장님을 찾아 나섰다. 저녁 약속이 돼 있었는데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원장님이 묵고 있는 집은 LA 북쪽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에서 30분 거리였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친구집과는 1시간 이상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친구 차를 타고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니 산 중턱에 위치한 원장님 숙소 근방에 도달했다.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기가 맑고 전망이 좋았다. 아마도 주변에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와 빵집, 한국어로 된 학원 간판도 보였다. 우리는 한국인 빵집에서 잠시 쉬면서 차를 한잔 마셨다.

이틀 만에 원장님과 다시 해후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 장소는 한식당이었는데 꽤 비용이 나올 법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LA에 거주하면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통일뉴스> 상임고문인 이활웅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6월 30일 화요일.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생존해 계신 것으로 알려진 마지막 광복군 윤영무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이 대표가 한국을 떠날 때 미국에 가게 되면 그 분을 꼭 한 번 찾아서 인사를 전해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헤맨 끝에 집은 찾았으나 끝내 선생님은 못 만났다. 그 주변에서 이웃에 살고 계시는 한국인 여성분을 만났는데, 그의 전언에 따르면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뒤 우리는 선생님이 별세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년 95세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생하신 선생님의 영전에 늦게나마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원장님을 픽업해서 친구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뒤 맥주도 한잔했다. 오후 3시경 친구 부부가 저녁 파티를 위한 장을 보는 동안 우리 세 사람은 헐리우드 거리 구경에 나섰다. 이 대표는 뭐 이런 데를 구경하느냐는 식으로 너무 시큰둥해 했다. 하지만 미국 영화와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헐리우드 거리를 열심히 구경하면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마릴린 먼로 모형이 생각보다는 초라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마릴린 먼로는 인기가 있었다. 나는 그녀 모형 앞에서 단독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여성들이 너나없이 먼로 옆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멕시코계 메스티소로 보이는 미모가 빼어난 한 여성이 그 옆에서 시간을 한참 소비하는 바람에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던 나는 그 여성과 마릴린 먼로가 함께한 장면도 한 장 덩달아 찍었다.

저녁에는 우리를 위한 송별 모임이 있었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주변 분들이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토요일 농장에서 만났던 여러 분들을 다시 만났다. 친구 부부가 준비한 음식과 술, 그리고 다른 분들이 가져온 술과 함께 대화가 이어지면서 만남은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우리가 쿠바에서 샀던 술 ‘레헨다리오’도 이때 맛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달았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혹 음주단속에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지만 그 뒷 소식은 알지 못한다. 그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지금 이 자리를 통해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다.

“부디 이국땅에서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친구와 부인에게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두 사람 덕분에 우리는 LA에서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친구는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차를 끌고 다니면서 구경시켜 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친구는 그날 저녁 한동안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있어야 했다. 아마도 무리를 한데다가 계속 운전을 하고 다니느라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허리도 아픈데 너무 고생했다. 부인의 후한 대접에도 감사드린다. 직장 생활로 바쁜 중에도 우리 환송파티까지 준비하고, 너무 고생했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신세를 갚아야 할 텐데 그럴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  ‘캐리비언의 해적’ 주인공 조니 댑 분장을 하고 거리에서 공연하는 무명배우의 열연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헐리우드 박물관. [사진제공-임영태]

 

   
▲ 초상화 박물관. [사진제공-임영태]

 

   
▲ 아카데미 상 모형. [사진제공-임영태]

 

   
▲ 스타들의 거리에서 만난 별. [사진제공-임영태]

 

   
▲ 헐리우드 거리의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정말 고국산천이 아름답구나!

7월 1일 수요일. 8시 기상했다. 아침 식사 후 간단히 담소를 나누었다. 부인은 출근한 상태여서 작별인사도 못했다. 9시 30분경 친구 차를 타고 집을 출발해 10시경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친구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작별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친구는 ‘심정적 망명’을 선택한 상태여서 한국에 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내가 가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언제 또 미국에 갈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LA 공항의 출국 수속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허리띠를 풀고, 핸드폰과 사진기 꺼내 놓고, 신발도 벗어서 검색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검색대를 지난 나에게 다시 엉거주춤한 만세! 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차렷 자세도 아니고, 발을 약간 엉거주춤 벌리고 팔을 조금 구부린 상태로 둥글게 한 모습으로 서 있으라고 한다. 어찌 보면 항복하는 자세, 복종을 나타내는 자세 같기도 한 모습으로 잠시 전자검색 장치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절차와 과정을 다 거친 다음 마침내 출국 수속도 끝났다.

수속 후 게이트 앞에서 쉬면서 면세점을 구경했다. 살 게 별로 없다. 이 대표가 초코렛 4통을 사서 2개를 나눠준다. 12시 40분, 비행기가 LA를 출발했다. 안녕, 아메리카여! 여행도 안녕이다.

13시간 동안의 비행이다. 아 정말 지루하다. 피곤하다. 잠도 안 온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에는 잠이 쏟아질 것 같더니, 시간이 잠깐 지나고 나니 계속 눈이 말똥말똥하다. 잠이 안 오니 눈이 더 따갑다.

그러는 동안 날짜 변경선도 지나고 베링해도 건너고, 오호츠크해도 지나고, 만주를 지나서 서해안으로 들어선다. 그 사이 나는 영화 2편을 감상했다. 비제의 카르멘 집시의 노래도 듣고 드보르작의 교향곡도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대중가요를 듣고 영화를 보아도 지치고 피곤하고 지루한 것은 피할 수가 없다.

7월 2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니 우리 산천이 눈에 들어왔다. 푸름과 싱싱함을 그대로 간직한 진짜 산의 모습이다. ‘저래야 산이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나는 집으로 향하면서 아내에게 도착 보고를 한다. 그런데 귀국 후 전화기가 계속 말썽이다. 문자가 전혀 안 된다. 교수님께는 아무리 해도 문자가 안 돼 결국 전화를 했다. 원장님께는 카톡을 보냈다. LA 친구에게는 문자를 보냈지만 안 된다. 할 수 없이 귀국하고 이틀이 지난 뒤인 7월 4일 아침 7시 30분에 전화 통화를 했다. 고맙다 친구야! 잘 지내라! 또 보자!

여독도 풀리지 않고 집안일도 있고 해서 며칠은 그냥 손을 놓았다. 그러다가 7월 6일부터 여행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7월 14일까지 메모한 내용을 컴퓨터에 옮기고 간단한 문장을 만드는 작업으로 초고를 일단 마무리했다. 다시 약간의 손질과 확인 작업을 거쳐 7월 21일부터 <통일뉴스>에 ‘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오늘로써 넉 달에 걸친 여행기 연재도 마지막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한편으로 시원하고 섭섭하다. 그동안 재미없는 이야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급히 쓰다 보니 문장도 제대로 안 됐고 오탈자도 많았다. 읽는 분들이 짜증났을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하며 너그러움과 아량을 기대할 뿐이다. 또 여행기라고 해도 글로써 다 쓰지 못한 내용도 있었고 약간 과도하게 표현되거나 잘못된 정보도 포함됐을 것이다. 차후에라도 지적하면 수정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여행 과정에서 그리고 여행기 연재 중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많은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공중에서 본 인천공항 전경. [사진제공-임영태]

 

   
▲ 인천공항 내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이래야 산이지! 고국산천이 아름답다.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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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게티 센터는(Getty Center) 로스엔젤레스 웨스트우드 북쪽,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장 폴 게티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과 문화유산을 중점 관리하는 게티 리서치와 보존·교육연구소가 있는 대규모 예술 종합 센터다. 석유사업으로 재벌이 된 장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는 열렬한 예술품 수집가로 르네상스에서 후기 인상파 작품까지 유럽 소장품을 특히 많이 수집했는데 자신의 소장품이 일반인에게 무료로 전시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현재 주차비를 제외한 입장료는 무료이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게티 센터는 리처드 마이어에 의해 설계되어 완성되기까지 13년이 걸렸으며 입구에서 전용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전시관이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현대 회화,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섯 개의 전시관을 다 보고 나서 50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센트럴 가든(Central Garden) 역시 가볼 만한 곳으로, 중앙의 꽃 미로는 게티의 또 다른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또한 야외 정원 산 정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LA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어서 인기 높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말리부에는 게티의 또 다른 소장품이 보관되어 있는 게티 빌라가 있으며 그곳에 그리스와 로마 골동품이 전시되어 있다.

2) 유이나, “폴 게티 가문의 비극”, <LA중앙일보미주판>, 20106.18(인터넷 검색일: 2015.9.3.)

3) 유이나, 위의 글

4) 사람 구경이 즐거운 베니스 비치, TV 드라마 배경으로 잘 알려진 맨해턴 비치, 서핑의 중심지 말리부 서프라이더 비치, 선텐하기 좋은 산타모니카 스테이트 비치, ‘이 보다 더 로맨틱할 순 없다!’ 엘 마타도어 비치, 멋쟁이 천국 허모사 비치, 가족나들이에 적합한 카브릴로 비치, 아늑한 피난처 레오 카릴로 스테이트 파크가 그것이라고 한다. (http://kr.discoverlosangeles.com/blog/la-%EC%9D%98-8%EB%8C%80-%ED%95%B4%EB%B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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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2)
플라밍고 (chopinluver) 2015-11-21 02:44:50
너무 감사히 잘봤습니다. 저도 멕시코는 몇번 방문경험이 있어서 제가 가봤던곳을 또 다른 관점으로 볼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쿠바는 가본적은 없지만 꼭 가보고 싶은곳이었는데 이렇게 여행기로 보니 저도 동행해서 가본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진상으로 보이는 쿠바는 멕시코 유카탄주의 메리다 시와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훨씬 더 낡은 듯 하네요. 그 동안 올려주신 여행기 너무 잘 읽었고 덕분에 제 견문이 훨씬 더 넓어진듯한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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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처럼 (ytlim20) 2015-11-22 15:37:01
부족하고 재미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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