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진보정당의 기관지에서 짧은 북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책. 당시 김민웅 교수가 추천을 했던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겠다. 어쩌면 김세균 교수님이었는지. 아무튼 첫 만남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책을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레그 테리오의 <노동계급은 없다>를 읽고 별안간 다시 떠오른 책이 오창두의 <내 청춘의 바다에 서다>였다. 끝없는 바다 위에서 청춘이라는 슬프도록 시퍼런 밑천 하나만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희망을 건지려 했던 뱃사람들의 이야기가 찡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 오창두, 『내 청춘의 바다에 서다』 , 눈과마음(스쿨타운), 2007년 5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다시 집어든 책은 색이 바래있고, 온라인 서점으로 제목을 검색하니 이미 절판된 지 오래다. 이런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 쇄를 거듭하며 많이 읽히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덜 솔직한, 적당히 그럴듯한, 더 폼이 나 보이는 이야기들이 팔리는 법.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중 하나이지만, 더 이상 선물할 방법이 없다.

이 땅 위에 노동자 아닌 이 없다. 극소수라 불릴 만큼의 인간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평범한 우리들은 노동자다. 육체 혹은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 대가로 돈을 받아 생계를 꾸려간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회를 지탱한다. 우리의 노동으로 대한민국은 돌아간다. 우리가 피땀 흘려 버는 돈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헛짓거리도 숱하게 많이 하는 것이 바로 국가, 정부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값진 노동으로 존재한다.

저자 역시 노동자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꾸리게 된 가정,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원양어선에 올라 멀리 알래스카 베링 해로 떠나는 그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가진 것이라곤 시퍼런 청춘뿐이었던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의 시간 속에서 어느덧 풋내기가 아닌 진짜 노동자로 거듭나게 된다.

직접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살아있다. 원양어선 뱃사람들의 생활을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저자의 글 솜씨는, 글이 본디 어때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만 같다. 온갖 수사와 무의미한 치장으로 가득 찬 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한 땀 냄새가 느껴지는 글을 읽을 때면, 노동자 문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또한 책은 이른 바 ‘밑바닥 인생’이라 불리는 원양어선 뱃사람들의 애환과 삶이 생생히 담겨 있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가며 바다 위에서 피땀을 흘린 그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실재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지긋지긋한 바다를 다시 그리워하고, 다시 바다 위에서 희망을 건지려 발버둥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삶,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은 인생살이, 결국 그들을 끝없는 바다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배운 것도 없는 데 그냥 배나 타라’는 말은 과연 언제까지 뻔뻔히 존재할 것인가.

꾸밈없이 솔직하게 읊조리는 노동자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진한 감동이고 환한 빛을 전해준다. 스스로 차가운 바다 속에 빨려 들어가 죽을 뻔 했던 경험, 그리고 그 보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그는 이 땅의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난다. 뜨거운 노동의 가치를 전해주는, 그리고 인간은 땀 흘릴 때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전해준 소중하고도 고마운 책이다.

다시 책이 발간된다면 적당히 쟁여두고, 그리운 사람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는 이들에게 슬며시 챙겨주고 싶다. 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노동의 가치, 사람의 아름다움, 연대의 소중함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저자 오창두의 삶과 이야기는 어쩌면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국가는 노동자들의 땀을 빌어먹고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부가 여전히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준엄히 훈계하는 권력 앞에, 닥치라고, 삶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노동자들이 흘리는 땀방울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그렇다고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한 몸뿐이다. 마구로를 밑천 삼아 떨어져 살지 않는 가정을 이루리라 다짐한다.

아침 햇살에 멀리 오륙도가 빛난다. 오륙도 위에는 무지개가 곱게 걸쳐져 있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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