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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돈 내고 사서하는 고생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34)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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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3  17: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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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산타클라라 장갑열차 기념공원에 전시된 불도저. 게바라의 혁명군은 이 불도저를 이용하여 철로를 뜯어냄으로써 지원정부군 열차를 세워 열차를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제공-임영태]

체 게바라의 격전지를 찾다

6월 25일 목요일 오전 8시, 우리는 산타클라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비달(Vidal) 광장으로 갔다. 1896년 독립전쟁 중에 전사한 비달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쿠바에서 가장 활기찬 광장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갔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쉬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총탄 자욱이 남아 있는 리브레(Libre) 호텔과 고풍스런 까리다드 극장, 학교, 도서관, 시청, 박물관 등 산타클라라의 주요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장갑열차 기념비 공원이다. 체 게바라가 지휘하는 혁명군이 아바나로 진격하던 중 이곳에서 바티스타의 정부군을 크게 물리쳐 승리를 거둔 곳이다. 게바라의 혁명군은 불도저를 이용하여 철로를 뜯어냄으로써 지원정부군이 중간에 열차를 세우게 만들었다. 이때 혁명군은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90분 만에 열차를 탈취하는데 성공했고 이로써 산타클라라의 격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1958년 12월 27일부터 사흘간에 걸친 산타클라라 전투의 승리로 혁명군의 승리는 결정적으로 굳어지게 된다.

기념비는 인디펜덴시아 거리 북동쪽 끝 다리를 건너서 있었다. 인디펜덴시아 거리는 산타클라라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활기가 넘쳤다. 대형 가전제품과 미용화장제품, 옷가게 등 수입상품점이 즐비하고, 식당도 곳곳에 있다. 길 가운데 화분과 가로등이 놓여 있고 머리 위에는 'BOULEVARD'라는 간판도 가로놓여 있는 게 보인다. 옛날 건물과 현대적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야클라라(VILLA CLALA)라고 쓴 간판 좌우에 카스트로 형제의 초상도 그려져 있다.

체 게바라의 산타클라라 격전지는 작은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다. 그곳에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당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불도저가 있었다. 또한 1꾹(CUC)의 입장료를 받고 들여보내주는 무기와 사진자료들이 전시돼 있는 열차가 있었다. 공원 바로 옆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있었다. 우리가 공원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열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그걸 보고 있자니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 부대가 펼친 역사적 순간의 감흥이 조금은 되살아나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다시 인디펜덴시아 거리를 따라 걸었다. 식당, 배급상점, 개인상점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확실히 산타클라라는 상점도 많고, 물건도 많은 현대 도시의 느낌이 난다. 인구 25만여 명의 지방도시로서는 상당히 활기찬 느낌이다. 무엇보다 인디펜덴시아 거리 중심부에는 전자상점, 미용, 화장, 세면 등의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수입상품점도 여러 곳 있었다. 이는 아바나에서도 잘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의 도시에서 만난 화려한 자본주의 상품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기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자 오랫동안 쿠바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에서도 체 게바라는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의 하나라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이건 별일도 아니다. 체 게바라를 이용한 상술에서 볼 수 있듯이 혁명조차도 상업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힘이 아니겠는가.

숙소로 오기 전 은행에서 환전하려고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에서 파스타드, 피자, 사이다, 오렌지 등을 시켜먹었다. 길거리에서 전날 산타클라라로 오면서 휴게소에서 맛본 것과 비슷한 모양의 비스켓이 있어서 샀더니 그 맛이 안 났다. 너무 짰다. 인기가 별로 여서 조금 먹다가 그 과자를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멕시코 공항 입국과정에서 마약 탐지견에게 걸리는 바람에 우리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우리가 식당 겸 가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한다. 알고 보니 게바라 초상이 들어있는 3쿠바페소와 1쎄우쎄를 바꾸자고 한다. 이 대표가 기념으로 한 장 교환했다. 이래저래 게바라는 쿠바를 살리는 인물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 게바라는 관광의 아이콘이면서 쿠바혁명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쿠바의 나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사람들에게 쿠바혁명의 순결성과 순수성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쿠바인들이 체 게바라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산타클라라의 중심 비달공원.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 비달공원의 주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 리브레 호텔. 아직도 혁명전쟁 당시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리브레 호텔 옆 도서관 건물. [사진제공-임영태]

 

   
▲ 인디펜덴시아 거리와 주변 풍경 1. [사진제공-임영태]

 

   
▲ 인디펜덴시아 거리와 주변 풍경 2. [사진제공-임영태]

 

   
▲ 인디펜덴시아 거리와 주변 풍경 3. [사진제공-임영태]

 

   
▲ 인디펜덴시아 거리와 주변 풍경 4.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기념공원과 주변 풍경 1.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기념공원과 주변 풍경 2.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기념공원.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기념공원 안에 있는 장갑열차.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내부 모습 1. [사진제공-임영태]

 

   
▲ 장갑열차 내부 모습 2. [사진제공-임영태]


산타클라라에서 다시 아바나로

비달공원 옆을 지나는데 쿠바의 저 유명한 코펠리아(coppelia)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타났다. 우리는 처음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뒤에 가서 한참동안 서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 줄은 내국인들이 서는 줄이었다. 외국인들은 바로 들어가서 시켜먹으면 됐다. 물론 가격 차이가 날 것이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세 접시를 시켜먹었다. 가격은 한 접시에 3꾹. 당연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무척 달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보통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당도가 높았다. 설탕 덩어리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흰 크림에는 설탕 알갱이가 그대로 씹힌다.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처럼 조금 먹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 세 명이 대여섯 접시를 먹고 있다. 어떤 이는 혼자서 세 접시를 먹고 있다. 밖에서는 현지인들이 여전히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왜 이렇게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가격차이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쎄우쎄(CUC)와 쎄우페(CUP)의 비율이 1:24이니 그만큼의 차별을 두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주의는 역시 돈이 최고인 제도고, 물질적인 풍요를 필요로 하는 쿠바 역시 일정 부분은 그런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했다. 돌아오니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하루밖에 못 지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 지식인의 풍모가 그대로 느껴지는 주인장만큼이나 까사도 깔끔하고 여러모로 쓸모 있게 잘 단장해 놓았다. 집 구조도 바람이 잘 통하게 최대한 배려하여 건축했고, 집 전체가 잘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식물을 키우는 베란다의 고정화분도 그렇고, 하늘로 바로 통하게 만들어 놓은 중앙부분도 그렇다. 이곳의 경우, 1달 까사 세금은 40꾹이라고 한다. 부디 손님을 많이 받아서 많은 수입을 올리고 쿠바에 대한 좋은 인상도 계속 심어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숙비와 음료수 값을 계산을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인터넷 주소까지 받아서 그곳을 떠났다.

우리를 아바나로 데려갈 기사가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어제 산타클라라로 오는 도중 그와 70꾹에 계약을 한 상태였는데, 정확히 찾아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올라’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기사의 나이는 22세라고 한다. 군대 간 내 아들과 동갑내기다. 덩치도 당당하다. 쾌활하고 활달하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니 서로 답답하다. 그 청년기사가 아바나로 오는 고속도로 중간 한 지점에서 손가락으로 자기 고향이 이곳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산다고 말한다. 무슨 말일까? 아버지가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냥 상상만 해볼 뿐이다. 더 이상 묻기도 그렇고, 의사소통도 힘들어서 포기했다.

중간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환타가 보여서 한 캔 사먹었다. 한국의 환타 맛이나 쿠바의 그 맛이나 차이가 없다. 환타는 코카콜라에서 출시한 과일맛 청량음료다. 그 때문에 세계 어디서 먹어도 거의 동일한 맛이 난다. 새삼 다국적 기업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택시기사에게 에스프로소를 한잔 사 주었다. 환타와 커피 값을 합해 2.25꾹(3000원)밖에 안 된다. 지역마다 가게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하기는 보면 우리도 그런 정도의 가격 차이는 있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쿠바만의 일은 아니다.

고속도로 중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모습이 목격된다. 이미 우리가 계속 보아온 모습이다. 그들은 빈차를 함께 타고 가기 위해서 모여 있는 것이다. 쿠바에서는 빈차로 가게 되면 반드시 사람을 태워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누군지도 모르고,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겠는가?

중앙분리대나 도로 옆에 있다가 차선으로 나오면서 물건을 사라고 손짓하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보인다. 그들의 손에는 치즈, 버터 같은 유제품이 주로 들려 있다. 바나나, 망고, 옥수수 같은 과일을 들고 있는 사람도 가끔씩 보인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들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젊은 기사는 자기친구도 저런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말한다. 돌아갈 거리가 가깝다면 하나 살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가게. [사진제공-임영태]

 

   
▲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쿠바인들이 늘어선 줄이 엄청나다. [사진제공-임영태]

 

   
▲ 비달 광장 주변에 정자처럼 지어 놓은 쉼터. [사진제공-임영태]

 

   
▲ 비달 광장 주변에 있는 학교 건물.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묵은 까사는 주변 건물과 달리 깨끗이 단장돼 있다. 내부시설도 사람이 살기 편하도록 돼 있어 주인의 배려가 돋보였다. [사진제공-임영태]


마이클과 릴리의 닮은 점과 차이점

아바나 근처에 오니까 드디어 핸드폰 문자가 터진다. 몇 개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낸다. 집에도 그동안의 경과를 간략히 보냈다.

오후 3시경, 우리가 묵을 아바나의 숙소 앞에 도착했다. 마이클의 집이다. 우리는 마이클의 집에서 묵고, 교수님과 원장님은 저번에 묵었던 그 집에서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마이클네 집은 숙소 시설이 깔끔했다. 창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호텔 수준으로 깔끔하다. 이곳에 오니 마치 고향에 온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마이클이 의외의 말을 했던 것이다. 자기가 소개해준 트리니다드의 까사 주인이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우리가 물었더니 릴리가 그 집은 수리중이어서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과정을 다시 되짚어 보니 중간에 기사가 바뀌면서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우리를 비날레스로 데려갔던 그 젊은 기사가 교대한 새로운 기사에게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으나 그는 제대로 찾지를 못했다. 그 바람에 다른 곳을 몇 군데 둘러보았고, 그러다가 릴리아줌마를 만났던 것이다. 그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이상한 말을 했다. 지금은 문은 닫은 상태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릴리네 까사로 따라갔다.

그렇다면 릴리의 농간이란 말인가? 우리도 원래 예약했던 그 집에 못 들어가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았고, 고생이라면 고생을 했다. 그렇게 보면 우리도 피해자인 셈이다. 어쨌든 마이클은 걱정도 되고 해서 출근도 하지 않고 우릴 기다렸다고 한다. 아마도 따질 마음으로 벼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이클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릴리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릴리의 주소가 어디 있는지 잘 안보였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묶었던 집 주소를 사진으로 찍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릴리의 집은 정면에서 주소가 나오도록 찍은 사진이 없었다. 게다가 릴리가 준 명함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다 보니까 그 집에서 가져온 소개 명함이 한 장 튀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마이클에게 ‘당신 친구인 택시기사(우리를 비날레스로 실어다 준)에게 왜 중간에 차를 바꾸어야 했는지’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마이클이 물었더니 차가 고장이 나서 그랬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한테는 그런 의사가 정확히 전달이 안 됐다고 다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과연 아바나의 마이클이 트리니다드의 릴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결과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마이클과 릴리는 주변 인간관계가 넓었다. 그들은 그 관계를 활용해서 관광객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프리미엄을 얻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쿠바의 시장개방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는 사람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마이클은 일을 세련되게 처리하는 반면, 릴리는 약간 무리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아바나와 트리니다드라는 지역적 차이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근본적인 바탕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10년 뒤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는지 궁금하다.

   
▲ 센트로 아바나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올드카. [사진제공-임영태]

 

   
▲ 센트로 아바나에서 만난 꼬꼬 택시. [사진제공-임영태]

 

   
▲ 헤밍웨이가 자주 들러 모히또를 즐겼다고 알려진 술집 ‘라 플로리타’.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의 기념품점 1.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의 기념품점 2. [사진제공-임영태]


오비스뽀 거리에서 만난 청년

우리는 짐을 푼 다음, 아바나 시내 구경에 나섰다. 오비스뽀 거리를 따라 걸었다. 그때 젊은(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 하나가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호객행위를 한다. CD를 사라는 것이다. 원장님 호기심 반으로 대꾸를 해주니 이 친구 옳다구나 하고 끝까지 따라 붙는다. 결국 그 친구 손에 이끌려 한 가게 앞에 섰다. 한 눈에도 복제품으로 보이는 조잡하게 인쇄된 종이케이스로 포장된 CD들이 나열돼 있다.

하나를 집어 들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10꾹이란다. ‘황당한 해적판을 이렇게 비싼 값으로? 우리를 호갱으로 아는군.’ 하지만 2장에 10쿡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알면서도 속아준다. 이 더운 날씨에 손님 낚기 위해 떠드느라 수고한 값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나중에 공항에서 정품을 10꾹, 15꾹씩 주고 몇 장 샀다.

오비스뽀 거리 끝부분에 헤밍웨이가 숙박하며 집필을 했다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있다. 그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내가 그 주변 다른 곳을 돌아보고 있는 사이 우리 일행은 문도스 호텔로 들어갔다. 나도 급히 뒤따라 들어갔으나 호텔 종업원이 와서 나를 가로막으며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일행이야’라고 이야기했지만 안 된다고 한다. 그는 단호히 ‘go out’을 외친다. 나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온다.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벽에 걸린 헤밍웨이의 사진들이 보인다. 카스트로와 찍은 사진도 있다. 여러 장의 사진과 몇 가지 전시물이 1층 로비에 있다. 이 호텔 2층의 그가 묶었던 201호실은 보존해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2층 집필 장소를 구경하는 데는 2꾹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좀 있다가 일행도 밖으로 나온다. 2층에 올라가 봤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답한다. ‘뭐 볼 것도 없어.’ 이 대표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렇겠지? 안 그러면 나는 너무 억울하지.

난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호텔 앞에서 분장을 한 채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 발견하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호텔에서 나온 이 대표는 조각 작품인줄 알고 그 옆에 다가갔다가 그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다. 이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그에게 1꾹을 기부한다. 기분이 좋아진 행위예술가는 사진을 찍으라고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사진이 딱 한 장밖에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우리는 오비스뽀 거리의 마지막까지 갔다가 다시 센트로 아바나 쪽으로 되돌아갔다. 마이클이 소개해 준 클럽을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 클럽은 저녁 7시가 되어야 생음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가야할 것 같았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Sloppy Joe's Bar'에서 하기로 했다. 첫 인상이 좋았고, 음식의 맛과 질도 좋았다. 우리는 슬로피 조스 바에서 맥주, 레몬에이드, 햄버거, 샌드위치 등을 시켰다. 역시 음식물 내용이 충실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었다. 시설도 잘 돼 있었고 깨끗했다. 냉방이 너무 잘돼서 추울 지경이다.

   
▲  활기가 넘치는 오비스뽀 거리 모습 1. [사진제공-임영태]

 

   
▲ 활기가 넘치는 오비스뽀 거리 모습 2. [사진제공-임영태]

 

   
▲ 암보스 문도스 호텔 외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암보스 문도스 호텔 내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호텔 앞에서 만난 아바나 행위예술가의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여행은 돈 주고 사서하는 고생

식사 후 클럽 ‘Kilomiter Zero(KMO)’를 찾았다. 술 한 잔 마시면서 음악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면서 마이클이 추천해준 곳이었다. 약간 해맨 끝에 그곳을 찾아냈지만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 집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려면 아직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까삐똘리오 주변을 돌아보고 한국인 젊은 배낭여행객이 많이 묶는다는 ‘호아낀 아줌마’ 집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혹시 스페인어를 잘 하고 쿠바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도 만나면 내일 하루 통역이나 가이드 요청이라도 해볼까 싶어서였다. 

그 주변에서 한참을 헤맨 끝에 까삐똘리오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하고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호아낀 아줌마네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집에 방문해 보니 예닐곱 명 정도의 한국인 대학생, 청년 등 배낭여행객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처음 1층에 들어서면서 건물이 너무 낡아서 충격을 받았다. 곳곳이 낡고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어둡기까지 해서 건물 안은 말 그대로 우중충했다. 마치 사람들이 떠나고 재개발 직전의 폐허 상태의 건물 같았다. 언뜻 보기에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스릴러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허물어진 건물 같았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느낌이 달라졌다. 2층에 올라가니 사람이 살고 있는 티가 나고 내부 시설도 그런대로 깔끔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도저히 이곳에서는 못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방에 4명, 6명이 함께 지낸다고 했다. 에어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 청년이 선풍기는 있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고 하니까, 내 큰딸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그래도 별로 안 덥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젊음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나이가 약간 들어 보이는 한 청년과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멕시코와 중남미를 한 달 동안 돌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몸 전체가 새까맣게 탄 게 그의 몸이 그동안의 행적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도 쿠바에서 한 열흘 정도 지냈다고 이야기해준다. 거실의 청춘들은 그 사이에도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함께 보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은 역시 젊은 시절에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씨가 좋아 보인다. 후덕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60대 후반쯤 되었을 것 같은 아주머니는 아이들의 보호자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나온다. 주인아주머니는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우리도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한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건강하게 여행 잘 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들도 우리에게 건강하라고 인사한다. 나는 밖으로 나왔으나 마음이 짠하다. 여행객들과 비슷하거나 몇 살 아래일 한국의 내 아이들 생각이 났다.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싶었다.

그곳을 떠난 우리들은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에 거리에 있는 술집 앞에서 멈췄다. 킬로미터 제로가 아니라 그 근방의 다른 클럽이었다. 바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 신나는 음악이 연주된다. 사람들이 춤을 춘다. 그러나 너무 좁아 보인다. 자리도 없다. 우리는 그 술집 앞 공터 화단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노래를 듣는다. 바람이 시원하다. 하지만 곧 음악이 끝난다.

아이들이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쿠바는 특히 야구로 유명한 나라이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쿠바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축구 실력은 별로다. 코파아메리카 축구대회에서도 최하위권 수준이다. 그렇지만 쿠바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는 높은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쿠바에 있는 동안 좁은 골목길에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할 수 있지만 야구는 글러브도 필요하고 배트도 필요하며 일정한 크기의 운동장도 확보되어야 한다. 야구는 약간의 장비와 공간이 필요한 운동인 것이다. 어쨌든 쿠바의 야구실력은 세계 최상이다. 이는 쿠바가 스포츠에 체계적인 국가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쿠바는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권투, 배구, 사격, 역도, 펜싱 등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스포츠 강국이다. 팬아메리카(팬암) 대회에서 미국 다음으로 메달을 많이 딴 나라가 쿠바이다. 그 뒤를 이어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베네수엘라가 뒤따른다. 이는 쿠바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대 하계 올림픽 성적 또한 놀랍다. 쿠바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메달 순위 10위 안에 진입했다.(주1)

쿠바는 혁명 이후 인민 무상 교육과 의료, 사회보장 제도를 정비했으며, 인민의 스포츠 향상에도 우선적인 정책 순위를 두었다. 피델의 혁명정부는 모든 인민이 스포츠를 부담 없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쿠바에서는 재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재능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스포츠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리나라도 점차 그런 사회로 굳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재능만 있으면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의 클럽에 대한 열정은 약간 식고 말았다. 굳이 저 좁고 복잡한 곳에서 술을 먹으며 음악을 들어야 하나? 어떻게 하지? 우리들은 잠시 고민했다. 그 술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보니까 음악이 있는 술집은 내부가 너무 복잡하다. 우리는 의논 끝에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에서 잠깐 쉬고 저녁에 나옵시다.  집주변 대성당 광장 근처에 음악이 나오는 좋은 술집이 많으니 그곳에서 한 잔 합시다.”

이 대표의 제안에 모두 수긍하고 따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온 뒤 나는 침대에 누웠다가 그냥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 비몽사몽 상태로 깨어났다. 그런데 이 대표가 “술 먹으로 못 가겠다, 포기하자”고 말한다. 나도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다가 다시 드러누웠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잠들었다. 여행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행이 힘들기는 힘든 모양이다. 사서하는 고생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사진제공-임영태]

 

   
▲  건물 사이로 보는 까삐똘리오. [사진제공-임영태]

 

   
▲ 센트로 아바나의 아파트 건물. 까삐똘리오, 대극장, 혁명박물관 등 아바나를 대표하는 주요 건물들이 밀집한 센트로 아바나 지역에도 낡은 아파트가 즐비하다. [사진제공-임영태]

 

   
▲ 아파트 베란다에 널려진 빨래들. [사진제공-임영태]

 

   
▲ 젊은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묵는다고 알려진 ‘호아낀 아줌마네’ 까사가 있는 건물. [사진제공-임영태]

 

   
▲ ‘호아낀 아줌마네’ 까사가 있는 건물 이층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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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정승구,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아카넷, 2015),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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