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1일, 우리 국민은 이역만리 먼 바다에서 들려온 우리 군의 군사작전 성공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군사작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덴만 여명작전’이 그것. 소말리아에 파병된 우리 청해부대가 해적에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한 이 작전을 소재로 한 특별한 책이 발간됐다. 아덴만 여명작전과 소말리아 해적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아덴만의 여명’이 그것.”

아덴만 작전을 박진감 넘치게 그렸다는 어떤 책을 소개하는 기사의 한 구절이다. 매체는 국방일보. “아덴만의 영웅들 소설로 깨어나다”라는 제목이 나에겐 조금 불편하다. 당시 영웅으로 추앙받던 석 선장은 이제 해군에서 안보교육을 맡고 있다고 한다. 안보교육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으리라.

내게 남아있는 당시의 기억은 이명박 대통령을 한껏 추켜올리던 언론의 야단법석과 일반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다. 뭐, 아닐 수도 있겠다. 정말 우리 군의 활약에 감탄하며, 못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다고 만족해한 이들도 있었으리라. 물론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대처는 필요한 것이었고, 정당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당시의 모습은 미안하지만, 나에겐 참 불편했다.

소말리아. 나의 무지는 소말리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내게 주지 못했다. 단지 가난한 나라, 내전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는 나라, 중무장한 해적들이 활개 치는 무법지대 정도로만 어렴풋 알고 있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소말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전부일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진실과 혹은 거짓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은 과연 나의 어설픈 지식에 100% 동의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맴돈 생각이다. 난 과연 아무런 선입견 없이 소말리아를 인식하고 있었을까.

▲ 베르너 J. 에글리, 배수아 옮김, 『블랙 샤크』,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8.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다. 하지만 비단 청소년만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 어쩜 청소년들보다 더 많은 오류와 편견과 오만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을 우리들을 위한 소설이다. 소말리아라는 작은 나라를 둘러싼 우리 모두의 책임과 죄악과 무관심과 외면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있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소말리아는 몇 년 전부터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그런데 그 기근에는 우리 유럽인들도 한 몫을 거든 셈이란다. 왜냐하면 소말리아 앞바다의 어족 자원을 한 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초토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유럽이거든. 예전에는 가뭄이 들어 내륙의 농사를 망칠 경우 고기잡이를 해서 사람들이 먹고 살 수가 있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은 고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속절없이 굶고 앉아있는 수밖에. 그 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미국으로 가거나 유럽으로 갔어. 슈퍼마켓의 염가 판매 상품이 되어. 우리가 식탁에서 생선을 배터지게 먹는 동안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만 하는 거야. 혐오스러운 생각이 안 드니? 말해 보거라, 너는 혐오스럽지 않단 말이니?” (125p)

혐오스럽다. 매달 구호단체에 얼마씩 내는 기부금으로 나의 양심이 편안한 척하는 위선도 솔직히 역겨운 짓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여 과연 소말리아에 누구에게 전달될 것인지, 수많은 NGO 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이 아프리카의 오래된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줄 수 있을지, 사실 모든 것들이 암담하고 난감할 따름이다.

책은 소말리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해주기 위해 떠나는 배에 탑승한 토미의 눈을 통해 서구의 잘못된 과거와 죄악을 함께 만나게 된다. 아버지를 잃은 뒤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토미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캡틴 루니의 배에 주방 보조원으로 함께 오르게 되고, 아프리카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맨 얼굴’을 느끼게 된다. 토미에게 요리사 미스터 카터는 이렇게 말한다.

“아프리카는 자기가 흘린 피 속에서 익사하고 있는 거야.”

아시다시피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를 경계 짓는 국경선은 마치 자로 잰 듯 직선이 많다. 그 이유는 민족과 문화, 인종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열강 몇몇이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와 문화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행복과 인간으로서의 권리 역시.

오랜 식민지 체제 하에서 신음했던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독립이 되어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 독재와 내전의 반복은 무수히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굶주림과 강간, 학살이 일상처럼 그들의 삶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면, 과연 무엇이 이성이고 진실이고 정의이고, 또한 그 반대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피난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아이들은, 자신은 그저 ‘아프리카의 자식들’일 뿐이라 말한다. 아프리카의 아이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풍족하다. 물론 우리의 삶이 온갖 죄악과 위선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프리카를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하고 변명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죽으라고 했어?!’라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인간 이하’의 것들의 행동과 그리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왜 소말리아에 해적들이 창궐하는지, 왜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오늘도 죽어 가는지, 왜 아프리카는 내전과 독재가 사라지지 않는지, 이 빌어먹을 정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아주 가끔은 소말리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더 가까운 북한을 생각해야 한다.

“내 고향은 아프리카야.”

“아프리카에도 나라는 많잖아”

“그런 국경을 만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이방인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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