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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물놀이와 석양 구경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31)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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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3  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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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앙꼰 해변에서 본 카리브해의 일몰 광경. 주위를 삼킬 정도로 그 빛이 휘황찬란하다. [사진제공-임영태]

 

라보카에서 본 일출

6월 23일 화요일 새벽 6시 눈을 떴다. 닭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새벽을 연다. 쿠바의 어느 시골에서처럼.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과거 우리의 시골에서처럼 그들이 새벽을 알린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완전히 까맣게 탔다. 그동안은 그런대로 잘 버텼는데 어제 물에서 노는 바람에 많이 탄 모양이다.

이 대표를 깨운다.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일어난다. 어촌의 아침 구경에 동의한다. 6시 20분경 밖으로 나온다. 아직 일출전이다. 일출을 보고 싶다. 주인아저씨도 벌써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서로 반갑게 ‘올라!’라며 인사한다.

해 뜨는 걸 구경하러 간다고 손짓과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주인아저씨가 금방 알아듣고 해가 뜨는 방향을 가르쳐준다. 동네 뒤쪽으로 가면 낮은 언덕이 있다. 우리가 어제 왔던 트리니다드 방향이다. 아저씨가 그곳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쪽 방향으로 10여분 정도 천천히 걸었다. 가면서 보니까 사람들이 출근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도 쿠바의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이 버스, 트럭, 승용차, 마차 등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이용되고 있다.

저 멀리 일출을 앞두고 붉은 기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무와 집들에 가려 해가 솟아오르는 지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5분쯤 더 걸었다. 도로에서 옆 샛길로 빠졌더니 일출 지점이 제대로 보인다. 잠시 후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는 금방 솟아올랐다.

6시 45분경 해가 산 위로 얼굴을 확 내밀었다. 해가 무척 크다. 쿠바는 적도에서 가까운 북회귀선 근방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태양은 우리 눈에 무척 크고 가깝게 보인다. 거의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 같다. 특히 하지 무렵이면 북회귀선에서는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놓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 대표와 나는 서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각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에서도 새해 첫날 또는 지리산, 설악산 정상 등정 때 일출을 본 적은 있지만, 적도 가까운 쿠바에서 일출을 보는 감회는 그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앞에서는 태양이 솟아오르고, 오른편으로 소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정류장에는 출근 차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서 있다. 밝은 태양처럼 쿠바의 앞날도, 우리의 앞날도 활짝 펴져서 밝게 빛나기를 기대해본다.

일출을 구경한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어촌 마을을 돌아보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라보카 해안을 따라 앙꼰 해변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한참동안 걸었다. 아름다운 해안선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숲이 가려서 잘 안 보이지만 저 멀리 해안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걸어서 2시간이면 앙꼰 해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앙꼰은 멀어도 10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우리 두 사람이라도 걸어서 가보면 어떨까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가 “어떻게 우리만 갈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둘만 갈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앙꼰에 꼭 가보고 싶다.

앙꼰 해변에서 일몰을 구경하는 것, 내가 쿠바에 오면서 꿈꿨던 희망 중 하나였다. 어느 여행 소개서에 해지는 광경이 일품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치 로망처럼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걸어서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앙꼰 해변도 그렇지만 가는 동안 보게 될 해안이 절경일 것 같았다.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 바람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 1.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 2.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 3. [사진제공-임영태]

 

   
▲ 일출 직전 주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리보카에서 본 일출 광경 1. [사진제공-임영태]

 

   
▲  리보카에서 본 일출 광경 2. [사진제공-임영태]

 

   
▲ 이른 아침 마을 주변 풍경 1. [사진제공-임영태]

 

   
▲ 이른 아침 마을 주변 풍경 2. [사진제공-임영태]

 

   
▲ 이른 아침 마을 주변 풍경 3. [사진제공-임영태]

 

   
▲ 라보카에서 만난 빵장수 아저씨. [사진제공-임영태]

 

   
▲ 바쁘게 다니는 빵장수 뒷모습.[사진제공-임영태]


‘노인’의 후예들이 잡은 생선

숙소로 막 돌아오는데 산책길에 나선 교수님과 원장님 뒷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두 분을 불렀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봤던 생선(피쉬)을 사러 갈려고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은 우리가 어제 놀던 해수욕장에서 오른편으로 돌아서 약간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어선 두 척이 보였다. 고기는 많이 낚았을까? 궁금하다.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사람들이 먼저 와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열 명은 더 될 것 같다. 생선 사러 온 사람들이다. 낚싯배가 도착했다. 그런데 어부들은 느긋하다. 잡은 생선은 꺼내지도 않고 느릿느릿 짐만 챙긴다. 우리나라 같으면 재빨리 고기부터 꺼내 처리한 다음 짐을 챙기던지 할 텐데 이곳 사람들은 좀 다르다.

원장님은 “고기는 어디 있는 거야? 못 잡은 거야?”며 안달이다. “잡았겠지요”라고 내가 대답한다. ‘저 사람들이 밤새도록 낚시질을 했는데 설마 일당벌이 할 만큼이야 못 잡았겠는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노인도 여러 날 동안 계속 허탕을 치기는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소설의 극적 장치가 필요해서 그렇게 만든 것일 뿐.

조금 뒤 어부가 배에서 잡은 고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와”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진다. 엄청 큰 고기를 잡았다. 1미터도 넘어 보이는 꽁치처럼 입이 날카롭고 몸이 가늘고 길쭉한 생선이다. 언뜻 나는 다랑어 종류라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바로 그 청새치 종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꼬치삼치’라는 생선이었다.(주1) 무게가 상당히 나갈 것 같았다. 적어도 30킬로그램 이상은 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물고기도 많이 잡았다.

어부들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생선을 가져온다. 큰 생선 가격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가격이 싸도 우리로서는 다 먹을 재간이 없지만 그래도 가격이 궁금하다. 흥정이 시작되었다. 옆 사람에게 얼마를 요구하느냐고 물으니 25꾹(CUC)을 불렀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32,000원 정도에 불과한 액수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에서라면 최소한 그 10배 이상은 나갈 것이다. 호기심 많은 원장님이 직접 나서서 흥정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35꾹을 요구한다. ‘이거, 사람보고 가격을 부르는군.’ 아마도 그 지역사람과 달리 관광객에게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르겠지 싶었다.

우리는 대신에 다른 생선을 한 마리 샀다. 6꾹을 불렀는데 5꾹으로 깎았다. 어제 내게 흥정을 붙였을 때 그 생선보다는 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상당한 크다. 어제 것은 다랑어 종류였는데, 이건 돔 종류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비늘이 없다. 이곳 생선들은 다 비늘이 없는 것일까?

우리가 산 생선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똑같이 생긴 놈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무명갈전갱이’와 많이 닮았으나 입모양이 좀 다르다. ‘만새기(암컷)’와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등지느러미가 다르다.(주2) 

그 놈을 들어보니 묵직하다. 몇 킬로그램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모두들 생선을 튀겨(또는 구워) 먹을 꿈에 부푼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내외가 ‘오우’하며 탄성을 지른다. 잘 안 통하는 말로 생선을 손질해 점심 때 튀겨먹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잘 된 것으로 알았다.

   
▲ 바다에 떠 있는 낚싯배들. [사진제공-임영태]

 

   
▲ 바다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어부들.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 라보카 바닷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라보카 선착장으로 고깃배가 들어오고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라보카 선착장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한가한 아침.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이 바쁜 사람들. [사진제공-임영태]

 

   
▲ 잡은 고기를 배에서 갖고 내리는 어부. [사진제공-임영태]

 

   
▲ 엄청 크다.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라보카 바닷가에서 산 생선. [사진제공-임영태]


라보카에서 앙꼰 해변으로

아침 식사는 대충했다. 아침에 생선을 사 가지고 오는 도중에 아이스크림을 두 통이나 샀다. 한 통은 아침에 먹고 한 통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콜라도 두 캔을 사서 나누어 마셨다. 주인집에서 주는 커피(에스프레소)도 한잔씩 마시고 바나나도 하나씩 먹었다. 이걸로 아침을 대신했다. 모두들 입맛이 없어서 식사 생각이 별로 안 났던 것이다.

우리가 사온 아이스크림은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식품기업 네슬레의 제품이었다. 쿠바 토종의 코펠리아가 이와 경쟁하고 있다. 이미 코카콜라도 쿠바에 들어와서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하는 쿠바의 콜라는 투 콜라(Tu Kola). 우린 주로 투 콜라를 먹었지만 앞으로 이게 코카콜라와 경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주인아저씨가 우리에게 앙꼰 해변에 가겠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택시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잠시 뒤 젊은 아저씨가 차를 갖고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차들과는 달리 차가 상당히 새 차였다. 어디 제품인가 싶어 보았더니 ‘Geely 1.8’이라고 돼 있다. ‘어디서 만든 제품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지리’(Geely)라고 하는 중국제인데 롤스로이스를 베낀 것으로 유명세르 타고 있다고 한다. ‘야, 벌써 중국 승용차가 쿠바까지 진출했어?’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쿠바의 신형버스는 거의 중국제인 것 같았다. 물론 중고제품의 경우에는 한국산을 비롯, 다양한 제품들이 중남미 시장을 통해 들어가지만 말이다.

지금까지는 쿠바의 제1교역국이 베네수엘라이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해외 자본의 진출이 본격화할 것이다. 이미 쿠바와 경제관계가 깊은 브라질, 캐나다, 에콰도르, 파나마를 비롯하여 중국, 그리고 미국의 진출이 빨라질 것이다. 아마도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이 쿠바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한국도 삼성, LG, 현대중공업 등이 전자와 발전기, 원동기, 선박용 엔진, 자동차 등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미 쿠바의 9대 교역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식 국교 관계가 없는 탓에 간접교역이 대부분인 상태이다.(주3) 우리는 여행 동안 LG 에어컨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기아 승용차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쿠바 사람들도 ‘꼬레아’에 대해서는 대체로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지나가면 멕시코에서처럼 먼저 ‘치노?’라며 아는 척했다. 가끔은 ‘곤니찌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꼬레아!’라고 말하면, ‘오 꼬레아!’라고 한다. 그리고 뒤이어 ‘노르떼(norte)? 수르(sur)?’라고 묻는다.(주4) 우리가 ‘수르’하면 ‘오, 수르’ 하고 반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안 사실이었는데, 우리가 쿠바에 있는 동안 북한의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이끄는 사절단이 쿠바를 방문했다고 한다. 미국은 쿠바와 수교하면서 북한과의 무기 거래 등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쿠바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쿠바와 북한은 아직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영원’이란 없다. 그렇게 ‘혈맹관계’를 강조했던 북중 관계도 많이 달라졌지 않은가.

우리를 실은 승용차는 라보카에서 양꼰을 향해 달린다. 우리가 아침에 걸었던 그 방향이다. 도로는 계속 해변을 따라 이어졌다. ‘아, 내 예상대로 해변을 따라 쭉 가는구나’ 싶었다. 앙꼰까지는 대략 7~8킬로미터 정도가 되는 거리였다. 해변도로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바다 풍경이 절경이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동해와 달리 바다는 잔잔했지만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동해안처럼 험한 산길도 절벽도 없었다. 바닷가를 따라서 평지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10여분쯤 달렸을까? 저 멀리 앙꼰 해변의 모래사장이 보였다. 해변에 세워진 호텔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텔지대를 조금 지나 한 귀퉁이 주차장에 차가 섰다. 차에서 내리니 바닷가로 가는 샛길이 있다. 샛길로 들어서니 바로 모래사장이 나온다. 모래사장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드디어 앙꼰 해변이다. 일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언뜻 보아도 칸쿤 못지않은 뛰어난 풍광이다. 잘 개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개발이 자연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나무기둥을 세워 우산처럼 만들어놓은 그늘막이 해변을 따라 쭉 늘어서 있다. 그늘막 아래에는 비치의자가 놓여 있다. 우리는 호텔존과는 약간 떨어진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수기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우리는 짐을 내려놓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모래사장도 그렇고, 깨끗한 바닷물도 그렇고 어제 우리가 놀던 라보카 해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역시 앙꼰이다 싶었다. 교수님은 그늘막에 누워 휴식을 즐겼고, 우리들은 수영도 하고 해변도 거닐었다. 자유와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다.

   
▲ 우리를 태우고 간 중국산 지리(Gleey) 승용차와 기사.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1.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2.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3.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휴양지 위락 시설.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휴양지 호텔. [사진제공-임영태]


카리브해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바로 앞에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위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실어갈 배다. 우리가 한참 동안 수영을 하며 놀고 있는데 그 배가 바다를 향해 출발한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있는, 그리고 물놀이를 너무 좋아하는 원장님이 그걸 보더니 너무 흥분한다. 그리고 잠시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원장님이 들떠서,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즐기는데 1인당 10꾹(12,500원)이라고 말한다. 부지런하게도 그 사이 그걸 알아보고 오셨다. 그러고 보니 해변 모래사장에 요트들이 즐비하다. 모두 스노클링을 위한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요트 한번 띄우는데도 최소 50만원 이상은 들어야 한다는데…. 우리도 가기로 결정했다.

교수님은 자신은 빼고 우리만 갔다 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각각 물갈퀴, 물안경, 구명조끼를 수령했다. 우리는 바람만으로 가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나는 약간 흥분이 되고 긴장도 됐다. 동력도 없는 요트를 타고 카리브해로 나간다는 사실에. 우리가 탄 요트에는 캐나다 퀘백에서 온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네덜란드에서 온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청년, 그리고 요트를 조정하며 우리들을 돌보아 줄 승무원, 그리고 우리 셋 해서 모두 여섯 명이 탔다.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이렇게 바다로 나가보는 것이 평생 처음이다. 산골에서 자라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부산과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 등의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몇 번 몸을 담가본 적은 있지만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다. 흥분이 됐다. 이렇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저 멀리 바다로 나가 그곳에서 해변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요트는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순전히 바람으로만 가는 요트여서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훨씬 빠르게 바다를 달렸다. 요트를 타고 가면서 맞는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한 2, 30분쯤 바다로 나아갔을까? 요트를 묶어둘 부표가 보였다. 그곳에 끈으로 요트를 연결시켜 정박한 다음 우리는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을 따라 다니면서 바다 속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파도가 쳐서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 스노클링을 위해서는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수경에 물이 들어가면 벗어서 물을 빼내야 한다. 물결이 잔잔하지 않다. 스노클링하기에 좋은 기후 조건은 아니다.

파도가 일렁이면서 바닷물이 계속 입속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바다에 떠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라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못해도 물위에 떠서라도 바다 속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물고기들이 주변으로 몰려든다.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계속 손짓을 해보지만 헛일이다.

요트에서 좀더 멀리 떨어져서 헤엄쳐 가면 산호초도 보이고 경치가 좋다고 안내요원이 말한다. 그곳으로 가보지만 쉽지가 않다. 금방 물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대략 한 시간쯤 놀았을까? 약간 지친다. 요트 위로 올라간다. 비슷한 시간에 모두들 요트로 돌아온다.

원장님은 신이 났다. 물과 정말 친하게 지낸다.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 속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한다. 마치 물개가 물을 만난 듯하다. 우리는 그가 수영을 하도 잘해서 언제 체계적으로 배웠나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어릴 적부터 한강에서 그냥 놀았는데 물을 좋아해 아닌 게 아니라 ‘물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물에서 노는 동안 이 대표는 바다에 잠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서 요트 위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별로인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친구는 작은 수상용 카메라까지 챙겨왔다. 열심히 바다 속을 들여 보면서 찍는다. 캐나다에서 온 젊은 여성은 덩치가 상당해서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바다는 내 무대라는 듯 마구 휘젓고 다닌다. 두 사람은 스노클링에 상당히 익숙해 보인다.

돌아오는 길, 파도를 따라 요트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 울렁거림이 내게는 너무 재미있다. 온몸이 짜릿하다. 상쾌한 카리브 바닷바람을 폐 속으로 마음껏 들이마신다. 내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다. 멀리서 해안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아, 쿠바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그 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해안으로 돌아와 보니 교수님은 그동안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천국 같다”며 너무 좋아하신다. 오후에도 ‘이곳에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원장님은 한술 더 떠 ‘내일 오전에도 이곳에 들렀다 가자’고 하신다. 우리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정 때문에 일정이 변경되었던 것.

콜라와 맥주를 한잔씩 마셨다. 해변걷기, 수영, 주변 숙박시설 구경하기, 사진 찍기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자리 잡은 왼편 약간 떨어진 외딴 곳에 원주민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놀고 있다. 그 주변에서 두 사람이 낚시질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낚시질을 하게 놔두다니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낚시질은 그냥 시간을 낚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는 것 같았다. 고기를 잡는 게 목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일행도 있다. 장년과 청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소라껍질을 모래 속에 넣어서 연마하고 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가는데 젊은 흑인 청년이 내게 뭐라고 말을 한다. 나는 ‘올라’라고 인사한다. 그는 인사도 없이 다시 뭐라고 말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신발(간편 슈즈)과 자기 소라껍질을 바꾸자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 신발을 주면 나는 맨발이 된다. 그리고 그 소라껍질은 너무 커서 도저히 한국까지 가져갈 재간이 없었다. 나는 ‘노’라고 답한다. 그 젊은 친구는 뭐라고 중얼거리지만 나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다.

   
▲ 스쿠버 다이버를 싣고 갈 배가 바다에 떠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스노클링 위해 사람들을 싣고 바다로 나가는 요트. [사진제공-임영태]

 

   
▲ 해안에 대기 중인 요트. [사진제공-임영태]

 

   
▲ 스노클링을 즐기는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녹색 바다 속으로. [사진제공-임영태]


앙꼰의 일몰을 구경하다

한편, 우리는 호텔에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카드가 되면 그곳에서 점심도 해결하고 좀 쉬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금만 받고 식사는 호텔 투숙객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이곳으로 와야 될 것 같다.

한동안 물놀이를 하고 났더니 운전기사가 우리를 숙소로 데리고 가기로 약속한 오후 1시가 되었다. 우리들은 물에 젖은 상태로 택시를 탔다. 우리가 미안해 하니까 기사가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식사 준비가 안 돼 있다. 우리는 생선요리가 돼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서 우리가 저녁에 생선을 먹겠다고 한 줄 알았던 모양이다. 결국 영어를 좀 하는 이웃집 할머니까지 동원한 끝에 가까스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생선은 이미 손질해 놓았고, 튀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주인 부부와 젊은 여성(가까이 사는 딸인지 아니면 이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이 생선을 튀기고 오이를 쓸고 야채와 밥을 준비했다. 식사준비는 금방 되었다. 그러나 원장님과 이 대표는 식사를 제대로 못한다. 이 대표는 생선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영 먹지를 못한다.

교수님이 가장 씩씩하게 식사를 하신다. 자기 정량을 다 드신다. 나도 가까스로 내 정량은 처리했다. 내 입맛에는 생선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입맛을 잃어버린 이 대표는 생선이 ‘너무 팍팍하다’고 말한다. 내가 먹은 바로는 우리가 먹는 참치와 고등어의 중간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퍽퍽한 느낌이 있었지만 조기와 도미의 중간 맛 비슷했다. 우리 여행팀은 한국에 돌아온 뒤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라보카 해변에서 먹은 생선이야기가 나왔다. 역시 이 대표와 교수님이 생선 맛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점심식사 후 오후 3시쯤 우리는 다시 앙꼰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에 차지한 그늘막을  그대로 차지했다. 오전에 그늘막을 두고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우리는 그늘막을 하나 차지하고 누웠는데도 돈을 받는 기미가 안 보여서 좋아했다. “역시, 사회주의라서 해변에서도 편의시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모양이다. 야, 쿠바 좋다”라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웬걸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금방 젊은 관리인이 자릿세를 받으러 왔다. 아마도 공무원일 것이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1인당 2꾹이란다. 원장님이 협상을 잘해서 우리는 4꾹을 내기로 했고 비치의자도 3개나 확보했다. 오전에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또 다른 약간 나이든 중년의 관리인이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그 자리로 안내했다.

오후, 햇볕이 너무 강렬하다. 기어코 내 다리가 다 익었다. 교수님은 그늘에만 계셨는데도 저녁에 심한 화상으로 고생하셨다. 내 얼굴도 하루 만에 다 타서 이 대표와 똑같아졌다. 오후는 시간이 잘 안 갔다. 이리저리 물속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모래사장을 걷기도 했지만 시간이 잘 안 갔다.

바닷가여서 더위는 덜했지만 워낙 햇볕이 따가워 물에 들어가 있어도 강렬한 햇볕에 금방 지쳤다. 게다가 오후에는 바닷물 수질이 오전과 비교해 훨씬 나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강해지면서 바다 속 해초들이 밀려와 물이 흐려졌던 것이다. ‘역시 바닷물이 깨끗하기는 동해가 최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뒤 교육방송의 쿠바기행 다큐영상물을 보니까 우리가 있던 남쪽의 앙꼰 해변과 달리 북쪽의 바라데로 해변의 물은 정말 깨끗했다. 하기는 모르겠다. 직접 물속에 들어가 보면 또 다를지.

바람이 불면서 파도도 약간 더 심해졌다. 맥주 2캔과 콜라 1캔, 손바닥 크기의 피자를 하나를 간식으로 먹었다. 피자가 1꾹이고, 맥주가 1.5꾹, 콜라가 1꾹이다. 가격은 라보카나 앙꼰이나 똑같다. 아니, 이곳이 더 쌌다. 아마 쿠바의 개방이 가속화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면 이런 가격체계도 달라질 것이다. 앙꼰처럼 이름난 휴양지의 물가가 훨씬 비쌀 것이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 앙꼰에서 석양을 반드시 보고 싶었다. 일몰시간은 대략 8시쯤으로 예상되었다. 교수님은 오후가 약간 지루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5시쯤 되니까 그때부터 벌써 모기떼가 달려들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6시도 안 돼 떠나자고 재촉한다. 각다귀와 모기가 온몸을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다른 사람들도 약간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일몰과 석양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해는 6시가 되어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7시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 이 대표와 유원지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해변가뿐만 아니라 호텔 존 뒤에 있는 바다와 연결된 담수호까지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쪽은 바닷가보다 모기떼가 훨씬 더 많았다. 모기와 각다귀의 극성에 우리는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재빨리 해안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7시 30분, 드디어 해가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앙꼰의 태양은 쉽게 수평선 너머로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태양 빛이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은 일몰직전까지 그대로다. 어느 소설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대 청춘시절 읽은 한 책에서 주인공이 ‘적도의 태양이 그렇게 이글거리며 타오른다’는 말을 계속했던 게 새삼 생각났다. 정말이지 쿠바의 태양은 수평선 아래로 잠들 때까지 강렬하게 타올랐다.

마침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지는 해도 떠오르는 해처럼 크고 강렬하다. 카리브해의 태양은 질 때도 빛을 잃지 않는구나 싶다. 우리들은 일몰 광경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언제 다시 저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랴. 드디어 해가 졌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 일몰 직전 앙꼰의 태양은 강렬하게 빛났다. [사진제공-임영태]

 

   
▲ 눈부신 일몰 직전.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의 강렬한 일몰.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의 일몰 광경이 황홀하다. [사진제공-임영태]


일정을 변경하다

앙꼰에서 라보카의 숙소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내일 오전에 앙꼰 해변에 오는 것은 취소하고 아침 10시에 산타클라라로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 바다에서 노는 게 너무 힘들었나 보다. 앙꼰 해변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트리니다드에서 라보카로 오면서, 우리를 실어다 준 올드카 주인과 이미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 기사가 12시에 숙소로 와서 우리를 싣고 산타클라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약속 시간을 앞당겨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앙꼰의 기사에게 부탁했다.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2시간 앞당겨서 10시까지 와 달라는 말을 올드카 기사에게 전해달라고. 두 사람은 친구로 연락이 된다고 했다. 앙꼰의 기사는 영어로 조금 했기에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의사가 전달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 문제가 생기고 만다.

저녁은 닭고기 만찬이었다. 랍스타와 닭고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랍스타는 비날레스에서 이미 먹었으므로 닭고기로 정했던 것이다. 뽀요(pollo)라고 불리는 닭고기는 멕시코에서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우리 일행은 닭고기를 그다지 안 좋아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닭고기는 기름기가 거의 없었다. 밥도 우리의 볶음밥 비슷했다. 음식은 모두 담백했고, 이상한 향료나 양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원장님은 거의 식사를 못한다. 이 대표도 여전히 입맛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수님과 나만 식사를 제대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못 먹으니 나도 입맛이 잘 땡기지 않았다. 혼자서 계속 먹기도 그랬다. 그래도 나는 웬만큼은 식사를 했다. 왕성한 그 식욕을 자랑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 정량을 충분히 먹었던 것.

이 대표와 나는 저녁식사 후 거리로 나가 간이매점에서 콜라 2캔과 사이다 1캔을 샀다. 콜라는 그 자리에서 마시고 사이다는 집에 가져와서 마셨다. 사이다는 가세오사(gaseosa: ‘음료수’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칠성사이다 맛과 별 차이가 없었다. 쿠바 토속 상품인 투 콜라(Tu Kola)도 코카 콜라 맛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우리도 과거 토속상품의 콜라와 사이다가 있었지만 미국의 글로벌 상품에 다 밀렸다. 쿠바는 글로벌 상품과 싸워 자기 상품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연 개방된 쿠바의 앞날은 어떨까? 쿠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후 쿠바는 과연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까? 앙꼰 해변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다시 쿠바를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내 머릿속을 떠 다녔다.

밤 10시 30분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물에서 놀아 그런지 상당히 피곤하다. 그래도 오늘은 일출도 보고 일몰도 보고 운이 좋은 날이다. 이제 나도 자야겠다. 내일 아침에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앙꼰 해변에서 만난 티코 승용차. [사진제공-임영태]

 

   
▲ 앙꼰 휴양지 주변의 담수호. [사진제공-임영태]

 

   
▲ 숙소로 돌아오면서 본 저녁 구름.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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