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00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진 이집트의 토편 문서를 보면 주로 국가의 법령과 왕의 칙령 같은 글들이 적혀 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흙벽돌 문서 중에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글들도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글들이다.

“요즘 젊은 것들이란, 도무지 버릇이 없어서…….”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 차이는 늘 있어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젊은이들은 늘 버릇이 없고, 그 윗세대는 자신들의 젊은 시절은 기억조차 않고, 개구리마냥 올챙이들의 천방지축을 한탄한다.

단군 이래 역대 최고의 스펙이란, 도무지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 대한 평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직 좋은 대학엘 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그 후에는 좋은 직장을 얻어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만 똘똘 뭉쳐있다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개인의 철학 혹은 역사적 인식은 태부족하다는 비판.

생각해보면 우습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젊은이들을, 그런 구도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안으로 몰아넣고 이른바 ‘사육’을 해온 집단들이, 정작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뤄지자,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성공이다!”라고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항상은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 보다 현명하고 또한 용감하다. 때론 지혜롭기까지 하다. 그것을 경이롭다거나 기적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미 마음까지 노화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은 거짓 앞에 보다 당당히 진실을 말하곤 했다.

▲ 고은 외, 『대한민국 청소년에게-2.0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진실한 고백』, 바이북스, 2008.8.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 아름다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기성세대들의 고백이자 사과이자 격려다. 2008년 5월이었던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그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고백이다.

하나의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의 자주성과 연결되었고, 급기야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그때 등장한 교복을 입은 소녀들은 0교시 철폐와 더불어 ‘자유롭게 상상하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를 환하게 수놓았다. 당시 기성세대가 이들로부터 받았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늘 그래왔지만, 여권은 물론이요, 야권마저 이들의 촛불을 감히 따라가지 못했다. 기존 시민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한 국가의 역사를 일개 ‘가족사’로 만들고 싶어 하는 지도자와, 그를 보필하는 환관세력, ‘묻지마’ 지지로 스스로의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 버리는 가여운 이들과 눈먼 앵무새마냥 오직 ‘무조건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를 중얼거리는 언론까지. 이 구역질도 아까운 시대에, 바른 말을 던지고 바른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왔고, 또한 당당하게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했다.

“학생들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주절대는 정치인들의 비루함 속에서도 젊은 학생들의 기개와 소신은 퇴색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우뚝했고, 선명했다. 정작 비굴한 것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바른 소리’라고 우기는 기성세대들이었다. 역사 앞에 진정 버릇없는 것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그래왔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그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온갖 추악한 짓거리에 눈을 감거나 혹은 적극 동참한다. 먹고 사는 것의 숭고함,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음에도, 오직 비루함을 숨기기 위해 다른 모든 이유와 변명을 그 안에 매몰시킨다. 비겁하다 못해 처량하다.

책은 그나마 양심이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어른들이, 촛불을 들었던 아이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이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모든 젊음에게 바치는 글이다. 그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함께, 스스로 이 따위로 세상을 더럽힌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부디 지금의 젊음은, 다가올 젊음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진심이다.

개소리에 확성기를 가져다 댄다고 해서, 음악으로 바뀌진 않는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조리 다 틀어막는다고 해서, 과거가 변할 순 없다. 추악함이 사라질 순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직 어른이라 짓까부는 기성세대들만 모르쇠하고 있을 뿐이다.

책 속에 담겨진 따뜻한 어른들의 이야기들 속에, 아이들은 물론, 마음이 지쳐버린 어른들도 한번 쯤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적어도 비겁함과 비루함을 애써 포장하려 하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그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만 살아도 우리 생은 충분히 본전은 뽑는 것이다.

“언젠가 이 문제가 해체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쟁과 공존이 병행하는, 효율과 협동이 병행하는 그런 한국이 생겨났을 때, 그리고 10대들이 비로소 지금의 교육 파시즘과 학교 파시즘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그때 우리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212p, 우석훈 <우리를, 언젠가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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