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아침 등교하기 전 공원에 모여 있는 쿠바 아이들. 생기발랄하고 천진한 모습에 보는 사람이 절로 즐겁다. [사진제공-임영태]

 

‘우리를 거지 취급하는 건 아니겠지?’

6월 22일 월요일 새벽, 눈을 뜨고 보니 아직 4시밖에 안 됐다. 닭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이 소리들은 쿠바의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새벽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다. 나는 쿠바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닭울음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아바나와 산타클라라에서는 닭울음소리를 못 들었으니 절반밖에 안 되는 동안이지만 느낌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들은 것 같다.

나는 후에 LA 친구집에 가서도 닭울음소리를 들었다. 내가 쿠바에 있는 동안 들은 것 때문에 환청이 들렸나 싶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라티노들이 종종 집에 닭을 키운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경찰에 신고해 말썽이 되기도 한다고. 멕시코 칸쿤의 중국요리집 중국성에는 뽀요(닭고기) 요리가 많았는데,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닭고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잠을 좀 더 자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누워 있지만 잠은 안 온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깨어 보니 6시다. 몸이 개운하지 않고 피곤하다. 좀 더 자야한다는 생각으로 누워있지만 잠은 안 올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옥상에 올라가서 주위동네를 둘러본다. 소도시 트리니다드 변두리 동네의 아침 광경이 평온하다. 아직은 길거리에 사람들의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때 트랙터 한 대가 짐칸을 달고 지나갔다. 조금 뒤 또 다른 트랙터가 골목길을 지나갔다. 농장에 일하러 가는 모양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건너 오른편 집 1층 현관에서 출근차림을 한 아저씨가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운다. 그 모습을 보니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아무래도 이 소도시의 아침 광경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가 너무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5시쯤 잠깐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너무 피곤한 모양이다. 깨울까말까 망설이다가 깨운다. 더 자겠다면 혼자 나갈 생각으로. 이 대표가 힘들게 일어난다. 트리니다드의 아침을 봐야 한다면서.

숙소 대문을 열고 나왔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 비 올 때 빗물이 쓸려 내려간 아래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빗물은 어디로 빠져나갔을까? 어제 빗물에 버린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궁금증이 발동했다. 아래쪽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수로가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물이 없지만 비가 오면 수로 역할을 할 것이다. 아마도 저 물길은 작은 냇물이나 강, 또는 늪지 같은 곳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이 도시의 위생과 환경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하수도 정화시설이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숙소 앞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돌아서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조금 걷다가 공동묘지를 만났다. 아바나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트리니다드의 도시 크기를 생각할 때는 상당한 규모였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개들도 몇 마리 만났다.

우리가 묵었던 아바나 숙소 주변에도 개들이 상당히 많았다. 사람들이 다니는 것처럼 골목길마다, 거리마다 개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마 주인이 집에서 개를 돌보지 않고 그냥 길거리에서 방목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개들이 비쩍 말라 있었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한번은 아침에 말레꼰 해변을 산책하는데 개 한 마리가 한참동안 우리를 뒤따라왔다. 하지만 우리는 아침에 달랑 사진기 하나만 들고 나온 상태여서 개한테 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가게에서 뭘 사서 줄 수도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로의 말만 건네고 헤어졌다.

아바나에서 만난 개들은 사람을 보고 짖거나 하는 등 경계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개들이 매우 순한 듯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농담 삼아 “개들도 사회주의 체제에 살아서 그런지 너무 순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곳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개 몇 마리가 우리를 보고 짖었다. 덩치도 큰 놈들이 짖어대면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뒤꽁무니를 빼니까 약간 기분이 상했다. ‘설마 우리를 거지 취급하는 것은 아니겠지?’

▲ 아침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올드카. 우리는 얼마 뒤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올드카를 만난다.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 산책 중에 만난 트리니다드의 공동묘지.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의 아침 골목길. [사진제공-임영태]

 

▲ 직장에는 아직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다. [사진제공-임영태]


앙헬리스 계곡으로 가는 기차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갔더니 외곽 농촌지역으로 빠지는 도로가 나왔다. 사람들이 출근길 차량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버스가 아니라 트럭이나 트랙터를 개조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시내버스도 간간히 보였고, 그걸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승용차 카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띠었다. 220만 명의 대도시 아바나에서는 시민들이 출근길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인구 7만 명이 약간 넘은 소도시 트리니다드에서는 쿠바인들이 어떤 교통수단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는 지 쉽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날 아침 우리는 쿠바의 소도시 트리니다드(주1)의 다양한 출근길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월요일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표정은 찌들어 있지는 않았다. 무표정, 담담함이랄까? 우리나라처럼 종종걸음을 치거나 힘든 표정은 짓는 사람은 별로 안 보인다. 그렇다고 꼭 명랑하고 쾌활한 표정도 아니었지만 여유는 있어 보인다. 어쩌면 그들도 우리가 앓고 있는 월요병 비슷한 것을 앓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사람이란 대체로 느끼는 고민이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직장에 따라서, 가는 방향에 따라서 그들이 타고 갈 차들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출근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 계속 걸었다. 시엔푸에고스, 라보카 해안, 양꼰 해변을 가리키는 푯말이 나온다. 라보카는 4km, 앙꼰은 12km, 시엔푸에고스는 몇 km라고 적혀 있다. 오늘 우리는 앙꼰 해변으로 갈 예정이다. 이미 택시도 예약돼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이렇게 나와서 돌아다니자니 배가 너무 고프다. 어제 우리는 너무 먹은 게 없었다. 우리는 먹을 곳이 있으면 배를 좀 채우자고 결의했다. 마침 길거리에 간이음식점이 보였다. 망고주스 두 잔과 과자(쿠키)를 하나 시켰다. 망고주스는 물을 약간 희석해서 설탕을 탄 것인데 달달하고 먹을 만했다. 100% 천연주스가 아니어서 더 나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주스음료 맛에 가깝다고나 할까. 쿠키도 먹을 만했다. 한 개 사서 둘이 나누어 먹었는데 ‘좀 더 먹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걸으면서 보니 공장이나 사업장들이 대부분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몇몇 작업장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엄마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한 엄마는 어깨에 가방을 맨 채, 왼손에는 자기 짐을, 오른손에는 아이의 짐을 들고 갔다. 아이의 짐은 점심 도시락인지, 신발주머니인지 또는 다른 비품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자기 가방을 메고 무어라 조잘대며 걸어간다. 엄마와 함께 걷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혹시 오늘 소풍날인가? 월요일인데 아니겠지?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않는가?’ 물어보고 싶으나 말이 통해야지….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조금 더 걸었더니 앙헬리스 계곡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 나왔다. 앙헬리스 계곡에는 과거 트리니다드가 사탕수수로 이름을 날릴 때 대지주가 경영하던 농장과 건축물이 남아있는데 경관이 빼어나다고 한다. 기차역은 버스정류장이나 마찬가지로 간단했다. 시멘트로 만든 플랫폼에 지붕을 씌워놓았다. 역사 바로 맞은편에 대합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역시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처음 우리의 여행계획에는 앙헬리스 계곡으로의 여행이 들어있었지만 일정상 포기하기로 했다. 마침 쿠바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EBS에서 쿠바여행기를 방송하고 있었다. 그 중 트리니다드 편에서 앙헬리스 계곡으로 열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왔다. 열차는 시속 30~40km의 느린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잠시 동안 내 자신이 열차를 타고 앙헬리스 계곡으로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 출근길 버스. [사진제공-임영태]

 

▲ 트럭 짐칸에 타고 출근. [사진제공-임영태]

 

▲ 개조한 출근 차. [사진제공-임영태]

 

▲ 트랙터를 개조한 차량을 타고 출근. [사진제공-임영태]

 

▲ 출근 차. [사진제공-임영태]
▲ 출근 차를 기다리는 쿠바인들. [사진제공-임영태]

 

▲ 트럭 뒷칸에 타고 출근. [사진제공-임영태]

 

▲ 걸어서 출근. [사진제공-임영태]

 

▲ 드디어 직장에 도착.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의 역사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역 플랫폼.[사진제공-임영태]

 

▲ 역사 안의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역사 안의 기차 승차 가격표. [사진제공-임영태]

 

▲ 체는 어디에나 있다. 역사 안의 체 게바라 사진. [사진제공-임영태]

 

▲ 시엔푸에고스, 앙꼰을 가리키는 표지판. [사진제공-임영태]

 

▲ 아침 출근길에 시민들이 간단한 요기를 하는 식음료 가게.[사진제공-임영태]


쿠바의 무상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역사를 지나서 좌측으로 꺾이는 길을 따라서 계속 나아갔다. 트리니다드는 작은 도시여서 그렇게 계속가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우리들 앞에서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등교하는 모양이다. 이곳 학생들의 교복 색깔은 아바나와는 다르다. 바지와 치마는 짙은 붉은 색이고, 웃옷은 흰색이다. 반면, 아바나 학생들의 바지(치마)는 노란색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울타리도 제대로 안 돼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학교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상당히 규모가 커 보이는 학교다. 운동장 시설은 빈약했다. 농구대가 양쪽에 서 있을 뿐 다른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축구골대도 없었다. 담장도 없이 곳곳에 구멍이 나고 여기저기 찢어진 철망으로 대충 경계를 지어 놓았을 뿐이다. 학교 건물도 낡았고 허름하다. 단층 건물도 있고, 2층이나 3층 건물도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쿠바는 돈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깨끗한 새 학교 건물을 지을 만한 자금이 없다. 쿠바는 혁명 후 경찰서, 병영 등의 건물들을 개조하여 학교 건물로 많이 사용했다.(주2) 그러다 보니 학교 건물은 낡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물려가면서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과 달리 쿠바는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으로 이름나 있다. 쿠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상교육이다. 무상교육은 쿠바 혁명의 가장 중요한 이유, 목적이기도 하다.

요시다 다로가 쓴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에 의하면, 쿠바는 유치원에서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이 무료로 이루어진다. 어떤 오지에도 학교가 있으며, 기숙사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쿠바에서는 능력과 적성만 맞으면 누구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또한 성인교육과 평생교육 시스템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어서 전 국민들이 언제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쿠바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에도 쿠바 정부는 교육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주3)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쿠바의 충실한 교육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교육내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농업교육과 지구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생태주의·유기농업·환경보호 등에 대해서 배운다. 나아가 학습한 내용은 직접 체험하게 하여 학습과 노동을 연계하는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이 환경을 보존하고 살리는 법을 배운다.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호세 마르티의 말이다. 이 말은 쿠바혁명, 쿠바교육의 출발점이 되었다. 쿠바의 교육은 인간의 삶을 행복하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자기 삶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인간이 해방되기 위한 것, 그것이 교육의 목표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 목표는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경쟁위주의 교육체계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중고등 학생의 학력평가에서 늘 세계 1~3위권을 맴도는 한국이지만 인간해방, 참다운 인생의 목표와는 전혀 거리가 먼 교육이다. 환경과 자연을 살리고 인간 사이의 소통과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통 부재, 개인주의, 환경파괴를 부추기는 개발주의가 판을 친다. 오로지 남을 밟고 올라서기 위한 경쟁에만 익숙한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쿠바 교육을 이해하기 힘들다.

▲ 등굣길의 아이들. [사진제공-임영태]

 

▲ 등굣길. [사진제공-임영태]

 

▲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 [사진제공-임영태]

 

▲ 엄마와 함께 등교. [사진제공-임영태]

 

▲ 다정히 엄마와 손 잡고 등교.[사진제공-임영태]

 

▲ 아빠 자전거차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학교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우리가 쿠바 교육에서 배울 것은?

쿠바는 혁명 이후 연간 국가예산의 23%, GDP의 10~11%를 교육에 투자해왔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이와 가장 가까운 나라가 핀란드인데 6%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게 교육에 높은 투자를 한 결과 쿠바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도 최상위권이다. 1997년 라틴아메리카 1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학력평가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시와 농촌,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학력격차가 크지만, 쿠바에서는 전혀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주4)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공교육 문제를 거론하면서 모범적인 교육국으로 한국을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2005년 유네스코에서도 교육 모델국으로 핀란드, 한국, 캐나다, 그리고 쿠바를 선정한 바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교육이 높은 성취도를 자랑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학생들의 학력 또한 세계 최상위권에 들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결코 잘 돼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철저히 서열화된 대학과 비싼 학비, 그 대학을 가기 위한 살인적인 입시경쟁, 점차 붕괴되어 가는 공교육체계, 부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교육과 과외의 만연 등 한국 교육의 심각한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쿠바의 교육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한국의 교육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쿠바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지만 교육 강국, 교육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한국에서 성적만을 강조하는 일부 교육자들은 수월성교육이니, 경쟁력 강화니 하면서 중학교 무시험 제도를 없애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러나 훌륭한 교육은 그런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쿠바에서 볼 수 있다.

경제적 풍요가 교육 평등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면 뭐 하겠는가? 정말이지 무상교육도 아닌 무료급식 가지고 그 난리를 치는 이 나라가 부끄럽다. 가진 자들의 탐욕이 끝이 없는 이 나라가 개탄스럽다. 그들은 오직 대를 이어 부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난리를 부리고,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 그들은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후안무치를 자랑할 뿐이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교육에서는 최고의 선진국인 쿠바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봐야 할 내용이다.

▲ 트리니다드 아침 산책길에 광장에서 만난 학생들.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 아침 산책길에 만난 학교로 보이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던 한 건물. 쿠바는 혁명 후 경찰서, 군부대 등을 개조하여 학교로 활용한 경우가 많다.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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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위키백과에 따르면, 쿠바 중부 상크티스피리투스 주에 위치한 트리니다드(Trinidad)의 면적은 1,155㎢, 인구는 73,466명(2004년 기준), 인구 밀도는 63.6명/㎢이다.

2)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후, 쿠바의 병영을 개조해 학교로 만들겠다고 연설한 뒤, 옆에 있던 시엔푸에고스를 돌아보면서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지?’라고 물었더니, 시엔푸에고스가 ‘잘 하고 있어, 피델’하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쿠바 아바나 혁명 광장 앞 건물벽에 철근으로 만든 시엔푸에고스의 초상 밑에 있는 그 대답이다.

3) 요시다 다로 지음/ 위정훈 옮김,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파피에, 2012) 참고.

4) 요시다 다로, 위의 책, 2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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