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 첫 만남이 24일 오후 3시 30분부터 금강산에서 시작됐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 첫 만남이 24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시간 3시 30분)부터 시작됐다.

‘반갑습니다’ 노래에 맞추어 북측 방문 가족들이 2시 35분께부터 상봉장인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 입장을 시작했으며, 이어서 남측 상봉 가족들이 10분쯤 뒤에 들어왔다.

북측 할머니들은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들어왔으며, 날씨가 포근해진 탓인지 할아버지들은 1차 상봉때와 달리 바바리코트와 중절모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1층 로비에서 나선형으로 올라오는 중앙계단을 통해 2층 연회장으로 남측 상봉 가족이 올라오자 북측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각자 가족들을 찾았다.

남북 가족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으며, 상봉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아이고’ 등의 소리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옛날 흑백사진을 꺼내들고 기억을 더듬으며 가족 관계를 확인하고 최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근황과 친적, 가계도를 설명했다.

이번 상봉에서는 6.25 전쟁 당시 납북된 오빠를 만나러 온 가족과 1972년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 아들을 만나러 온 어머니 등 납북자 가족 2명과 65년만의 부부상봉 1가족, 부자상봉 2가족, 모자상봉 4가족 등이 만나 가슴 아픈 사연들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봄타령, 밀양아리랑, 고향의 봄 등이 상봉 시간 내내 배경음악으로 흘렀으며, 시간이 갈수록 점차 차분해 지는 가운데 사진을 찍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가족이야기를 나누었다.

2차 상봉행사 첫날 첫 단체상봉은 2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5시에 끝났다.

▶ “좋은 세상에서 살았어. 근심 걱정 없어”

▲ 지난 1972년 오대양호 선원이었던 정건목씨가 43년만에 어머니 이복순씨를 만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복순(여, 88) 할머니는 지난 1972년 12월 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쌍끌이 어선 오대양호의 선원이었던 아들 정건목(64)씨를 43년 만에 만났다.

북측 가족들 사이에서 입구쪽을 응시하고 있던 건목씨는 10분 뒤 먼저 입장하는 큰 누이 정매(66)씨와 여동생 정향(54)씨를 보고는 양팔로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 없이 울던 건목씨는 곧 도착한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휠체어에 탄 채 앉아 있는 어머니를 껴안고 “엄마”라고 외치고는 옆의 아내를 가리키며 “며느리야,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울고, 건목씨는 큰 누이와 여동생을 끌어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 건목씨는 어머니에게 “내가 다 알아. 사니까 이렇게 만나네요. 보세요.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지”라고 말했다.

21살 때 가족과 헤어진 건목씨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그렇게 어머니 앞에 섰다.

며느리 박미옥(58)씨는 처음 보는 시누이 정매씨에게 “우리 빨리 힘을 합해 통일돼서 함께 삽시다. 통일될 때까지 어머니 잘 모셔달라”고 말했다.

건목씨는 아내를 사이에 두고 한 칸 건너 자리에 있는 어머니쪽으로 몸을 쭈욱 내밀고 어머니는 손을 뻗어 아들 얼굴에 손을 대고 쓰다듬었다. 아들은 그 손을 아래로 내려 꼬옥 꼬옥 눌러가며 안마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네가 나이를 먹으니까 큰 형을 닮았구나”라고 그윽하게 아들을 쳐다보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의 입에 과일을 직접 먹여주기도 했다.

▶ “미안하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규명(86) 할아버지는 65년 만에 만난 부인 한음전(87) 할머니에게 “난 전규명. 한음전?”이라며 확인부터 하고는 “예쁜데 키가 작아. 컸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손으로는 부인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인은 남편의 귀에 대고 “(당신) 동생 이름 기억 안나?”라고 묻고는 남편이 “규태, 규현이...”라고 확인하자 모두 사망했다고 소식을 알렸다.

한음전 할머니와 함께 온 아들 완석(65)씨는 쑥스러운 듯 옆에 서서 “아버지 제가 아들이에요”라고 말했다. 조카 천석(75)씨는 전규명 할아버지의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할머니(전규명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몇 년 안됐다. 할아버지는 53년전에 돌아가셨다”고 전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전날 속초 한화 리조트에서 회색 정장에 중절모 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아 등록 절차를 밟으면서도 곧 만날 가족들 생각에 손수건으로 간간이 눈가를 닦았다.

부인을 만나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미안하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 행방불명된 21살 청년이 32살 딸을 데리고 아버지 앞에 서게 된 사연

▲ 여동생 순옥씨가 "오빠가 최고 잘생겼고 노래도 잘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빠 배상만씨를 칭찬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배양효(92) 할아버지는 작은 아들 상석(60)씨와 딸 순옥(55)씨를 데리고 북의 아들 상만(65)씨와 손녀 은희(32)씨를 만났다.

지난 1972년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행방불명된 북의 아들은 43년만에 32살의 딸을 데리고 나와 아버지와 동생들을 만났다. 상만씨는 “아버지 만나서 얼마나 좋나”며 쌍둥이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들과 딸을 두고 동생이 사망했다는 것. 아버지는 혼자 지내고 있는 북의 아들이 안쓰러워 “남북 통일되면 부부끼리 와야 내가 받아주지”라며, “너 오면 줄려고 2천만원 들여서 깨끗이 청소해 놨어”라고 아쉬움 가득하게 말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 동생들은 상만씨에게 노래를 청하고 그렇게 시작된 ‘고향의 봄’을 상만씨와 동생들은 아버지 앞에서 신명나게 불렀다.

여동생은 “오빠가 돈 벌어서 옷 사준다고 해놓고 연락이 없었어”라며 어리광을 부리다가 “오빠가 최고 잘 생겼고 노래도 잘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빠의 기운을 돋구기도 했다.

▶ 남측 언니와 만난 북의 유쾌한 세 자매

▲ 언니 조순전(맨 오른쪽 앉아있는 이) 할머니를 만난 북의 여동생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남 5녀의 다복한 형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남쪽에 살던 오빠와 북의 언니를 잃고 4자매만 남게 됐다. 조순전(83) 할머니는 마치 세쌍둥이 같이 닮은 북의 여동생들 서분(79), 성녀(76), 귀녀(75)씨와 만나 알콩달콩 옛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언니가 “이렇게 만나다니 이제 만나니”하고 말문을 열자 막내 동생 귀녀씨는 고향인 황해도 벽송군 영호리에서 멀지 않은 벽송읍에 살고 있고 성녀씨는 “청단으로 시집가서 내가 친정 어머니·아버지 다 모셨어”라고 도란도란 봇물터진 듯 말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큰 조카 홍용기(61)씨가 “동생들 만난다고 어머니가 한 잠도 못 주무셨어요. 이모님들이 건강해서 좋아요”라고 말하자 “조카는 무슨 일 해”라며 근황을 묻기도 했다.

▶98살 아버지, 70살 아들·41살 손자 만나다

▲ 최고령 상봉자인 이석주 할아버지가 북의 아들 동욱씨(왼쪽)에게 남쪽 동생 동진(61)씨를 소개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최고령 상봉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는 북의 아들을 만나자 마자 “이동욱이 맞냐”고 물었다.

북의 아들 동욱(70)씨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참기로 결심한 듯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행한 남쪽 아들 동진(61)씨를 가리키며 “니 동생이다. 올해 환갑이야”라고 알려주었다.

동욱씨는 데리고 온 아들 용진(41)씨를 소개했고 손자가 큰 소리로 “할아버지”라고 하자 100세가 내일 모레인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계속 아들을 부르며 4살 위인 맏딸 금자씨가 왜 오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누나가 있는데 이번에 못 왔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운신을 못해요”라고 동욱씨가 말하자 아버지는 금세 눈물이 가득했다.

동행한 딸 경숙(57)씨가 “아버지는 휠체어까지 타고 오셨는데, 휠체어도 타고 못 오셔요”라고 재차 묻자 “운신을 못하니까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또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품에서 코팅된 사진 6~7장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젊을 때 엄마 사진이에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이 양반하고 내가 스물여덟하고 서른 넷에 헤어져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고령의 아버지는 시종 아들을 “야”라고 부르며 며느리 사진도 보아주고 아들이 광산에서 일한다는 소식도 들어주었다.

손자 용진씨는 “할아버지 오래 사셔야죠. 그리니까 나쁜 놈들 쫓아내고 조국통일을 해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가2-20:20)

(수정-27일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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