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또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떠밀 듯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모두, 자신이 현명하다고, 또는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 오직 유일하게 정신이 말짱하다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지나친 이들은, 때문에 때때로 무모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불안하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가 바로 우리다.

어차피 삶의 해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딱 그 수만큼 해답과 오답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상황에 맞게 해답을 만들어내고, 또 오답 앞에 머뭇거린다. 때문에 겸손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해답의 강요는 또 다른 지독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마크 해던, 유은영 옮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문학수첩리틀북스, 2005.8.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열다섯 소년이다. 흔히 말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두려워하고,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반면 수학과 물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병으로 엄마를 잃은 크리스토퍼는 영국의 작은 마을 스윈던에서 수리공인 아빠와 단 둘이 살아간다. 무뚝뚝한 아빠는 때론 거친 말투로 크리스토퍼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남들과 조금은 다른 아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크리스토퍼는 어느 날 밤, 이웃집 개 웰링턴이 쇠스랑에 찔려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편안함을 느끼곤 했던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명탐정 셜록 홈즈와 같이 두뇌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수사는 생각보다 수월치 않다. 아빠는 개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도 캐지도 말라고 화를 내고, 웰링턴의 주인이었던 옆집 아주머니는 크리스토퍼의 접근 자체를 거부하며, 역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나름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하는 크리스토퍼. 하지만 차츰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의외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의 죽음에, 다름 아닌 돌아가신 어머니의 비밀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난생처음 스윈던을 벗어나는 커다란 모험을 결심하게 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크리스토퍼의 장애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차갑게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상대의 장애를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외면 혹은 무시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잠재력, 재능, 꿈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저 ‘정신이 아픈’ 아이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차별과 무관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더더욱 움츠려 들 수밖에 없다.

작품은 성장소설에 추리소설 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눈으로 세상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크리스토퍼의 유머러스한 문체에 미소가 나오다가도, 이 세상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슬퍼지기도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무지하게 게으른 셈이 된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고, 어디론가 향하지만 결국 그 뒤엔 공허함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게으르기 위해 어쩌면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참 간단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꽤 복잡하고 한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어처구니없게 간단해 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요약하라면, 과연 난 얼마나 오래 길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던 이들이 어느 날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타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고통보다 더한 외면, 무관심이라는 상처로 아파한다. 하지만 정녕 우리가 그렇게 타인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의 생존을 위해? 아니면 행복을 위해? 나의 우주와 ‘너’의 우주를 과연 차별하고 구분 지을 권리가 있을까.

아픔이 많은 세상이다. 초라한 인간이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세상이지만, 문득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또한 나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누군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이 눈물겹게 고맙다. 크리스토퍼의 인생과 나의 인생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결정짓지 말아야 하리라.

그냥 한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나는 소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들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이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소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절대 알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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