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전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1회차 작별상봉이 마무리됐다. 남의 딸 이정숙 씨는 아버지 리흥종 씨에게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기약없는 작별을 고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상봉 3일째 되는 22일 오전 남북 이산가족은 피하고 싶은 작별상봉의 순간을 맞았다.

전날 오후부터 내린 비가 새벽까지 이어지면서 이날 오전 비는 그쳤지만 전날보다 쌀쌀한 가운데 마지막 말 그대로 '작별상봉'이 시작됐다.

상봉장에 먼저 도착한 남측 가족들은 북측 가족들이 입장할 문쪽을 쳐다보며 예견된 작별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작별상봉은 북측 가족들이 오전 9시(현지시간, 서울시간 9시 30분) 이산가족면회소에 입장하면서 시작, 11시에 종료됐다. 이번 작별상봉부터 기존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로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제1차 상봉행사는 종료됐으며, 남측 참가자 380여명은 이날 오후 육로로 귀환한다.

남북 양측은 23일 하루 휴식한 뒤 24일부터 26일까지 남측 방문단과 이들을 만나러 오는 북측 상봉단의 제2차 상봉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어요”

문이 열리고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가족들은 달려가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의자에 앉혀드렸다. 그리곤 딸과 여동생이 아버지의 손을 한쪽씩 잡고 울기 시작했다.

딸 이정숙(68) 씨는 아버지 리흥종(88) 씨의 오른 손을 두손으로 꼭잡고 “아버지,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나 했어요.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계시는지. 누가 상상이나 했어요”하면서 오열했다.

딸은 작별의 순간에도 “아빠, 내가 또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볼께요. 아빠...”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아버지의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여동생 이흥옥(80) 씨는 오빠의 왼손을 두손으로 꼭 잡고 “오빠 어떻게...오빠 어떻게...”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입술을 떨면서 흐느꼈다.

아버지는 남측 가족들이 가져온 선물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형편이 괜찮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상봉에서 “이렇게 선물 주고도 남측에서 살기 괜찮으냐”고 걱정하는 메모를 전하기도 했던 터였다.

정숙 씨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 북의 아들 리인경(55) 씨는 천정 쪽을 바라보면서 애써 눈물을 참아보지만 눈시울은 빨개지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다음 날 작별상봉이 있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던 정숙 씨는 상봉 마감 10분을 남기고 정리 안내 방송이 나오자 “왜, 뭘 그런걸 해...내일 아침에 또 보잖아”라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갑자기 울먹이다 끝내 오열했다.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게 이게 끝이래요. 아버지...그러니까 아버지 우리가 이게 끝이래요...그래서 큰절 받으시래요.”

정숙 씨는 손수건 한 장을 아버지 손에 쥐어 주면서 “아버지, 이 수건 아버지하고 저하고 나눠 갖는 거니까 아버지 잘 간직하셔야 되요”라고 아버지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다시 오열했다.

아버지는 이 모습을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다가 “마음 든든하게 하고”라고 말했다.

버스에 승차한 뒤에도 아버지는 계속 가족들이 뛰어오는 뒤쪽을 쳐다보며 기다리다가 창문이 열리자 딸과 조카의 손으로 붙들고는 멍하니 바라 보았다.

▶ “아들도 잘 키우고, 맘은 크게 먹고...”

▲ 65년만의 부부상봉, 부자상봉으로 관심을 모았던 북측 오인세 할어버지가 백발의 모습으로 찾아온 새각시와 아들을 끌어안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85살의 아내 이순규 할머니는 65년 만에 만난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자마자 넥타이를 다시 만져주며 잠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 잘 모셔야지, 아들도 잘 키우고, 맘은 크게 먹고...”라고 당부했고 아내는 “알았슈”라고 대답했다.

다시 남편이 아들과 며느리, 부인을 한꺼번에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안는 것이 행복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라고 아쉬움을 달래듯 말했다. 아내는 짧게 “건강하슈, 오래 사슈”라고 말하는데, 다가올 작별의 순간이 떠올라서인지 표정이 어둡다.

남편은 아내의 서운한 마음을 다독이듯이 “당신 닮은 딸을 못 낳고 왔구나”한다. 아내는 “며느리가 딸이고 며느리고 그래요”라며 짐짓 딴청을 부린다.

형수 이동임(93) 할머니가 시동생의 손가락에 은가락지를 끼워주자 곁에 서 있던 며느리 이옥란(64)씨는 “아버님, 큰아버지(형님) 보고 싶으시면 이거 한번 꺼내 보시라고 드리는 거에요”라고 설명했다. 아들 오장균(65) 씨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 건강한 아들로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인사를 하고 아버지는 “그럼”하고 화답했다.

헤어질 시간이 임박했지만 아내는 남편을 보며 “왜 자꾸 눈물을 흘려”라며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했다. 뒷편에서 눈물을 훔치던 북측 안내원이 남편 오씨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는데, 오씨는 그 물을 아내에게 먼저 주고 자신은 다음에 마셨다.

아내는 남편에게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딴 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아버지, 왜 이렇게 수줍어 하세요”하고 하자 아버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헤어지기 직전 아들과 며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아버지에게 큰절을 했다. 상봉장 카펫에 무릎을 끓고 큰절하면서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아버지는 아래턱이 떨릴 정도로 눈물을 흘리다가 남색 손수건을 꺼내 눈믈을 닦았다.

언제 다시 만날까. 아들은 65년만에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의 와이셔츠 소매를 다정하게 다듬어 주었다.

▶ “통일되면 다 같이 큰 집에서 모여 살자”

남북의 자매는 작별상봉에서도 씩씩했다.

남의 동생 남순옥(80)씨는 북의 언니 남철순(80)가 들어오자마자 손을 꼭 붙잡고는 “언니가 강단이 있으니 이렇게 전쟁도 이겨내고 살아서 만나 좋아”라고 말했다.

철순: 글쎄 내가 명이 길지 길어. 폭탄이 나한테는 안 떨어지더라구.

순옥: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언니 살아있는 거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울먹이며) 같이 봤으면 얼마나 좋아. 언니가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니 좋다.

철순: 내가 똑똑이라 그래. (가족들 모두 웃으면서) “맞다 맞아”

철순: 삼촌이랑 오빠는 가족들 못 만나서 애달파하다가 그래서 빨리 죽었단 말야. 오빠가 너무 불쌍해. (분하다는 듯 테이블을 두 손으로 여러번 내리치며) 우리 통일되면 가족들이 다 같이 큰 집에서 모여 살자. 이런 불행이 어디 있니 세상에.

작별상봉이 끝난 후에도 철순 씨는 손수건 위에 얼굴을 묻고 계속 울다가 순옥 씨에게 안겨 엉엉 울었다. 순옥 씨가 “제발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말했지만 철순 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계속 통곡했다. 북측 안내원들이 이제 가야 한다고 일어서서 입구까지 따라가며 부축했다.

▶ 건강해야 다시 만나지

북측 언니 리란히(84) 씨를 만난 남측 동생 이춘란(여, 80)이 “내가 열 다섯에 언니랑 헤어져서 오늘 겨우 만났는데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려고”하며 한숨을 쉬자 북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온 오채란(54) 씨가 이모에게 “우리 다 100살까지 살 건데요. 통일돼서 또 만나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작별의 슬픔을 뒤로하고 모든 가족들이 웃었다.

리란히 씨는 남에서 온 막내동생 이철희(60) 씨에게 “(누가 더 건강하지) 팔씨름 해보자”라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막내동생은 “어이쿠, 우리 누님 힘이 아주 세신데요”라며 호응했다.

남북의 형제들이 모두 때 아닌 팔씨름을 하고 남측 동생들은 북의 언니, 누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쁘게 져주었다.

남동생 이경희(이경히, 77) 씨는 “오래 오래 건강히 살라. 백살까지 살려면 20년만 더 살면 된다”고 건강을 축원했다.

철희 씨는 "왜 울어. 오늘 만난 것도 얼마나 기쁜데 울어"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도 정작 눈물을 훔치고 코가 빨개져서는 "난 울면 며느리가 밥 안줘. 안 울거야. 헤어질 땐 냉정하게 딱 끊어야 돼"라며너스레를 떨다가 북측 조카 오채선(54) 씨에게 "통일되어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 작별상봉 중에도 고령자 건강이상 이어져

남에서 온 남동생 3명을 만난 북의 큰 누님 박룡순(82) 할머니는 이날 혈압 이상으로 작별 상봉 중 북측 의료진과 함께 진료를 받기 위해 상봉장을 빠져 나가기도 했다.

할머니들을 모시고 나온 아들 송철환(55) 씨는 평소 할머니가 고혈압이 있었으며, 이날 열이 조금 나고 창백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북측 오빠 송용국(85) 씨는 남의 두 여동생과 만나기로 했다가 전날 남측 송용옥(83) 할머니가 폐렴 증상을 보여 삼남매 상봉이 무산되었다.

이날 작별상봉에서는 막내 여동생 송순옥(81) 씨만 만나게 됐으나, 함께 온 조카 심정수(남, 55) 씨가 송용국 삼촌을 업고 테이블 주위를 돌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 기약없는 생이별에 가슴이 메인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작별 상봉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추가-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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