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지말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상봉 이틀째인 21일 오후 금강산에는 비가 내렸다.

오후 3시 40분께 남측 가족들을 태운 버스들이 이산가족면회소 앞에 속속 도착하고 단체상봉을 위해 4시까지 입장을 끝냈다.

이어서 북측 가족들이 들어오면서 상봉 이튿날 단체상봉이 시작됐다.

▶65년 세월 넘어선 ‘꿈꾸는 백마강’

곧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예감해서일까 남측에서 온 딸 이정숙(68) 씨는 북의 아버지 리흥종(88) 씨에게 이번에 돌아가면 목소리를 기억할 수 없다며 노래를 청했다.

갑자기 아버지 리흥종 씨가 노래를 불렀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리 씨는 한 손으로는 딸의 손을 부여잡고 말할 때 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딸도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노래를 부르자 같이 있던 여동생 이흥옥(84)씨와 조카들, 북측 아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꿈꾸는 백마강’은 리 씨가 젊은 시절부터 자주 부르던 노래. 리 씨의 고향인 예산 옆으로 백마강은 흐른다.

딸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며, 귓속말로 아버지에게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 노래는 하면 안된다고 한사코 거부했다.

▶“병나는 것도 모르게 기쁨이 크다”

북의 언니 남철순(82) 씨를 만난 남의 동생 남순옥(80) 씨는 이틀에 걸쳐 다섯 번을 만나다보니 금세 익숙해진 모양이다.

언니가 들어오자마자 “언니, 오느라고 혼났네, 혼났어. 힘들지? 피곤하겠어.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언니 힘들지?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라고 한다. 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철순 언니: 그래도 병나는 것도 모르게 기쁨이 크다.

순옥 동생: 맞아 몸살이 나도 좋아. 서로 살아있다는 걸 알았잖아.

언니: 그걸 몰라서 60년을 애달프게 살았는데. 이제 병이 나도 괜찮아.

동생: 정말 꿈같아.

언니: 나는 너희들 만나서 이제 100살까지 살 것 같아. 또 모르지. 앞으로 또 브라질 아이들(다른 동생이 브라질로 이민 가서 이번에 상봉을 못함)도 만날지 아니. 너희 만나서 기운을 키워서 100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

조카들: 그 정신이 중요해요. 건강히 오래 사세요. 이모는 오래 사실 거에요.

언니: 이제 의식적으로 건강관리 잘해야지

동생: 언니 다리는 안 아파?

언니: 아파도 운동해야지.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내가 여러 번 했어. 그런데 된다, 된다 하면서 자꾸 미뤄지기에 너희들이 세상에 없나보다 했어. 이제 내 소원이 풀렸다. 건강 잘 관리해서 오래 살겠다.

동생: 북쪽에서 오빠가 환갑잔치를 했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애달파하셨는데. 오빠가 환갑잔치할 때 남쪽에서는 엄마가 살아있었어. 엄마가 1995년인가 1996년인가에 돌아가셨어. 아들이 북에서 환갑잔치까지 하는 걸 모르고 긴 세월을 그리워하며 사셨어. 이게 정말 무슨 일이야.

▶10년전에 남편이 만난 시동생, 이번엔 형수가 만나다.

지난 2000년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서울을 방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생인 조주찬(83)을 만나고 4년 후인 2004년 사망했다.

이번엔 조주경 교수의 부인 림리규(85)씨가 아들 조철민(49)씨와 동행, 남측 동생 임학규(80) 씨와 시동생 조주찬 씨 등을 찾았다.

전쟁 후 북측 지역이 된 강원도 양구 출신인 림 씨는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같은 남한 출신인 조주경 씨를 만나 결혼했으며, 아들 조철민 씨도 아버지를 이어 현재 김책종합대학 수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상봉기간 내내 가족들 모두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조철민씨는 “삼촌, 사촌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꿈과 같이 만났습니다다. 하지만 꿈과 같이 헤어지겠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70년 전 옛 고향집 그림을 상봉 선물로

▲북의 형님 리한식(리한조, 87) 할아버지는 남에서 온 동생들에게 의용군으로 갈 때까지 살던 옛 초가집을 A4용지에 연필로 그려주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북의 형님 리한식(리한조, 87) 할아버지는 남에서 온 동생들에게 의용군으로 갈 때까지 살던 옛 초가집을 A4용지에 연필로 그려주었다.

할아버지는 이것이 마지막 만남임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경북 예천의 초가집을 그리면서 목에 걸고 있던 코팅된 이름표를 자 대신 쓰면서 한획 한획에 정성을 다했다. 집중하면서 손도 떨지 않고 초가집을 그려 나갔다.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의붓어머니 권호희(92)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고 막내 동생 이종인(남, 55) 씨는 울먹이면서 “2시간이 참 아까운 시간이지만 형님의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40분만에 초가집 외쪽 옆으로 이어진 담벼락과 초가의 음영, 마루의 무늬, 댓돌, 처마 밑 그늘까지 세밀하게 표현된 그림이 완성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이종인 씨가 완성된 그림을 보며 “형님, 내가 잘 간수할께요. 여기에 형님이 동생한데 준다고 글도 하나 써주세요”라고 말하자 리한식 씨는 그림 아래 여백에 “상봉의 뜻깊은 시각에 그린 이 그림을 종인 동생에게 선물한다. 2015.10.21.”이라고 또박 또박 정성껏 정자체로 써 내려갔다.

종인 씨는 그림을 받아들고 “형님, 제가 또 형님 언제 볼지 모르지만 이 그림 보면서 제가 형님 생각할께요. 형님 보고 싶을 때 마다 볼께요. 잘 간수할께요. 형님”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여동생 이순분(김순분, 74) 씨는 상봉기간 중 찍은 오빠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시 한 장씩 보며 정리하고 있었다.

▶남측 고령 상봉자 염진례 씨, 단체상봉 참석 못해

북의 오빠 염진봉(남, 84) 씨를 만나러 간 남의 여동생 염진례(83) 씨는 몸이 아파 21일 오후 단체 상봉을 포기하고 호텔방에서 치료중이며, 의료진 한 팀이 아예 호텔방에 함께 있는 상황이다.

의료 지원인력들에 따르면 염진례 씨는 고령에 변비도 심하고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금강산으로 올라왔다.

특히 이날 공동 중식 상봉 때부터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관장을 했지만 대변을 보지 못해 결국 지금 호텔방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동행한 조카 염순택(63) 씨는 북측 외삼촌인 진봉 씨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내일 아침 상봉 때는 꼭 모시고 오겠다”고 말했다고.

▶단체상봉 이모저모

단체상봉이 진행되는 각 테이블의 의자마다 북측에서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다. 종이가방에는 금강산 생수, 귤맛·레몬맛 사이다, 캔커피, 강정, 단물(잴리), 젖사탕(우유사탕), 우유과자, 1회용 물티슈 등이 담겨 있었다.

남측 가족이 먼저 입장해서 북측 가족들을 기다렸는데, 첫날보다는 많이 여유로워 보였다.

1번 가족부터 순서대로 입장했는데 뒷 번호 가족들은 옆 테이블의 남측 가족과 대화도 하면서 테이블 위의 간식이나 음료를 먹으며 북측 가족을 기다렸다.

멀리서 북측 가족이 보이자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번 상봉 행사 중 북측 기자단은 남측 기자들에게 “취재 끝났으면 나를 취재하시라요”, “아니 앉아서까지 취재를 합니까”라는 등의 말을 걸어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지역에서 만난 북측 96가족 141명의 방문단과 남측 96가족 389명의 상봉단은 22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작별상봉을 끝으로 총 6회의 상봉행사를 마치게 된다.

▲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가족 이야기.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추가-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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