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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작은 위기가 찾아오다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26)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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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6  14: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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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우리는 비날레스에서 말타기(riding horse) 체험에 나섰다.[사진제공-임영태]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다

전날 저녁 12시 30분쯤 잠자리에 누웠으나 모기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들다. 모기에 강한 나도 이곳 모기떼한테는 별 수가 없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모기들이 극성이다.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켜면 좀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우리는 그냥 참는다. 그렇게 뒤척이며 모기와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안 돼 불을 켜니 3시30분이다. 몸 상태가 영 안 좋다. 몸이 어슬어슬한 게 몸살의 징조다.

누워 있자니 머리만 아프다. 나는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도 잠을 좀 자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누웠으나 잠은 안 온다. 뒤척이다가 다시 일어났다.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간은 어느 듯 4시 45분. 다시 눈을 감았으나 여전히 잠은 안 온다.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피곤이 밀려온다.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잠을 잘 자야 하는데 걱정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포도알 사탕을 두어 개 먹는다. 기분이 약간 좋아지는 것 같다.

6월 20일, 토요일의 아침은 그렇게 비몽사몽 상태에서 맞았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밖에 나가서 시골의 새벽공기를 맛보고 싶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그냥 침대에 누워 있다. 닭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쿠바라는 느낌보다 한국 어느 시골마을에서 아침을 맞는 느낌이다. 새소리도 시끄럽게 들린다. 누워서 창틀을 살짝 올려 바깥을 내다본다.

간간이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우리 시골처럼 일찍부터 농사일을 하러 가는 것 같지는 않다. 궁금하다. 쿠바 농민들도 우리나라 농부들처럼 새벽부터 움직이며 일하러 갈까? 아니면 아침 식사를 끝낸 후에나 움직일까? 이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보다 까사를 주된 업으로 삼고 있어서 농부들과는 다른 생활을 할까? 아바나에서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 도시를 돌아보았어야 그들의 생활 모습을 웬만큼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여간 아쉽지 않다.

우리는 8시에 아침 식사를 했다. 교수님과 원장님이 묵고 있는 까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1인당 4꾹(5,000원)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집 아주머니와 저쪽 집주인 아저씨가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 아마도 수입은 적절하게 나누어 갖겠지?

식탁에는 계란 후라이(오물렛)가 2개, 커피, 빵이 놓였다. 아바나의 아침식사에서는 따뜻한 덩어리 빵이 1인당 하나씩 주어졌는데, 여기서는 썰어놓은 식빵을 바구니 가득 내놓았다. 그리고 파파야, 파인애플, 바나나, 구아바 등의 과일과, 과일(망고)주스, 따뜻한 우유가 나왔다. 거기다가 쌀밥까지. 풍성한 식단이었다.

평소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나였지만 따뜻한 우유를 한 잔 마셨다. 우리가 먹는 우유하고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처음 먹을 때 언뜻 주변 목장에서 갓 짠 것처럼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맛을 보니 전지분유를 풀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풍성한 식단이었지만 나는 속이 불편해서 제대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행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먹었다. 그런데 오전 내내 속이 니글거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꾹 참았지만 힘들다. 다른 사람들도 상태가 좋지 않다.

   
▲ 우리가 묵은 숙소의 내부 모습. 입구 왼편에 바로 우리 방이 있었다. 이 집은 식구가 많아서 아침 식사는 교수님과 원장님이 묵은 다른 집에서 했다.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묵었던 동네 모습. 그야말로 시골 동네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임영태]

 

   
▲ 병아리를 데리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어미닭. 비날레스에서는 이렇게 닭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아침 닭울음소리는 비날레스뿐만 아니라 트리니다드에서 매일 들었다. [사진제공-임영태]


말을 타고 시골길을 가다

9시 조금 지나서 말타기(riding horse) 체험에 나섰다. 교수님은 어제 이미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힌 상태여서 세 사람만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돼 보이는 젊은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시골길을 걸었다. 그 친구는 미로 같은 골목길과 들길을 따라 이리저리 걸었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 지형에 비교적 익숙한 나도 도무지 돌아올 때 제대로 찾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는 길이 복잡하다. 아니다 다를까 실제로 우리는 돌아오면서 길을 헤매고 말았다.

그렇게 한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한 농가 앞에 도착했다. 이미 우리를 태울 말들과 길을 안내해줄 농부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제는 마치 말 한 마리에 사람이 한명씩 붙어서 끌어줄 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각기 말을 타고 한 줄로 서서 가면 안내인이 뒤에서 따라오면서 살펴보는 식이었다.

우리가 탄 말들이 한 줄로 서서 시골길을 갔다.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은 진창길이다. 흙탕길에 말을 타고 가는데 종종 나뭇가지에 모자가 걸린다. 나와 이 대표는 평생 처음 타보는 말이어서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그런데 원장님은 폼이 그럴 듯하다. 알고 보니 대학시절 승마써클에서 잠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뭐든지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두어야 한다. 언제 써 먹을지 모르는 일이다.

몸무게가 제일 많이 나가는 내가 탄 말이 가장 튼실했으나 그래도 말이 힘들어 한다. 특히 언덕을 오를 때는 빨리 올라가서 쉬어야 하는데, 앞에 선 말이 길을 막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하니까 갑갑해하고 힘들어 한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내 말은 성질이 좀 급하다. 뒤에 있다가도 계속 앞서 가려고 안달이다.

처음 그걸 제지하려고 말고삐를 약간 세게 잡아 당겼더니 말이 흥분해서 한동안 힝힝 거린다. 살짝 당겨야 하는데 너무 세게 당긴 모양이다. 농부가 주의를 준다. 부드럽게 살짝 당기라고. 그가 주의를 준대로 그 다음부터는 아주 살짝살짝 당긴다. 좌우로 방향을 틀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말을 세울 때 조심해야 했다. 평생 처음 타보는 말이지만 한번 신나게 달려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 우리가 타게 될 말과 주인아저씨. [사진제공-임영태]

 

   
▲ 말을 타고 말타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말을 타고 가는 시골길을 가고 있는 뒷모습. [사진제공-임영태]

하지만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문제가 복잡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참는다. 가는 내내 말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더위에 그냥 걸어가기도 힘들 텐데 얼마나 힘들 것인가. 말로 태어났으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겠지만, 인간이 꼭 이런 놀이를 해야 하는 것일까?

갑자기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소와 실랑이 하던 생각이 났다. 초보 일꾼으로 후치(쟁기)질이 서툴렀던 내가 논을 갈면 꼭 소가 말썽을 부렸다. 아버지가 쟁기질 할 때는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듣던 그 놈이 내가 하면 꼭 이리저리 도망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건 내가 쟁기질이 서툴러 힘을 동일하게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멍에를 짊어진 소는 들쭉날쭉하게 가해지는 힘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것.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나는 화가 난다. 서로 좀 힘들어도 타협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안 되면 사단이 나고 만다. 얼마간 실랑이를 하던 소가 정 힘들면 아예 쟁기를 끌고 딴 곳으로 도망을 친다. 그렇게 되면 나도 성질이 날 대로 나서 마구잡이로 소를 닦달한다. 소가 움직이지 못하게 소고삐를 바짝 당겨 코뚜레와 함께 다잡고 소의 코잔등을 향해 마구 주먹질을 한다. 한참을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나면 나는 분이 좀 풀린다. 하지만 말 못하는 소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때부터 나는 처참해진다. 비애감이 나를 덮친다. 소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다. 자괴감도 엄습한다. 말 못하는 소에게 분풀이나 하는 나 자신이 싫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소보다도 못한 인간이 아닌가? 어째서 너는 소로 태어나고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만났을까? 정말 윤회는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전생에 어떤 관계였을까?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야 했던 아버지는 소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농사일을 잠깐 동안 스쳐가는 순간이라고 여겼던 나는 달랐다. 지금도 나는 소를 보면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심경이 복잡해진다.

말이 너무 느리게 가거나 이리저리 움직이려 할 때마다 뒤에서 따라오는 친구가 뭐라고 외친다. ‘야요우’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요우’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는 친구는 우리가 뭐라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해준다. 못 알아들어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그냥 묵살하고 지나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입이 약간 튀어나온 얼굴 모습이 내 고향 동네 형을 많이 닮았다. 무뚝뚝하고 약간은 시건방져 보이는 태도도 닮은꼴이다. 어디서 선글라스는 그럴 듯한 것을 구했다. 손님은 뒷전이고 그냥 건들건들 자기마음대로 흥얼대며 따라오고 있다.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려면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 가운데 우리에게 라이트, 레프트라고 한 말만 제대로 들렸다.

말을 타고 한 30분 정도 그렇게 시골길을 가니 농장이 나온다. 거기서 잠깐 쉬기로 한다. 어제 처음 이야기할 때는 3시간을 제안했으나 우리는 한 시간만 타기로 한 상태였던 것. 그곳에는 작은 쉼터가 마련돼 있었고, 음료수와 물도 비치되어 있었다. 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타바코?’라고 말하며 스페니쉬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노’라고 답하자, 그는 영어를 아주 쬐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장님도 스페니쉬를 아주 쬐끔할 수 있다고 응수한다. 모두들 유쾌하게 웃는다.

우리는 그에게 어제 이미 담배 농장을 구경했고, 그곳에서 담배도 샀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과감히 담배판매를 포기한다. 아름다운 비날레스 경관이나 잘 감상하라고 인사한다. 우리 모두 ‘그라시아스’라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다. 멀리 비날레스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과 내가 하나로 합일되는 느낌이다.

그 멋진 장관을 눈에 담고 사진기로 저장한다. 농가 아저씨가 우리 일행의 사진을 한 장 찍어준다. 물을 한통 샀다. 물값은 가게와 동일하게 2꾹이다. 그런데 정말 쿠바는 물맛이 별로다. 돌아오는 길, 돼지 두 마리가 진흙탕 목욕을 하고 있다. 우리의 똥돼지처럼 작은 몸집이다.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를 데리고 가는 모습도 보았다. 아마 저 돼지들은 저렇게 지내다가 어느 땐가 결국 관광객들의 입으로 들어가겠지?

다시 30분쯤 말을 타고 원래의 농가 자리로 돌아온다. 15꾹을 지불한다. 1인당 5꾹씩이다. 비싼 건 아니다. 관광객으로서는 한번쯤 체험해 볼만한 상품이다. 말을 가진 농부들도 제법 짭짤한 수입이다.

   
▲ 우리는 앞에서 빨간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 친구를 따라 열심히 들길을 걸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가는 길에 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가는 길에 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가는 길에 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가는 길에 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피로가 누적돼 몸이 지치다

말 체험을 끝내고 농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불과 3~4km에 불과한 그 길이 마치 지옥길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처음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 준 청년은 벌써 사라졌고, 농가주인과는 말도 안 통해 설명을 들을 수도 없다. 결국 우리 힘만으로 미로 같은 그 찾아서 돌아와야 한다. 처음에는 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잘 찾아왔지만, 결국 우리는 중간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몸 상태가 좋았다면 그 정도는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도 몽롱하고 이미 몸은 녹초상태인지라 한번 골목길을 잘못 들어가 헤매고 난 뒤에는 샛길을 찾고 싶은 의지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마침내 우리는 지름길, 샛길, 미로 찾기를 포기하고 큰 도로를 따라서 멀리 돌아서 오기로 했다. 조금 더 걷는다고 대수인가. 확실한 길을 따라 가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그 길도 분명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면 분명 우리가 어제 저녁 산책하면서 걸었던 그 거리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는 길은 너무 힘이 들었다.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나도 상태가 나빴지만, 원장님은 더 심각했다. 어제저녁부터 설사를 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중간에 화장실을 몇 번씩 찾아야 했다. 이 대표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도중 큰 길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농부를 만나 오이를 두 개 샀다. 그걸 사는 데는 현지 화폐(CUP)를 사용했다. 현지화폐 3CUP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많이 찾았다. 그래서 농부에게 CUC와 바꿔줄 수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힘들게 한참을 걸었다. 나는 속이 너무 메스껍다. 토할 것 같은데 억지로 꾹 참는다. 허덕허덕 헤매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에 어제 저녁에 봤던 교회가 보인다.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숙소 입구, 도로변에서 또 다른 농부가 야채와 바나나를 팔고 있다. 그곳에서 양배추 한통을 샀다. 그 다음 골목길에서는 농민 시장과 기념품 노점상이 제법 크게 열리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12시 30분이 지나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1시간만 쉬고 점심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 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1시 반이 됐으나 너무 피곤해서 30분만 더 쉬기로 했다. 2시가 되어 일어나려고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다. 그냥 드러눕는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머리가 빙빙 돌고 속도 울렁거린다. 누워 있으면 머리가 더 무겁고 아프다. 일어나서 여행 안내서를 찾아서 비날레스 편을 읽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머리에 안 들어온다. 10분 전에 밥 하러간 이 대표가 점심 식사를 하라고 부른다. 가보니 어쩐 일인지 벌써 밥이 다 돼 있다. 주인아저씨가 밥을 해놓았다고 한다. 너무 감사하다. 그런데 반찬으로 먹기 위해 양배추를 밥통에 넣고 찌는데 아무리해도 익지를 않는다. 우리는 설익은 상태에서 그냥 먹기로 했다. 서걱서걱하지만 그래도 우리 입맛에는 다른 것보다 훨씬 낫다. 양배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억지로 점심을 먹는다.

그러나 원장님은 설사 때문에 식사를 하지 않았다. 속을 비우는 게 낫다면서 굶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쌀밥, 고추장, 깻잎(통조림), 오이, 양배추로 점심을 차렸다. 이곳까지 와서 아직도 이렇게 한국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세 사람만 식사를 했다. 그런데 비실대는 우리들과 달리 교수님은 너무 식사를 잘 드신다. 이 대표가 퍼준 밥을 다 먹고 더 드신다. 한나절 쉰 게 큰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머지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는 것과는 정반대다. 드디어 교수님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나머지 사람들의 시련과 함께.

   
▲ 반환점 쉼터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반환점 농장에서 바라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반환점 농장에서 바라본 비날레스 농촌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는 이 아저씨에게서 오이를 두 개 샀다. [사진제공-임영태]

 

   
▲ 이 아저씨로부터는 양배추를 한 포기 샀다. [사진제공-임영태]


비날레스 투어를 포기하다

식사 후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 끝에 우리는 오후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오전에 ‘Horse Riding’ 체험을 하고, 오후에는 택시로 바냘레스 투어(택시비용으로 30꾹 예약)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오후 비날레스 투어는 인디언 동굴과 대형 벽화, 담배농장 등 주요 관광코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는 특식으로 까사에서 랑고스타(랩스터, 바다가재) 요리를 먹을 예정이었다.

비날레스 투어를 포기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남은 일정을 고려해야 했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으므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필요했다. 택시투어 포기하는 대신 햇볕이 덜 따가우면 걸어서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런닝, 윗조끼, 긴팔티, 짧은 티, 모자, 긴팔윗옷 등을 빨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제부터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어제 밤에는 그냥 사용했지만 빨래하면서는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한동안 헤매다가 찬물과 따뜻한 물을 전환하는 스위치를 가까스로 찾아냈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빨래도 했다.

빨래한 옷들은 모두 숙소 앞 처마 밑에 매놓은 빨랫줄에 널었다. 바람이 불어서 금방 마를 것 같았다. 바깥 온도가 35도는 넘을 것 같다. 공기가 청정해서 그런지 자외선 지수도 엄청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예상 외로 아직 습도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름날보다 훨씬 습도가 낮았다.

어제는 스콜이 한줄기 내렸는데 오늘은 그럴 기미도 안 보인다. 하늘이 너무 쨍쨍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고향의 뜨거운 여름날이 생각났다. 동시에 비날레스는 투어(관광) 보다는 힐링에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고향집의 어머니 생각도 났다.

오후 4시 30분. 나도 좀 쉬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다. 이 대표는 꿀잠을 자고 있다. 뭐라고 간간히 잠꼬대까지 한다. 잠이 안 와서 창밖을 내다보니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모이를 찾아먹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풍경이다. 한가로운 시골 모습이다. 그냥 내가 어릴 때 봤던 그대로다.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시골마을이고, 내 고향은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산골마을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갑자기, ‘한가로운 두 시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그냥 보아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두 곳은 사람이 사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하겠지?

나는 쿠바 여행 동안 사람들이 너무 순박하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면 무뚝뚝한 것 같은 데 ‘올라’라고 인사 한 마디만 하면 그냥 활짝 웃는다. 무얼 물어보면 그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는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했다. 마치 내가 자란 시골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릴 적 내 고향의 시골사람들도 그랬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았지만 늘 측은지심과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과연 쿠바인들은 어떻게 될까?

아바나도 그렇고 비날레스도 그렇고 쿠바에서 내가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전력사정이 훨씬 좋다는 사실이다. 에어컨, 선풍기도 잘 돌아갔고, 전기불이 나가는 일도 없었다. 작년 베트남 북부지역에 관광을 갔다가 점심을 먹던 중 전기가 나가 당황한 일이 생각났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13일 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물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샤워장 꼭지에서는 그야말로 물이 아주 적게 나왔다. 비날레스는 물 사정이 더 나빴다. 그야말로 쫄쫄쫄 수준이다. 수도꼭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쿠바 물 사정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물을 헤프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물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전날부터 한국으로 문자를 계속 보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네트워크 사용량이 많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만 계속 떴다. 통화가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문자는 아바나 주위에서만 됐다. 쿠바는 아직 그런 나라였다.

오후 5시 30분경 갑자기 천둥이 치고 소나기(스콜)가 내린다. 역시 하루에 한 번씩은 비가 내려줘야 해. 그래야 만물이 살아갈 수 있지.

   
▲ 말타기 체험을 하고 돌아오면서 본 풍경들. [사진제공-임영태]

 

   
▲ 이 집은 식구가 많은지 빨래줄이 꽉 찼다. [사진제공-임영태]

 

   
▲  기념품 시장이 열렸다. [사진제공-임영태]

 

   
▲ 전시된 기념품들. [사진제공-임영태]

 

   
▲ 여기도 체 게바라가 최고다. [사진제공-임영태]

 

   
▲ 바나나를 잔뜩 가져와 팔고 있는 농민도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여행에서 시련이 닥쳐오다

저녁 8시경 저녁식사를 했다. 특식으로 랍스타(랑게스타) 요리를 먹었다. 어제 오면서 바로 예약한 것이었다. 저녁 식사는 말 그대로 만찬이었다. 저녁 밥값은 그에 걸맞는 가격으로 1인당 10꾹(12,500원)이다.

랍스타가 엄청 크다. 아바나 맥주집에서 먹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아마 한국에서 먹는다면 최소한 10만 원 이상은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만찬도 원장님은 아예 입에 대지도 못했다. 그는 간단히 죽 몇 숟갈 드는 걸로 식사를 끝냈다. 교수님은 가장 씽씽하시다. 식사도 잘 하신다. 밥을 다 드시고, 랑고스타도 반 마리 이상 드셨다.

   
▲ 특식으로 시킨 랑고스타(랍스타) 요리의 저녁 만찬. 하지만 우리는 입맛을 잃어 이것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지금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제공-임영태]

나는 비싼 랑고스타 요리를 열심히 먹기는 했지만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소스가 제대로 안 돼서 그런지, 아니면 요리하는 방법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맛이 별로였다. 바다가재 특유의 그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그 맛이 잘 안 났다. 랍스터 요리에 잔뜩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이 대표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도 그날 저녁부터 급속히 식욕을 잃었다. 설사도 약간 비치면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나는 계속 속이 니글니글했기에 갑자기 콜라 생각이 절실해졌다. 주인아저씨께 콜라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한 20분쯤 후 주인장이 콜라 한 캔을 가져왔다. 아마도 시내 가게에서 사온 모양이다. 큰 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나는 콜라를 한잔 마시고 내 정량을 거의 다 처리했다.

성찬을 성찬으로 느끼지 못하는 저녁 식사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원장님 몸 상태가 엉망이어서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식사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금방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부터라도 몸을 잘 건사해서 남은 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도록 조심하자고 결의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식사 후 이 대표와 나는 시내로 가서 가게 몇 군데를 기웃거려 작은 코카콜라 2병을 샀다. 쿠바에서는 대부분 술집에서 콜라를 팔았다. 식료품이나 음료, 과자, 생필품 등을 파는 우리의 마트나 편의점 같은 가게가 쿠바에는 따로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콜라는 가게와 같은 가격으로 한 병에 2꾹이었다.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물과 콜라, 맥주 가격이 거의 비슷했는데, 지역마다, 가게마다 다 달랐다. 아직 표준화, 자본주의화가 덜 돼 있다는 이야기다. 유통구조가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콜라를 한잔씩 마시고 저쪽 집 냉장고에 넣어둔 다음 우리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 후 하루 일정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10시다. 아바나라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시골이어서 그런 지 늦은 밤 같은 생각이 든다.

10시 30분쯤 누웠는데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런데 깨어보니 겨우 11시 30분밖에 안 됐다. 그 뒤부터는 계속 선잠이다. 온몸이 어슬어슬 춥고 아픈 게 아무래도 몸살 같다. 피로가 누적된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아무리 해도 잠이 안 온다. 도저히 안 돼 새벽 3시 30분경 불을 켰다. 선풍기를 틀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모기에 덜 물렸다. 사탕하나를 꺼내 먹었다. 어쩌면 ‘산티아고 데 쿠바’에 가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 이 대표도 잠에서 깼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우리의 여정과 몸 상태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내가 삼겹살 같은 고기를 제대로 못 먹어서 아픈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고기를 못 먹은 것은 아니지만 보통 한국에서 느끼는 푸짐하고 배도 부른 식사를 해보지 못했다는 느낌은 계속 들었다. 사실 나는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삼겹살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삼겹살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밥을 한 그릇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김치찌개나 육개장, 감자탕처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서 배부르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한국식 밥을 한 끼 먹으면 해결될 것 같다는 의미였던 것. 나의 ‘고기를 못 먹어서 …’라는 말은 얼마간 우리 일행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  나무 위에 올라간 닭. [사진제공-임영태]

 

   
▲ 이곳 닭들은 그냥 자연에 방목해서 키워 그런지 체구가 작고 새처럼 날아서 나무 위에도 올라간다. [사진제공-임영태]

 

   
▲ 늘어진 개 팔자라고 했던가. 말 타러 간 집에서 만난 그 집개는 아직 한낮이 아닌 데도 축 늘어진 상태로 누워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에는 집집마다 흔들의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도 주택과 함께 정부에서 제공하는 품목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을 지경이다. [사진제공-임영태]

 

   
▲ 노란색의 흔들의자. [사진제공-임영태]

 

   
▲ 흰색 흔들의자. [사진제공-임영태]

 

   
▲ 흔들의자가 꽤 많다.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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