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록 인생이란 재미없고,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고 실망하면서 행복이 멀어짐을 절감한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강한 자를 우러르며 우습기 짝이 없는 영웅을 은근히 기다리면서 출퇴근 전철 안에서 죽은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인생의 절정기는 학교 축제 때뿐이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자유를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108p

‘인생이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어떤 이들은 ‘그럼 막 가자는 거지요?’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이미 막장이 아닌가. 이렇게 형편없는 세상에서, 마찬가지로 형편없이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미 막 나간 것 아닌가 말이다.

▲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바다출판사, 2013.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처음,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은, 곧 그 내용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극도로 무기력한 현대인들의 삶에 정면으로 강렬한 돌직구를 던지는 저자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죽을 몸인데,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워 겁을 내고 위축되고 주저하느냐고 묻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저자이기에, 당당함이 묻어난다. 우씨, 열라 부러웠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자신이 살아가는데, 그 무슨 거리낌이 있는가. 새로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무기로, 애당초 도리에 맞지 않고 모순투성이인 이 세상을 마음껏 사는 참맛을 충분히 만끽하라는 저자. 산송장이 아닌 ‘산 자’로 살아가라는 일침은 그야말로 매섭게 몰아치는 죽비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유와 자립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라 외친다. 저자는 단언한다. 살아 있으면서 절대적 안녕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되 삶을 스스로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것이야말로 산송장의 삶이라고.

철저히 ‘독고다이’의 인생을 살아온 저자에게 부모의 속박, 국가의 통제, 학교의 폐쇄성, 회사의 무의미한 부품 생활은 자유를 억압하는 쓰레기 같은 요소들이다. 종교 또한 저자에겐 무가치한 것이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허망한 존재인 인간이, 고뇌하고 무릎 꿇고 울며불며 매달릴 때까지 뒷짐을 지고 있는 걸로만 봐도 신은 없노라 단호하게 말한다.

어줍지 않은 위로, 힐링이 판치는 지금, 도대체 우리가 누구에게 상처받았고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다만, 잘 될 거라고, 너를 응원한다는 헛소리나 날리는 지금, 비록 꼬장꼬장한 노장의 성정이 드러나긴 하지만, 전혀 위선적이지 않은 그의 메시지는 나의 썩어빠진 육체와 정신을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마루야마 상에게 송구하다. 이따위로 살아가고 있음이.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결하다. 홀로 가라, 홀로 자신 만의 길을 가라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라는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이 더럽다고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하거나 여기에 작은 부속품 중 하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의 처지에 깊이 길들어진 가축 인간’으로 살 것이 아니라, 허튼 내일의 안녕 따위를 기대하지 말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을 향해 내 발로 한걸음씩 내딛는 것이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 안에서만 빛나도록 생겨 먹었다’는 말이 가슴을 때린다. 어느 새 우리는 모두 거대한 시스템의 하찮은 부속물이 되어 하루하루 의미를 잃어가는 삶을 살아간다. 연봉이 얼마든,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든, 빌어먹을 차의 배기량이 얼마나 되던, 집이 얼마나 넓든, 그 따위는 사실 한 개도 중요치 않다. 내가 죽었을 때, ‘아, 그 인간은 몇 평짜리 집에서 무슨 차를 몰며 연봉 얼마를 받으며,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뒈졌다’라고 기억해 줄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지, 유산을 계산하기 위해 내 자식들은 기억을 해야 할지도. 계산할 것이나 남을까 싶다만.

정말, 의미 없는 노예와 같은 삶이 아닌가. 이 빌어먹을 엿 같은 세상에 온전히 정당방위로 다시 엿을 날리며, 나의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정의와 상식을 위해 때론 멋들어지게 싸우고, 때론 눈물로 호소하고, 때론 방랑자처럼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자유라는 놈과 고독이라는 놈과 만나며 살아가는 것.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안정과 안녕을 위해 오직 지금뿐인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현재를 즐길 수 있는 호연지기! 나에겐 바로 그러한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에서 저자가 국가와 정치인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전율마저 일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차단하는 국가, 개인의 안녕과 부귀를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며 그렇게 연명해가는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 그리고 그런 쓰레기를 대통령, 국회의원 등으로 만드는 무뇌아 같은 국민들. 저자는 강조한다. 쓰레기 같은 정치인, 대통령을 선출한 바로 그 국민이 쓰레기라고. 누굴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의 부재’를 탓하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똑바로 지라고. 병신 같은 정치인과 대통령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라고. 으아, 난 이미 범죄를 방조하거나 협력한 크리미널이 된 것인가.

돈에 철저히 구속당한 우리는, 마치 우리의 의지인양 믿으며, 돈의 논리대로 살아간다. 아니, 스스로를 착취해가며 변태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지속에 복무하고 있다. ‘악랄하고 뻔뻔한 사회와 국가, 종교, 학교’에 육체와 영혼을 저당 잡힌 채, 그렇게 병신 같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병신 같은 삶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뻔뻔하게도!

당당한 저자의 이야기에 한껏 주눅이 들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때로는 강한 공감과 때로는, ‘이건 좀 심하신 듯’ 놀라며, 마루야마 겐지라는 노 작가의 강력한 인생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포기가 취미이고 체념이 특기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어지간하면 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젠장, 그게 말이 되나! 얼마나 뒤틀린 시대에 살고 있기에, 전부 우리 힘으로 될 수 없는 것인가. 그럼 도대체 왜 이 따위 나라에 사는가, 다들 이민 가시든가 하셔야지. 그리고 이런 정부에게 도대체 왜 꼬박꼬박 세금을 갖다 바치시는가. 억울하지도 않는가.

책을 덮으며, 잠시 잊고 지냈던 강렬함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몰상식, 불의, 위선 앞에 당당했던 내가 떠오른다. 아닌 건 죽어도 아니라고 외쳤던 내가 떠오른다. 엿 같으면 엿 같은 것이고,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만큼 불의한 것이면, “야, 이 씨발놈들아!”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던 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 난 도대체 무엇인가. 살포시 대가리를 땅에 박을 수밖에, 무지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당장 마루야마 상의 말씀을 받들어 딱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은, 내 의지는, 내 하나밖에 없는 마음은 다시 다잡아야 할 것이다. 야성을 잃으면 애완이 되고, 곧 하찮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는 게 겁나는 것이 아니라, 쪽팔린 게 더 무서웠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찾아야겠다. 욕 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욕해야 할 때 못하는 비겁함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게 원래의 나다. 썅!

나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날려주신 마루야마 상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부디 만수무강하시고, 앞으로도 더 멋진 작품들을 보여주시길.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소로우 형님의 말씀대로 “그래, 누가 이길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마음으로 살자!

붙어봐!

“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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