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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국의 대지에 스민 피 한 방울로<포토뉴스> 만성 신향식 선생 33주기 추모제 열려
류경완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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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3  17: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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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민전 신향식 선생 제33주기 추모제가 지난 9일 낮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서 열리고 있다. 여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추모객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남민전 신향식 선생 제33주기 추모제가 지난 9일 낮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서 4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제는 장남 신원호 선생의 참배로 시작되어 묵상과 여는 노래, 약력 소개와 김남주 시인의 육성 추모시 ‘전사 2’ 낭송 등이 이어졌으며, 추도사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결의 노래, 추모객들의 분향재배로 마무리되었다.

이날 추모제는 남민전 관련자들을 비롯해 비전향장기수 선생들과 양심수후원회, 유가협, 범민련남측본부, 민자통, 4.9평화통일재단, 추모연대와 서울대민주동문회 등 각계 인사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민족민주열사와 옥중 양심수를 위한 묵상을 하는 추모객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故 만성 신향식 선생 약력]

- 1934. 12. 1 전남 고흥군에서 한학자이신 아버님 신춘우 님과 어머님 정정옥 님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 1958. 경복고등학교 졸업, 4월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입학
- 1959. 11. 30 전남 고흥군 풍양면 이계영 님과 결혼
- 1964. 2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 1965. 5 동아출판사 제작부 취직, 임금투쟁과 노조결성 주도
- 1968. 8 <통일혁명당>사건으로 구속되어 ‘간첩방조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6월선고
- 1972. 2. 25 비전향 만기출소
- 1976. 2. 29 이재문, 김병권 동지들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 중앙위원으로 활약. 1979년 11월 10일 피검되기까지 3년 8개월여 동안 반제반파쇼 민족해방투쟁 전개
- 1980. 12. 23 피검 후 군사독재세력의 참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투쟁의 정당성과 순결성을 고수. 81년 4월 14일 사형이 언도된 이후에도 법정투쟁을 계속 전개, 81년 12월 23일 대법원 상고심 기각으로 사형 확정
- 1982. 10. 8 정오 서울구치소 교수대에서 형 집행
* 유족으로 부인 이계영 님과 장남 원호, 따님 선미, 차남 유호가 있음.

   
▲ 추도사를 하는 남민전 동지 신우영 선생과 서울대 동문 조영건 명예교수, 장남수 유가협 회장(왼쪽부터).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추도사를 하는 정병문(가운데), 김명원(왼쪽), 이호윤 서울대민주동문회 공동회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남민전 활동을 함께 했던 신우영 선생은 추도사에서 “30대에 선생의 나지막한 어투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벌써 70을 바라본다”면서 “선생은 향기로울 향 심을 식, 이 땅 민주주의의 길에 향기로움을 심고 가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서울대 동문인 조영건 명예교수 역시 “선생은 60년대의 엄혹한 상황을 전위적으로 돌파하면서 온몸 바쳐 투쟁하다가 보복 학살을 당하신 것으로 삶 자체가 역사”라고 지적하고, “민족과 민중의 귀감인 선생의 삶을 기리며 자주통일의 길에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유가협 장남수 회장도 “막 나가는 현 정권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서울대민주동문회 정병문 회장 또한 “민중을 멸시하고 증오의 정치를 펴는 현 시국은 몰락을 재촉하는 말기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하고, “(상황이 엄중할수록)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역사의 기회가 올 것이다. 같이 힘 합쳐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 분향하는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과 양원진 선생(87세) 등 장기수 선생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김영옥 선생 등 남민전 동지들이 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서울대민주동문회 회장단이 선생의 영전에 ‘2014년 제1회 서울대 민주열사합동추모제’ 자료집을 올리고 선생을 기리는 ‘통일의 나무’를 서울대 교정에 모셨음을 아뢰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분향하는 양심수후원회 회원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남민전 사건이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이라는 비교적 긴 이름의 ‘남민전 사건’이란 1976년 2월 비밀단체를 조직해 유신반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79년 84명이 검거된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전략에 따라 국가변란을 기도한 사건’이라고 발표했고 법원은 관련자에게 사형, 무기, 징역 15년 등 대부분 중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2008년 3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남민전 사건 관련 신청자 중 고(故) 김남주 시인을 비롯한 29명에 대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시 남민전 사건의 지도급 인사인 이재문, 신향식 씨에 대해서는 심의를 보류했다.

 

 


 
 
▲ 묘소 전경.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신향식 선생 영정.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동지들이 많이 오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자주통일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는 장남 신원호 선생.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거꾸로 가는 정국의 영향인 듯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은 추모객들이 참석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선생의 자취를 기렸다. 추모제 후 기념사진.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추모시] 전사 2
- 남민전 동지 고 김남주 시인이 신향식 선생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쓴 시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수십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곳,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 단계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땀과 눈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투쟁의 나무를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가신 님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투쟁의 길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 죽음이 결코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조국의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자유의 나무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쑥스럽게 부끄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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