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그림에 관해 꾸준하게 글쓰기를 했다.
또한 우리그림을 창작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창작을 하는 일과 글쓰기는 한 몸처럼 이루어졌다. 이론을 통해 실기의 방향이 제시되고, 실기를 통해 이론을 검증했다.
이 모든 활동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수묵화 정도가 전부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중심으로 화려한 채색화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흔히 궁중회화라고 불리는 채색화는 평균 4m가 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고급미술재료를 사용한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보통 손바닥만 하고 흑백의 먹으로 그려진 화첩그림만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서양화법을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을 수용하여 조선의 미학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그림을 창안하고 발전시키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봉도], [십장생도], [궁중모란도], [책가도], [신선도], [화조도] 따위는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궁중회화는 왕의 직계 미술조직인 '자비대령화원'과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자비대령화원과 도화서의 화원들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홍도, 신윤복, 이명기, 김득신, 이형록 같이 당대를 주름잡던 대부분의 화가들은 도화서 출신이었다. 비록 도화서 화원은 아니었지만 이름을 날렸던 정선, 강세황, 윤두서, 심사정 같은 선비화가들도 직간접으로 궁중회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의 화가들은 당대 철학이었던 주자성리학의 미학적 가치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수묵산수화 속에 표현된 세상은 선비들의 이상세계였다. 또한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부터 시작한 조선의 이상향에 대한 표현은 궁중회화의 [십장생도]로 완성된다.
조선이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전쟁과 약탈과 살육이 없고 협력과 공생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사회였다. 또한 모든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풍류세상이었다.

▲ 심규섭, 『아름다운우리그림1-민화』/『아름다운우리그림2-궁중회화』, 역사인, 2015.10. [자료사진 - 심규섭]

궁중회화나 민화의 미학적 내용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이다.
이러한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행동지침으로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내세웠다.
‘엄격한 예법’은 인간이나 뭇 생명에 대한 존중이고, 존중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 사회관계를 말한다. ‘자발적 청빈’은 자기절제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 즉, 물질적 탐욕과 권력의 남용은 반사회적이고 세상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요인이다. 잘못된 권력을 경계하고 부당한 재부를 멀리해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궁중회화나 민화, 혹은 수묵화에 표현되어 있는 인문학적 내용이고 동시에 세계 보편적인 가치인 것이다.

민화는 궁중회화가 아래로 흘러내려 대중화된 그림이다.
민화의 조형적 요소나 상징은 모두 궁중회화로부터 파생되고 차용된 것이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세월동안 우리그림은 세계 최초로 대중화에 성공한다. 사람들은 모란병풍 앞에서 태어나 모란병풍 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작품의 수준이나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림은 생활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궁중회화나 민화 같은 우리그림은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었다.
작품의 조형원리도 몰랐고 사물에 붙은 상징도 몰랐다.
하늘의 색깔은 왜 검정색에 가깝게 칠하는 지, [십장생도]에는 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지, 혹은 학과 사슴과 거북이가 상징하는 뜻이 뭔지, 궁중모란도의 모란은 왜 나무처럼 세워 놓았는지, 바다는 왜 황색으로 그리는지, 배경은 왜 누렇게 칠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부귀영화와 장수, 출세 따위를 표현한 길상화 정도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학문의 나라였던 조선이 고작 행운이나 바랐을 것이라는 추측은 억지이고 우리 전통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이번에 출간한 두 권의 책에는 우리그림의 인문학적 미학과 전문적인 조형원리, 상징법 따위를 찾고 분석한 내용이 담겨있다.
서양화의 조형원리와 우리그림의 조형원리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분석했다. 또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학을 찾는데 관심을 두었다.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여기는 ‘본그림’의 진짜 모습과 창작방법 따위에도 중점을 두었으며 실제 수많은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을 통해 실증하고자 했다.

이 책의 출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그림에 대한 전문적이면서 인문학적인 논쟁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은 변두리에 있는 우리그림을 공론화시키고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는 여전히 전쟁과 약탈과 살육, 착취, 불평등 따위가 난무한다.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많이 벌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을 꿈과 희망이라고 여기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은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세계가 아니다.
남북한은 분단되어 대립하고 그 고통은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조선화'와 남한의 '한국화'는 궁중회화를 바탕으로 재창조될 것이다.
우리그림에는 보편적인 이상세계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공동체를 향한 인간의 지성을 뜻하는 인문학적 가치가 명료하다.
이런 우리그림이 세계인들에게 수용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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