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버릇이 예전보다 많이 바뀐 듯하지만, 큰 뼈대를 이루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냥 맘에 드는 책을 집는 것. 대단한 기술도 내공도 필요 없고, 특히 나처럼 디자인이나 느낌에 쉽사리 흔들리는 얼치기 독서가라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이다.

물론 특정 저자나 출판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은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철수와영희’와 같은, 좋은 책을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나,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책들은 가능하면 챙겨 읽으려 한다.

그럼에도, 무작위 선택의 즐거움 또한 나에겐 놓칠 수 없는 순간이다. 이는 온라인 보다는 주로 오프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데, 생전 처음 만나는 작가, 작품을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꽤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다면 꽤 괜찮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

▲ 모리사와 아키오, 이수미 옮김, 『쓰가루 백년식당 -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샘터사, 2014.1. [자료사진 - 통일뉴스]

모리사와 아키오는 그런 무작위 선택이 선사해준 특별한 선물과 같은 작가이다. 작가와의 첫 만남이 되어버린 『쓰가루 백년식당』 한 편으로, 이미 그는 나의 작가 리스트에 올랐다. 표지가 전해주는 따뜻함과 제목에서 전해지는 알 수 없는 포근함으로 무심코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예상을 뛰어넘은 감동까지 전해준 아주 고마운 작품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특별하고 무언가 강렬한 것들만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더 놀라워야 하고, 더 세어야 하고, 급기야는 더 엽기적이어야 한다. 적당한 예는 아니겠지만, 요즘 여성 아이돌그룹들이 경쟁하듯 옷을 벗어버리고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찾자면 심리학과 경제학, 정신분석학 등등이 동원되어야 할 테지만,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것 역시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슬픈 결과가 아닐까 싶다. 더 잘 팔려야 한다, 더 잘 눈에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결국 더 충격적이고, 더 비인간적인, 그런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지치게 되고, 거부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무리 엽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반복되면 무감각해지고, 식상해진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의 마음만 더 메말라진다. 슬픈 현실이다. 이젠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 이들이 바로 우리 현대인들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따뜻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워한다. 옛 추억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네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 전혀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최근 국내에서도 꽤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떠올려보라.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평범한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 어떤 엽기적인 작품보다 더한 감동을 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읽었는데, 얼마나 공감하며 읽었는지 “맞아, 맞아, 어머, 어머머”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난 남잔데!

이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쳤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이 영화보다, 소설보다 더 영화 같고 또 소설 같기에, 다시금 원래 사람이란 동물이 그랬던 것처럼, 소박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려는 것은 아닐까.

『쓰가루 백년식당』에서 내가 얻은 잔잔한 감동과 그리움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메밀국수집의 4대 장남 요이치,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 나나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박한 이야기는, 매일 매일 잔혹한 이야기와 그보다 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온기를 전해준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그들이 삶이지만, 그 무엇보다 위대하고, 또한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바로 한없이 선량하고 평범한 우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그 흔한 악당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모조리 다 착하디착한 이들 뿐이다. 그렇다면 도저히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 착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작품은 재미있고, 또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렇기에 나는 따스한 위로를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이게 사람이고, 이게 사는 것이라고.

우연처럼 만난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 행운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아껴가며 하나하나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전해준 것과 같은 따뜻함과 소박한 기쁨을 느끼고 싶다. 차가운 바람이 점점 더 움츠려들게 만드는 지금. 따스한 국수의 국물 맛과 같은 작품이었다. 아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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