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이, 어느 생이 온전히 심상할 수 있을까. 애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파격 위의 파격만을 찾고, 심지어 삿된 비정상 안에서까지 특별함을 갈구하는 무참한 시대에, 언뜻 평범해 보이는 것들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나의 어리석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 빈 강정마냥, 헛헛한 녀석이 객기와 치기로 짐짓 유별남과 특별함을 추켜세웠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평범함을 무시하고 홀대하였다.

그나마 덜 어리게 된 지금, 예전 어렸던 때를 생각해보면, 참 어려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럽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이었고, 시간이었으니 무어라 변명하기도 어렵다. 암매한 녀석이다.

‘If you want the present to be different from the past, study the past.’

스피노자는 이렇게 지난 시간을, 역사를 먼저 알아야 다름이 가능하다고,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해 전의 이야기들이 이미 촌스러운 유물로 전락해버리는 지금, 과연 옛 것, 어제의 이야기, 먼저 이 땅에 살다 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고 또 두렵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관람한 후 무려 눈시울을 붉혔다고 하여 더 알려졌던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앞에서도 비슷한 감상이 들었다. 영화를 둘러싼 많은 논쟁과 지나친 과장들은 차치하고라도, 내게 다른 그 무엇을 전해준 것이다. 그 이전 영화 <써니>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그 이후 영화 <쎄시봉>등도 얼추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대공감이다. <국제시장>을 보는 도중, 옆 좌석의 노인이 그야말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저 노인의 눈물을 끌어낼 수 있는, 그의 인생을 공감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지금껏 참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쩔 수 없이 들었다.

▲ 박완서, 『기나긴 하루』, 문학동네, 2012.1. [자료사진 - 통일뉴스]

때문이다. 어설프게 한 살 씩 나이를 먹으면서 새삼 박완서라는 작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뛰어난 작가이자 동시에 시대를 훌륭히 담아낸 풍속화가이기도 했던 박완서. 그의 작품은 여전히 소소하지만 묵직하게, 그리고 목울대를 간질거리다 결국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의 또 하나의 미덕은, 흔해 빠졌지만 그럼에도 가장 힘들기도 한 ‘근면함’을 평생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을 뿐 아니라, 그가 떠난 지금도, 그의 존재와 부재만으로도 많은 작가들의 등을 떠밀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마지막 소설집이 된 이 책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묶어낸 소설집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발표한 세 작품과,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동료, 후배 셋이 각자 추천한 세 작품이 담겨있다. 어쩜 박완서라는 삶과 이름에 걸맞은 마무리가 아닌가.

도대체가 어마어마한 세상이다. 이유와 근본을 묻지 않는 규모에 압도되고 이치와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엽기가 주목받는다. 사람들은 점점 더 화를 참기 어려워하고, 순간의 아찔함을 참지 못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쩜 그렇기에 작가 박완서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인간으로서의 자기 증명’이라 정의한 작가의 지극히 당연한,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이야기가 새삼 특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보면 성공하는데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인간이 되어가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라던 작가. 일생 동안 인간의 나약함과 부질없음, 그리고 끈질긴 삶의 순환과 번쩍거리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아왔던 작가 박완서.

허투룬, 허무한 특별함을 탐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작품들은 아주 오랫동안 따뜻한 위로로 남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몸살로 쩔쩔매는 지금, 귀한 보약 한 첩을 얻어먹었다. 감사하다. 부디 모두 따뜻한 명절 보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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