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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마야유적과 대면하다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15)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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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8  16: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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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툴룸의 마야 유적. [사진-임영태]

2차 위기를 넘기다

6월 15일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었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구분이 없는 우리에게는 월요일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다만 거리의 음식점과 상점, 가게들이 문을 닫는가, 아닌가에만 관심이 갈 뿐이다. 어제 저녁 치첸이트사에서 칸쿤으로 돌아왔을 때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문을 닫은 것을 보고서야 일요일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6시가 약간 지나서 일어났다. 잠 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푹 잤다. 그래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이 대표와 숙소와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아침 준비를 위해 근처의 대형 마트인 ‘커머셜 멕시카나’를 찾았다.

멕시코 찐쌀 2봉지를 샀다. 뜨거운 물에 넣고 불리면 밥이 되는데, 그날 아침에 하나 해 먹었다. 양념과 간이 되어 있어서 그냥 먹을 수 있지만 우리 입맛에는 잘 안 맞았다. 야채(오이, 양상추), 과일(망고, 사과, 자두), 건전지 16개, 야구르트, 요플레(라고 샀으나 먹어보니 치즈를 잘게 잘라놓은 것)도 샀다.

비용은 모두 합쳐서 540페소(42,000원)가량 됐는데 건전지 값이 18,000원이나 됐다. 충전기에 문제가 생겨 카메라에 쓸 일회용 건전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쿠바에는 공산품이 부족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야채와 과일 등 생필품 가격은 싸지만 공산품 가격은 비싸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침 식사는 성찬이었다. 누룽지를 끓이고, 멕시코 찐쌀밥도 하나 데웠다. 밥을 해먹고 싶었지만 그건 할 방법이 없었다. 계란도 삶았다. 날달걀을 전자레인지에 놓고 돌렸는데 몇 개는 터져버렸다. 그 나머지는 멀쩡하게 잘 익었다. 반찬은 오이, 상추와 함께 고추장이 우리의 입맛을 살려주었다. 커피도 한잔했다.

잠을 푹 잔 덕분에 교수님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날아갈 것 같다고 하면서 숙소도 마음에 들어 하셨다. 아침 식사를 하는 데 입맛도 어느 정도 되찾은 보였다.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호텔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던 어제 저녁의 계획도 취소했다. 아마 칸쿤 해변에 있는 호텔로 갔다면 상당한 액수가 깨졌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칸쿤에서의 2차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툴룸의 마야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칸쿤 시내와 바닷가를 구경하고 모래사장에서 하루쯤 편안하게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칸쿤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야 유적지를 구경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식사 후 9시 30분경 집에서 나와 터미널로 향했다. 10시 30분 툴룸행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그런데 전날 치첸이트사 행 버스티켓을 갖고 있으며 10%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부랴부랴 찾았으나 집에 두고 온 상태여서 할 수 없이 이 대표가 황급히 숙소까지 갔다가 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갈 때 버스표밖에 안 남아 있어서 편도요금만 할인을 받았다.

버스요금은 꽤 비싼 편이었다. 1인당 왕복 250페소(2만원)이다. 4명의 왕복 차비가 1,000페소(우리 돈 8만원)다. 오늘 가는 툴룸은 2시간 거리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요금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멕시코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다행이 버스표가 딱 네 자리가 남아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여행 중 우리는 뜻하지 않았던 우연과 대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체로 행운은 우리 편이었다.

   
▲ 칸쿤 버스터미널 주변의 대형마켓 '커머셜 멕시카나'. 우리는 여기서 장을 봤다. [사진-임영태]

 

   
▲ 대서양 바닷가에 위치한 칸쿤과 툴룸. 칸쿤에서 툴룸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임영태]

툴룸의 마야 유적지를 찾아서 

툴룸 마야 유적지는 칸쿤에서 남쪽으로 1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칸쿤에서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려 버스가 툴룸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몇 군데 쉬었지만 나는 내릴 생각도 못하고 계속 차에 앉아서 졸기만 했다. 아무래도 수면시간이 짧았던 모양이다. 툴룸 터미널은 버스가 주차하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대로변에 차가 섰고, 그 앞에 표를 파고 사람들이 기다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툴룸 터미널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러니까 한 5분전에도 섰다. 알고 보니 그곳이 바로 툴룸 유원지였다. 우리는 거기서 내렸다면 쉽게 마야 유적지는 금방 찾아갈 수 있었겠지만 그걸 몰랐던 탓에 우리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 툴룸 시외버스터미널. [사진-임영태]

 

툴룸 터미널에서 내린 우리들은 유적지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었더니 한 3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 정도라면 굳이 택시나 버스를 탈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터미널에서 큰길로 나오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바로 보였다. 교수님이 무척 기뻐하신다. 우리는 딸기와 망고 맛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아이스크림은 정말 시원하고 달콤했다. 과일맛도 일품이다. 열대도시에 온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터미널 반대편으로 도로를 건너 인도를 따라 걸었다. 그 도로는 칸쿤에서 툴룸으로 오면서 지나왔던 길이었고 툴룸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툴룸은 바닷가 휴양도시 같은 느낌이 단번에 느껴지는 곳이었다. 야자수 잎을 엮어서 지붕을 씌운 집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시내 관광지도를 비치해 놓은 관광안내소도 보인다. 우리는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유적지가 있는 방향으로 한 30분쯤 걸었다.

그러나 아직도 마야 유적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도로변 곳곳에 식당이 보였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고 가야 할 것 같았다. 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유명인사들이 많이 다녀간 듯 사람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요리를 3개만 시켰다. 음료수도 시켰다. 먼저 낫쵸와 소스, 멕시코식 야채절임이 나왔다. 야채절임은 고추, 오이, 양파 같은 야채를 간장에 절인 것으로 느끼하지도 않고 먹을 만했다. 아마도 우리의 김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본요리가 나오기도 전 이걸로 웬만큼 배를 채웠다. 뒤이어 요리가 나왔고, 우리는 그걸 하나도 남김없이 해치웠다.

   
▲ 툴룸 시내 모습. [사진-임영태]

 

   
▲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에 걸려 있던 사진들. [사진-임영태]

 

   
▲ 우리가 시킨 본 메뉴가 나오기 전에 나온 낫쵸와 야채절임. [사진-임영태]

 

배가 부르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또 걸어야 했다. 가다가 표지판이 나와서 살펴보니 아직도 마야 유적지까지는 3.4킬로미터나 남았다. 속으로 ‘이건 최소한 1시간 거리다’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도 보이지 않고 버스를 타기에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았다. 원장님이나 이 대표는 걷는 걸 좋아하니 문제될 게 없었다. 나도 걷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이다. 교수님이 약간 걱정되긴 했는데, 그래도 잘 걷고 있다.

햇볕이 강하게 내려쪼였지만 그다지 따갑지는 않았다. 칸쿤이나 쿠바는 위도상 바로 북회귀선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 빛이 강렬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날은 바람도 불고 습도도 그다지 높지 않아서 걸을만했다. 약간 덥기는 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철이 아니어서 그런가 싶었다. 한국의 여름보다 더 덥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여름 휴가철 한국의 바닷가 휴양지보다 시원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습도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교수님 컨디션이 좋아서 큰 문제가 없었다. 아마도 아이스크림의 위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중간에 약간의 위기가 있었다. 식사 후 50분 이상, 아마도 거의 한 시간쯤 걸었더니 유원지가 나타났다. 다 왔구나 생각했는데, 유적지는 그곳에서 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나도 약간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교수님은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함께 든다. 위기가 있었으나 순조롭게 넘어갔다.

   
▲ 우리가 걸은 길. [사진-임영태]

 

   
▲ 우리가 걷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는 관광객 무리를 여럿 만났다. [사진-임영태]

 

   
▲ 유원지에서 본 공중곡예 장면. [사진-임영태]

 

마야인의 성벽 요새에 입장하다

드디어 유적지 앞에 도착했다. 유적지 정문에 도착하기 5분전쯤에 트랙터에 객실을 연결한 관광용 운반차를 만났다. 그거라도 타고 갔다면 훨씬 편했겠지만 마지막 얼마 되지 남지 않은 길을 끝까지 걸었다. 돌아갈 때는 그걸 타고 가자고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그건 말로 끝났다. 돌아올 때도 우리는 끝까지 걸었던 것.

마야 유적지 입장료는 1인당 64페소다. 우리 돈 5천원가량 되는 금액이다. 유적지는 바닷가 성채였다. 대서양에 붙어서 천연의 요새처럼 지어진 그다지 크지 않는 성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의 적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유리한 지형이다. 바다 쪽으로는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불리하다. 방어하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육지 쪽으로는 성벽을 쌓아서 방어를 했을 것이다.

‘툴룸(Tulum)’은 마야어로 ‘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의 바닷가 마을이면서 천연의 요새였다. 툴룸 유적지를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해미읍성이 생각났다.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성격상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곳은 스페인의 침략 이후에도 가장 마지막에 남았던 지역으로 알려진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곳이 방어하기에 좋은 위치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곳의 마야인들은 인신공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다른 도시와 교역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특산물은 소금과 해산물이었다고 한다. 캐리비안의 조개껍질과 진주 같은 보석들도 교역품에 들어 있지 않았을까?

   
▲ 유원지에서 유적지 사이를 오고가는 승객 운반차. [사진-임영태]

 

   
▲ 유적지 입구. [사진-임영태]

 

   
▲ 툴룸 유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르다. [사진-임영태]

 

   
▲ 툴룸 유적지 설명 안내문. [사진-임영태]

 

대서양 바닷바람과 대면하다

유적지는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함께 예술적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치첸이트사나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처럼 웅장한 건조물은 없지만 성채의 아름다운 조형미가 돋보였다. 대부분의 축조물들이 예술품처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대서양에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뛰어난 바다 풍광이 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  마야 유적지 내부. 계단을 오르자 바다에 접한 넓는 유적지가 나타나 놀라움을 줬다. [사진-임영태]

언젠가 본 사진집 ‘마야성’이 생각났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보지만 그런 사진이 나올 리 없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다. 자조감과 함께 ‘그냥 찍는 거지’라는 마음이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바다로 내려가지 못하게 경계선이 쳐져 있다. 열심히 바람을 쐬고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 모델도 되어 본다.

하늘의 갈매기도 바람을 따라 높이 그리고 시원스럽게 날았다. 갈매기의 날갯짓이 예사롭지 않다. 특이하고 힘차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센 대서양 바닷바람과 맞서 싸워 나가는 불굴의 의지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절벽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바다는 아름답고 시원했다. 바다는 푸른빛을 넘어 옥빛이 되고 쪽빛이 되었다. 아니 삼색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고 있다. 바람이 내 마음을 상쾌하고 즐겁게 해준다. 끊임없이 파도가 몰려와 절벽에 부딪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 ‘빠삐용’이 생각났다.

늙은 노인이 되어서도 끝까지 자유인이 되고자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스티브 맥킨) 모습이 생각났다. 그가 매일 같이 바닷가에 나와 파도의 흐름을 연구하기 위해 야자열매가 든 포대를 바다에 던지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러나 파도는 쉽사리 그의 열망을 채워주지 않는다. 파도는 야자포대를 바다로 밀어내지 않고 다시 절벽으로 되돌려 보낸다. 빠삐용은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그런 실험을 계속하면서 물의 흐름을 관찰한다. 그리고 마침내 야자열매 포대를 타고 파도의 흐름을 따라 저 멀리 바다로 나간다. 바닷가 절벽 위에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빠삐용의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 드가. 그들에게 바다는 과연 자유일까? 아니면 제약일까?

하늘의 주인공이 갈매기라면 땅의 주인공은 이구아나다. 바닥 곳곳에 이구아나가 돌아다닌다.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멀리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도 놀라거나 쉽게 도망가지 않았다. 내가 가방에서 과일을 꺼내 먹자 어디선가 이구아나 한 놈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내가 먹던 사과를 던져 준다. 그런데 너무 큰 덩어리를 주었다. 작은 사과였지만 거의 반쪽이나 되는 사과를 덥석 물고 통째로 삼키려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걸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좀 잘게 잘라서 줄 걸 하고 후회한다. 그걸 물고 조금씩 입안으로 삼키던 그놈은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완전히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더니 그걸 입에 문 상태로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과연 그놈은 그 사과를 아무 탈 없이 온전히 삼켰을까? 나는 그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 교수님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냥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적절한 시간의 범위 안에서 구경을 대충 끝내고 유적지를 나온다. 아쉽다. 그냥 바닷가에서 화석이 되어버려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구아나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을 것 같다.

   
▲ 유적지에서 바라본 대서양 바다. [사진-임영태]

 

   
▲ 바닷가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 [사진-임영태]

 

   
▲ 유적지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여인. [사진-임영태]

 

   
▲ 내가 던져 준 사과를 통째로 문 이구아나. [사진-임영태]

 

우리는 열심히 ‘꼬레아’를 외친다

유적지에서 나와서 유원지를 지나서 큰 도로 변으로 나온다. 택시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계속 ‘탁시’를 외친다. 우리는 갈등하다가 그냥 지나친다. 또다시 툴룸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것은 무리다. 택시를 타든지 버스를 타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일단 대로로 나서서 택시를 잡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대로변에 정류장이 있고, 그것에 사람들이 모여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본능적으로 해결책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알고 보니 툴룸 유원지(유적지) 버스정류장이다. 우리가 탈 아데오(ADO) 버스도 이곳에 선다는 것이다. 그곳에 있던 직원이 툴룸 터미널에 선 다음 10분 뒤에 이곳에서 승객을 태워 플라야 델 카르멘을 거쳐 칸쿤으로 간다고 말한다. 아, 이런 행운이. 택시비 벌었네. 시간도 벌었네.

우리는 택시비 대신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기로 하고 금방 지나친 음식점으로 되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맥주와 음료수를 시켰다. 하지만 멕시코시티에서 먹었던 그 맛있는 과일주스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과일주스를 시키면서 ‘노 알콜’을 강조했다. 이곳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에는 대부분 알콜이 약간씩 들어가 있다. 일종의 칵테일 종류라고 볼 수 있다. 멕시코인들은 맥주도 단맛 나는 맥주를 즐겨 마신다.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생겼다. 그 가게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담소를 즐긴다. 맥주는 한 병에 30페소(2400원)로 우리하고 비슷한 값이다. 하지만 음료수는 상당히 비싸다. 80페소(6400원). 음료수 맛이 괜찮지만 그래도 비싸다.

   
▲ <사진18> 우리가 쉬면서 맥주와 음료수를 마신 실외 레스토랑 내부. [사진-임영태]

 

멕시코인들은 우리를 보고 대개 ‘치노?’라고 묻는다. 가끔은 ‘곤니찌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 우리는 ‘꼬레아!’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들은 활짝 웃으며 ‘아, 꼬레아?’라고 반응한다. 그들에게 동양인은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이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꼬레아!’라고 대답하면 반응이 나쁘지는 않다. 그 반응으로 보아서는 그들이 꼬레아를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만큼은 아니어도 한국인 여행객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멕시코시티와는 달리 칸쿤은 치안 상태가 좋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유원지에 범죄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멕시코는 상황이 약간 다른 모양이다. 칸쿤에서는 밤에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멕시코의 경우 북쪽의 치안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쁘다고 알려져 있다. 칸쿤처럼 널리 알려진 남부 휴양도시의 경우는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고 치안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남부에 속하지만 학생 실종사건이 발생한 게레로 주나 경제사정이 가장 열악한 치아파스 주 같은 태평양 연안지역은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다.

5시 30분에 버스가 도착했다. 예정보다 약간 늦었다. 버스가 칸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7시 30분경이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오늘 아침에 아무리 돌아봐도 못 찾았으니 할 수 없다. 다시 중국성으로 가는 수밖에. 볶음밥과 닭고기 수프, 닭고기 야채밥, 그리고 환타 비슷한 맛이 나는 음료수를 한잔시켰다. 이곳 사람들은 닭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지만 우리 일행은 닭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한 번 먹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켰다. 그 맛이 좋았다.

식사를 하기 전 내일 타고 갈 공항행 버스표를 예약해 두었다. 그때 교수님이 냉방에 대비하기 위해 갖고 다니던 겉옷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터미널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한다. 답답하다. 그러다가 다행히 영어를 하는 직원을 만났다. 그의 안내로 터미널에 정차해 있던 버스에서 옷을 찾았다. 마지막 버스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잊어버렸을 것이다.

식사 후 이 대표와 나는 다시 커머셜 멕시카나로 갔다. 멕시코 찐쌀 3봉지를 샀다. 쿠바에 가서 해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샀지만 우리는 하나도 해먹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 쌀은 가지고 다니느라 짐만 되었다. 저녁과 다음날 먹을 물과 간식거리도 조금 샀다. 쿠바에는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데 뭘 좀 사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사서 가져갈 만한 게 없었다.

숙소 앞에 있는 동네 가게(OXXA)에서 맥주를 6병 샀다. 이곳에는 작은 맥주병밖에 없어서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다. 우리는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고 하루를 즐겁게 마감했다. 샤워를 하고 12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칸쿤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툴룸 시내의 차량 검문소. 칸쿤과 툴룸 등 멕시코 남부 해안의 휴양도시는 멕시코시티와 그 북부지역과 달리 치안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사진-임영태]

 

   
▲ 총기를 들고 툴룸 시내 도로에서 차량 검문을 실시하고 있는 경찰. [사진-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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