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첩첩산중처럼 쌓여 있고 완전히 꼬여버린 역사를 가진 나라가 백 년도 안 돼서 모든 게 멀쩡하게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 과한 일이겠지. 그냥 오늘의 현실만 보자면,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단순해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거든. 보수도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고, 진보도 아직 제대로 된 진보가 아니야.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느라 가치를 논하기 전에 당장 더 급한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 치면서 먹을 거 가지고 싸우던 수준에서 얼마 오지 못한 상태라니까.” (278p)

“절대로 정치가 주는 고통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되는 거야.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고. 고통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 거야. 정면으로 직시하고, 절대 물러서지 말라고. 그리고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방법, 고통을 나눔으로써 희망을 찾고 감동을 만들어내는 길을 발견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벅찬 감동이 주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이게 진정하게 정치를 즐기는 방법이야.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거야.” -(290p)

이 책이 나왔을 때가, 2012년 3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어. 아, 꿈 많던 시절이었지. 이번에는 무언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자다가 가끔 벌떡 일어나, 맛이 간 놈 마냥, ‘으하하하!’ 웃기도 했던,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네.

용산 참사, 4대강 사업을 비롯한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죄다 진상이 밝혀져 혼날 이들은 혼나고, 학교에 들어갈 이들은 여지없이 들어가는, 그런 날이 곧 돌아오리라 믿었던, 순진무구 희망 찬란했던 그런 나날이었어. 어흑.

하지만, 지금은 2015년 9월이야. 그 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다들 뼈가 시리도록 절감하고 있겠지. 두 번 연속 자폭을 해버린 국민들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나라의 녹을 먹는 국정원 직원이 불법 선거개입을 시도하며, 키보드를 두들기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경찰에게, 오히려 감금당했다고 설레발쳐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진심(!)이 인정되는 세상, 그리고 그런 코미디를 총 연출한 국정원장은 결국 또 다시 코미디 같은 법의 판결을 받았어. 지금도 그 국정원 여직원이 얼굴을 가리고, 앞에 무려 커다란 병풍을 치고, 증언하던 모습이 떠올라.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피해자라 여기고 있었을까.

정치, 참 짜증나는 이야기야. 정치인 중 욕을 안 드시는 분이 거의 없고, 잘난 언론들은 매일매일 정치판의 아수라장을 전하느라 바쁘지. 정치하는 것들은 죄다 도둑놈 같고,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해. 그런데, 과연 그럴까?

▲ 박성호, 『정치가 밥 먹여준다』, 한즈미디어, 2012.3.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는 책의 첫 장부터, 정치란 것이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것이라 말해. 월드컵보다 박진감 넘치고, 스펙터클한 한 편의 대서사시라는 거지. 월드컵이나 프로야구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선한 평가야. 그동안 정치에 환멸 혹은 무관심했던 이들에겐, ‘뭔 소리여 당최?’의 반응을 불러오기 십상인 도발인 셈이야.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정치라는 놈이 저자의 주장처럼 꽤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게다가, 그 정치라는 게임이 내 삶과 다이렉트로 팍 연결되어있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지. 더 더 게다가, 그 게임의 판돈을 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국민이잖아. 그럼 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나. 지금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고, 지금 야당의 대표가 야당 대표가 아닌 대통령이었다면, 혹은 바이러스를 살벌하게 잘 잡던 어느 분이 대통령이었다면, 어땠을까? 잘 하든 못 하든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대한민국이 되었겠지? 물론 천지개벽할 변화는 아니겠지만, 지금과 100% 같지도 않았을 것이란 소리야.

그렇게 대단+중요한 선택을 우리가 제대로 현명히 하려면, 귀찮더라도 분명 정치란 놈의 스펙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정치 따위 개나 줘버려! 가 되거나, 아무한테나, 기분 내키는 대로, 그날 날씨나 바이오리듬에 따라 투표용지를 투척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거잖아. 그리고 자신은 분명 자신의 의지대로 투표한다고 생각을 해도, 송편도 아닌 종편처럼 냄새나는 언론의 영향 속에 무의식적으로 엉뚱한 투표를 하는 경우도 생겨. 좀 짜증나지.

솔직히 따지고 보면, 또 우리 국민들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드물어요. 인정하자고. 택시를 타면, 국가대표급 정치평론가들이 운전을 하시며,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정치평론을 하시고, 술자리 어디에나 슬쩍 끼어들어도, 여지없이 정치 이야기가 나오지. 물론 지나치게 몰입하다보면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자제하는 편이지만, 결국 정치이야기가 주된 안주거리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 음주계의 모습이야. 부정하기 힘들지?

그런데 왜 이런 정치 마니아들에게 ‘정치를 어떻게 보십니까?’하고 물으면, 대부분 매우 부정적인 답변이 나오는 것일까. 저자는 그게 바로 기존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현 권력에 복무하는 언론이 부러 조장하는 꼼수라고 지적해. 즉 기존에 해 드시던 분들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이것저것 시시콜콜 간섭하고 훈수 두는 게 싫은 거야. 최대한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해 드실 수 있으니까.

여기에 기생하다 못해 일체화가 되어버린 언론들이 매일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그야말로 쏟아내며,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고 있고 말이야. 환상의 호흡이지만, 지저분하기도 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서라도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또 이것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거룩한 메시지야. 그래야 이 빌어먹을 세상이 단 한 발이라도 발전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삶이 단 1센티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지. 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극히 지당하신 말씀이야. 당근이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다면, 이제는 이들 환상의 콤비의 꼼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할까. 저자의 설명은 꽤 그럴 듯해. 아니, 맞다고 봐야지. 바로 너무 아프기 때문이야. 정치를 알면 알수록, 우리 주변에서 매우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상처받는 이들이 많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야. 타인의 고통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면 모를까,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 중, 이웃의 고통, 이웃의 눈물에 흔들리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될까.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많은 국민들의 응원을 봐도 알잖아. 물론 단식하는 이들 앞에서 초코바 쭉쭉 빨고 자장면 쳐드시던 라이또 집단은 빼고 말야.

정치를 알수록 이 세상의 민낯을 더 많이 느끼게 되지. 그리고, 엿 같지만 더 많이 울게 돼. 나 같이 정치에 ‘정’자와도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도 그걸 느껴. 정말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아파서 눈물이 나오더라니까. 젠장. 엉엉 운적도 있어요!

하지만 당장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지는 않더라도, 앞서 인용한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끝까지 유쾌하게 나아가야 할 거야. 끝까지 가는 놈이 이기는 거니까! 그리고 나의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타인의 눈물을 걱정해주는, 그런 쿨한 인간이 되어야 해. 그게 이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이나마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야! 믿어보라니까!

책은 딴지일보 김 총수의 추천사처럼 매우 근면한 정치게임 입문서라 할 수 있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정치 따윈 개나 줘버려! 라고 한다면. 음, 음, 음. 슬픈 일이지 뭐. 암튼 난 강추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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