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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에서 칸쿤으로 가다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13)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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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1  14: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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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청춘의 욕망이 불타는 금요일

밤 12시가 조금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거리가 소란스럽고 시끄럽다. 숙소 주변에서 나는 소리다. 시끄러운 차소리, 경적소리,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가 계속된다. 일어나서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러나 비몽사몽 그냥 지나간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일어나 살펴보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나는 그냥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깼다. 새벽 3시 30분쯤, 바깥이 소란스럽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본다. 건너편 대각선으로 라틴 뮤직(Latin Music)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그 앞에서 나는 소리다. 댄스홀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트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춤을 추는 곳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앞에는 밤새 춤추고 놀다가 귀가를 서두르는 청춘이 몇 사람 보인다. 젊은 청년들, 여인들이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 붙어 있는 연인도 있다.

택시와 승용차들이 분주히 길거리를 오가는 모습이 목격된다. 어라, 이거 다른 날하고 다르네? 평일 날은 이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지난밤이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었다. 불금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곳에도 불금은 엄연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들의 꿈틀대는 본능과 욕망이 느껴지는 금요일 밤의 열기. 부디 자유로운 영혼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한동안 이 광경을 구경하다가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아무래도 잠을 좀 더 자야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다가왔다.

   
▲ 멕시코시티의 우리 숙소 대각선 맞은편에 있던 수이테 호텔(Suite Hotel)과 지하의 라틴뮤직(Latin Music). 그곳에서 청춘들은 불타는 금요일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진-임영태]

잠깐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깼다. 아침 5시 10분이다. 아직 여유가 있다. 좀 더 자 둬야 돼. 강박관념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나를 잠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사람들이 움직일 시간이 되었는데도 조용하다. 아마 토요일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청소 수레를 끌고 가는 청소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다. 건너편 수이테호텔(Suite Hotel)과 라틴뮤직(Latin Music) 홀도 이제는 조용하다. 토요일이구나, 휴일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평일이라면 이때쯤이면 이미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사이 3시쯤 잠에서 깬 이 대표가 벌써 쌀을 씻어서 불려 놓았다. 오늘은 어제 산 자포니카 쌀로 밥을 해먹기로 했던 것이다. 이곳이 고지대여서 밥이 제대로 될지 걱정되었다. 7시쯤 일어나 밥물을 맞추고 가스불을 켰다. 밥은 생각보다 잘 됐다. 중간이 너무 빨리 끓어서 불을 낮추고 천천히 뜸을 들였더니 그런대로 잘 됐다. 약간 축축하지만 먹을 만하다. 날아가는 안남미와 달리 밥맛도 좋다. 눌은밥으로 숭늉도 끓였다.

멕시코시티에서 칸쿤 가는 길

식사 후 우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며칠 전 이곳에 왔지만 공항은 낯설다. 1시 40분 칸쿤행이니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그래도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좀 일찍 나섰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수하물을 부쳤다.

그런데 국내선 저가항공이어서 그런지 개인당 15킬로그램까지만 짐이 허용됐다. 4개 중 2개가 중량초과에 걸렸다. 1kg에 100페소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가방 2개가 20.1킬로그램, 19.4킬로그램. 모두 9킬로그램 초과, 900페소를 내란다. 7만원이나 되는 돈이다. 짐을 나누어 다시 싸고 우리가 맨 가방에 일부 내용물을 집어넣었더라면 그 비용은 안 지불해도 됐겠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카드로만 대금지불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짐을 부치고 공항 바닥에 둘러앉아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먹고 남은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가져갔던 것. 소금과 김, 오이를 넣어서 만들었다. 우리는 계단 아래 편하게 앉아서 먹었다. 아무도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니 노동자들이 텐트를 치고 농성중이다. 항공사 합병과정에서 대량해고가 발생하면서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멕시코가 엉망이긴 해도 시위 문화에는 우리보다 관대한 측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같으면 인천공항에서 하루도 텐트 농성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탑 위에 올라가도 끌어내리는 판국이니.

전날 홍 목사는 멕시코에서 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온건하다고 말했다. 평화집회인 경우에는 철저히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나로서는 최근 멕시코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두고 볼 때 도무지 동의하기 어렵다. 

   
▲ 비행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시위 농성장. [사진-임영태]

 

   
▲ 공항에서의 시위농성장. 멕시코가 시위 문화에는 우리보다 관대한 측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임영태]

짐을 부치고 전자예약권을 제시하여 비행기 표를 받았다. 그런데 좌석번호가 없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냥 줄서서 기다리다 타면 된다고 한다. 아무리 국내선 저가항공이지만 놀랄 일이다. 우리는 시간도 충분해서 좋은 좌석을 차지하겠다고 제일먼저 탑승 게이트 앞에서 줄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VIP, Special, 1, 2, 3그룹이 다 탄 후에 우리의 4그룹이 탔다. 그래도 4그룹에서는 제일 먼저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뒷부분이지만 괜찮은 자리를 확보했다.

나는 비행기 이륙 전부터 졸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멕시코시티의 시가지 모습은 싶었다. 안간힘을 쓰며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쏟아지는 졸음을 어쩌지 못한다. 결국 졸다가 깨다가 비몽사몽 헤매다 보니 어느 새 칸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 2시간 10분은 눈 깜박할 시간이었다. 칸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대지방이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지 않았는데 수속을 밟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 새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탁시(택시)’를 외치며 손님을 찾고 있다. 택시를 탈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 택시는 4명에 64달러다. 사람 수만큼 돈을 받는다. 버스는 4명에 20달러였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30분쯤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아데오(ADO)는 장거리 고속버스로 이용되는 시설이 좋은 고급차였다. 우리나라 공항 리무진 버스보다 시설이 더 나았다.

   
▲ 칸쿤 공항에 내리니 강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한동안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린다. 아무래도 장마인 모양이다. [사진-임영태]

비속에서 맞은 칸쿤과의 첫 대면

잠시 후 우리는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열대성 스콜로 도로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다. 예약한 숙소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이 빗속을 4명이 무작정 짐을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나와 교수님은 터미널에서 대기하고 원장님과 이 대표가 먼저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멕시코시티에서 길거리를 헤맨 경험의 결과였다.

두 사람이 숙소를 찾아 떠난 뒤 빗줄기가 강해져서 걱정이 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교수님이 관련된 197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사건에 대해 들었다. 내가 질문하면 교수님이 이야기를 해주는 식이었다. 사건의 전체적인 성격과 교육프로그램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건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도 소개받았다. 현대사와 관련된 저술 작업을 하고 있는 내게는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교수님의 커피와 관련된 에피소드, 건강 이야기도 들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커피를 매우 사랑했으나 이제는 불면증 때문에 커피를 거의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비염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는 나도 충분히 공감이 됐다. 나 역시 비염 때문에 힘들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유전성이 있는지라 우리 집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이나 더 알레르기 비염을 앓고 있다. 

   
▲ 공항에서 칸쿤 시내로 가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사진-임영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제법 흘렀다. 기다리는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금방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이 됐다. 너무 먼 거리에 집이 있는 것일까? 예약이 잘못되었나? 아니면 집을 못 찾고 있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교수님은 택시를 타고 올 걸 그랬다고 조바심을 친다.

그러고 있는데 이 대표가 먼저 왔다. 말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눈치를 보니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는 ‘원장님은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늦는다’고 간단히 덧붙인다. 비가 너무 와서 도로가 완전 물바다가 됐다는 이야기도 한다. 옷이 다 젖었다고 걱정했더니 비는 좀 맞아도 괜찮다고 답한다. 어투로 보아서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문제일까? 

   
▲ 숙소 근처에 있던 ADO 버스터미널. [사진-임영태]

 

   
▲ ADO 버스터미널. 버스들이 정렬돼 있다. [사진-임영태]

잠시 뒤 원장님이 도착했다. 숙소에 가기 전에 저녁 식사를 먼저 하자고 한다. 마침 터미널 바로 근처에 중국집이 하나 보인다. 중국성(中國城)이란 이름의 작은 식당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볶음밥과 야채탕을 하나씩 시켰다

양파, 브로콜리가 들어간 야채탕도 큰 그릇(양푼)에 가득이다.

나는 비교적 식사량이 많은 편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보통보다 적은 편이었다. 우리는 두 명분으로 배를 다 채웠다. 하지만 다른 손님들은 우리와 달리 혼자서 그 많은 양을 혼자서 다 먹었다. 그날 저녁 이후 우리는 칸쿤에 있는 동안 매일 한 끼는 이곳에서 해결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중국인 부부가 하는 이 집은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제법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은 우리처럼 요리를 시켜 먹지 않고 몇 가지를 조합한 뷔페식 세트 1, 2, 3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먹었다. 그게 빨리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했다. 우리가 먹은 요리는 뷔페식보다는 약간 비쌌으나 10달러를 넘지는 않았다.   

   
▲ 칸쿤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 식사를 했던 중국성. [사진-임영태]

숙소에 문제가 생기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원장님이 사정 이야기를 간단히 했다. 예약한 숙소가 좁아서 교수님과 원장님은 가까운 호텔로 옮겨야 되겠다고 한다. 식사가 끝난 뒤 숙소로 향하는 도중에 이 대표가 사정을 설명한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방이 하나밖에 없고, 보조 침대까지 포함해 4인용인데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 두 분은 숙소로 가는 도중에 있는 한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그 사이 원장님이 예약을 해 놓았던 것. 짐을 올려주고 우리는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원장님이 놀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 침대가 하나 있고, 입구 쪽에 1인용 침대와 그 아래 탁자처럼 집어넣어다 뺐다 할 수 있는 보조침대가 있었다. 이건 도저히 4인이 묶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숙소는 이런 상황이니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원장님이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으로 일을 처리했다. 터미널로 오는 도중 몇 군데 숙소를 알아본 다음 한 호텔에 예약을 했다. 일단 오늘은 호텔에서 두 분이 묶고 다음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던 것. 우리가 묶고 있는 방은 2층이었는데, 3층 방이 내일이면 빈다고 했으므로 이곳에서 묶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그 집으로 갔더라면 일이 더 꼬였을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오는 바람에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시간이 있었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원장님이 순간적인 판단력과 놀라운 실행력으로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결했던 것. 그런 와중에도 어느 사이에 다음날 가기로 예정한 치첸이샤 행 왕복 버스표까지 구입해 놓았다. 만약 그날 저녁에 구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음날 버스표를 구할 수 없어서 가지 못할 뻔했다.

이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원장님의 일처리 솜씨에 놀랐다고 말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숙소에 도착한 뒤 눈앞이 캄캄했는데 원장님은 한 순간 모든 상황을 간파한 뒤 바로 전광석화처럼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적인 판단력과 일처리 속도를 보고 원장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고. 마치 ‘터미네이터’‘슈퍼맨’같았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우리 두 사람은 한참이나 웃었다.

그 사이 숙소에 도착한 뒤 젊은 주인아저씨가 와서 뭐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지만 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대략 필요한 것만 알아들었다. 주인은 캐나다에서 살다가 너무 추워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젊은 아들과 나이든 아버지가 함께 민박을 돌보고 있었다. 젊은 아들은 낮에는 일을 나가고 저녁에 와서 챙겼으며, 아버지는 청소를 비롯하여 집안을 돌보았다.

주인이 돌아간 뒤 우리는 오늘 일을 생각하며 다시 웃었다. 그때 원장님이 들이닥친다. 어느 새 맥주 6병과 물까지 손에 들려 있다. 내일 갈 버스표도 예약했다고 한다. 숨 가쁘게 일 처리하고 이제 한숨 돌렸다는 표정이다.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는 날의 첫 위기에 이어 칸쿤에서 맞은 두 번째 위기도 이렇게 일단은 고비를 넘겼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쓴 웃음을 나누었다.

   
▲ 우리가 묶었던 숙소 모습. 이층이 우리가 묵은 방이다. [사진-임영태]

 

   
▲ 숙소의 실내 모습. [사진-임영태]

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

원장님이 돌아가고 피곤해서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그냥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우리 숙소에는 더블 침대와 작은 1인용 침대가 있었다. 이 대표가 더블 침대는 약간 덩치가 큰 내가 사용하란다. 선배의 배려였지만 미안했다. 이후 쿠바에서도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했다. 1인용 침대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약간은 불편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여행 내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잠이 깼는데 4시 30분밖에 안 됐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어제처럼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문을 열고 밖을 본다. 우리네 작은 소도시에 온 느낌이다. 비 오는 풍경이 내게는 너무 운치가 있어 보였다. 집들도 정겨워 보인다. 가로등 불빛과 함께 골목길 여명이 푸르스름하게 다가온다. 이국적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어느 시골 중소도시에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편안하다. 어제 오후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간간히 보았던 야자수 나무와 열대 식물들을 보면서 멕시코시티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풍경들이 생경하거나 생소하지는 않았다.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6시쯤 우리는 우리가 묶고 있는 주변거리를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환전소와 식사할 곳도 알아보아야 했다. 지리도 좀 익혀 두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사였다. 교수님이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다. 몸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가능하다면 한국음식점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숙소와 터미널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음식점, 가게, 환전소 등을 확인했다. 가게는 곳곳에 있어서 물건을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멕시코 식당이나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파는 패스트푸드점밖에 안 보였다. 한식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멕시코 음식에 적응이 잘 안 되는 교수님은 혹시 호텔 뷔페에 가면 한식 종류가 있지 않을까 라고 했다. 주변에서 한식을 찾아보려 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중국성이 그래도 최선이었다. 숙소에도 주방기구가 하나도 없어서 식사준비를 할 수가 없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이고,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워 먹을 수는 있었지만 밥을 할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으나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일단 오늘 치첸이트사 관광을 끝낸 다음 다른 방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 칸쿤 숙소 근방의 모습. [사진-임영태]

 

   
▲ 칸쿤 숙소 근방의 로터리. [사진-임영태]

 

   
▲ 숙소 근처에 멕시코 독립전쟁을 이끈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 기념관이 있다. [사진-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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