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통일준비위원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고 뒤늦게 전해졌습니다. 어쨌든 이 말이 사실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불순(不純)하다고나 할까요? 박 대통령의 ‘내년 통일론’은 지난해 1월 내세웠던 ‘통일대박론’과 같이 아무런 과정과 내용 없이 나와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같은 언명(言明)은 어디선가 비슷하게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 그렇군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중인 2012년 9월에 “통일은 도둑처럼 한밤중에 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군요.

어쩜 두 대통령이 통일 문제와 관련 이같이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쉽게 내뱉듯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박근혜-이명박’ 두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붕괴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대통령이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당시는, 지난 5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설이 풍미하면서 북한의 ‘공포정치’가 세간에 널리 퍼졌고, 이어 고위급 인사의 망명설이 돌아 북측 지배층의 분열 가능성이 회자되던 시기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정보당국으로부터 이 같은 보고를 받았다면, 북한 급변사태와 붕괴론에 경도됐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북한붕괴론의 뿌리는 아주 깊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뜨자 내노라하는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입에 거품을 물고 이른바 ‘3-3-3’을 주장했습니다. ‘빠르면 북한이 3일 안에 망한다, 아니면 3개월 안에 망한다. 늦어도 3년 안에는 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건재합니다. 매번 유행처럼 북한 붕괴론이 떠돌았지만 그 근거와 논리가 형편없었음을 반증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제까지 정부가 밝혀온 “갑작스러운 통일, 특히 북한의 급변 사태로 인한 변화는 원치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뒤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내년 통일’ 발언과 이 전 대통령의 ‘도둑 통일’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북한을 무릎 꿇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여의치 않아졌습니다. 그러자, 첫째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둘째 임기 절반에 이르자, 셋째 아무런 대책 없이 쏟아낸 말일 뿐입니다.

통일을 원한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방안을 내놓고 차근차근 접근해 가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고 자신도 없기에 미신적(迷信的) 운명에 투항해 ‘내년 통일론’과 ‘도둑 통일론’을 내뱉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대책 없는 심술’이자 ‘도둑 심보’일 따름입니다.

유행을 타는가요?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7월 말 제17기 민주평통 워싱턴지역협의회 출범식의 한 강연에서 “남북통일이 새벽처럼 찾아올 것이다”고 말했으며, 또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한 강연에서 “남북통일은 독일처럼 갑자기 올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망둥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말처럼 모두가 한마디씩 끼어들기를 하는 모습이 영 시답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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