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각이 정확하거나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 항상 맞아 떨어질 순 없지만, 그들은 우리도 모르게 눈을 가리고 있는 편견과 오만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외신 기자를 만나 비교적 오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4년여의 시간동안 한국에 머물며 남북관계, 북일관계, 한반도 주변 정세 등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그의 글을 통해 한반도를 상상하고, 남북관계 및 북일관계를 전망할 것이다.

기자는 솔직 담백했다. 특정 정권이나 정치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이른 바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지도 않았다. 다만 어떤 정책과 행동이 한국 나아가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광복 70년은, 일본에겐 패전 70년이 될 것이다. 결코 달갑지 않은 기억일 테고, 주변 국가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말이다. 기자는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노골적인 우경화 전략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한국 및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대응전략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는 나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때론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 감정적인 대처도 필요하겠지만, 외교는 분명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하고,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분 내키는 대로 독도를 깜짝 방문한다고 해서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잠깐 동안의 지지율은 상승하겠지만 말이다.

기자는 남북관계 진전이나 관리에 있어 현 정권의 무능함을 은연중에 비판했다. 일본 역시 북과 납치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두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직접적인 당사자인 남측은 보다 현명하고 전략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광복 70년을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 정작 남북관계 진전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물었다.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흔이 넘은 고령의 이희호 여사가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방북길에 나선 상황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겠다는 여사의 의지는, 정작 그 역할과 책임을 맡은 이들의 무능과 나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수많은 행사와 이벤트들이 진행되었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그 중엔 의미 있는 것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광복 70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광복을 위해 지금 여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지, 어떤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분단이 그렇듯 광복은 남측만의 것이 아니다. 마치 북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 마냥 진행되고 있는 것들을 보자면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한 심정마저 든다. 북 역시 자기들만의 광복 70년을 기념할 것이라는 생각도 우울하다. 광복이 아닌 분단 70년을 축하하는 것은 아닌지, 우린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지금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 아름다울 것 같지 않다. 주문처럼 통일을 외치고, 대박이다 뭐다 떠들어대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날선 비난과 무시가 반복된다. 남북은 서로에게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처럼 호명된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긴장과 대립에서 안정과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 그 기본적인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는, 오히려 국민들의 통일 의식이 빈약하다고 윽박지른다. 적반하장이다. 젊은이들의 통일 의식이 부족하다고 외치는 것은 공교육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통일교육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그동안 젊은이들이 통일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책임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뻔뻔함의 극치가 아닌가.

통일은 대박이 아니다. 과정이다. 한 번에 터지는 잭팟이 아닌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통일이 대박이라고 외치는 순간, 북에게는 그것이 흡수통일의 선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 역시, 북의 붕괴를 대비한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표현방식과 진심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한반도평화포럼,『통일은 과정이다』, 서해문집, 2015.6.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은 남북관계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그리고 관계 개선을 위해 평생 노력해 온 원로들을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들의 ‘통일의 과정’이 담겨 있다. 분단 70년이라는 치욕을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지, 남과 북의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또한 행복해질 수 있는 통일의 과정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남북문제를, 통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그야말로 반통일 세력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도 담겨 있다.

 

 

답은 명쾌하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통일은 과정이다. 그 무슨 로또도 대박도 아니다. 아울러 남측 혼자 준비한다고 해서 제대로 준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 붕괴론’을 주문처럼 외워온 이들에게는 북의 붕괴가 곧바로 통일로 상상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넋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인정과 만남을 통한 평화 만들기, 평화 유지하기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통일은 축복이 아닌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통일준비는 남북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기자와 나는 알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전범 국가 독일은 분단이 되었지만,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인 한반도가 반으로 갈렸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억울함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억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이 이뤄진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전히 냉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함, 여전히 지긋지긋한 분단체제의 굴레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리석음을 온전히 외부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독히 부끄러운 짓이다.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분단에 일본이,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이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는 분명 단단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분단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의 통일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끊임없이 소통을 추구해야 하고, 싸우더라도 만나서 싸워야 한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해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도 전달할 수 있다. 협상은 독백이 아니지 않나.

2000년 8월 15일, 제1차 남북이산가족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고 갔다. 2005년 그날엔 제1차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5년 8월, 아무리 화려한 폭죽을 터뜨려도, 쓸쓸한 광복절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공허함이 밀려온다.

이명박 정부가 남겨준 교훈은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의 붕괴가 임박하거나 급변사태가 도래하거나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헛된 바람일 뿐이다. 북이 붕괴되면 정작 대재앙에 직면할 것이 빤함에도 무책임하게 바람을 현실로 둔갑시키는 짓은 이젠 그만해야 한다.

책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분단을 인식하고, 북을 바라보고, 진정한 광복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케 해준다. 허망한 통일 대박이나, 통일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상황이 암울해도 끝내 남북관계는 잘 풀릴 것이라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로 기자와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부디 현실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광복을 평화를 남북이 함께 축하하며 만들어가는 한마당을 여전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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