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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대에도 국경은 있다임영태의 멕시코-쿠바 여행기 (2)
임영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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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4  07: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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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여행과 인생은 닮은 꼴

   
▲ 인천 공항. 이번 여정의 출발점. 떠나려니 무언가 뒤에 남겨둔 것이 있는 듯 아쉬움이 남는 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그냥 두고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여행은 인생과 닮았다. [사진-임영태]

6월 9일 오후 3시 30분, 부천 송내에서 이 대표와 함께 공항버스를 탔다. 5시 공항에 도착, 교수님과 만났다. 원장님은 사흘 전 미리 출국한 상태다. 전자티켓을 제시하고 짐을 부쳤다. 짐은 갈아타는 비행기에 자동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처리하겠지만, 다시 확인하라는 항공사 직원의 당부가 있었다.

우리는 로스앤젤레스(LA)까지는 대한항공으로, LA에서 멕시코시티까지는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할 예정이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LA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멕시코시티로 가게 돼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LA에 도착한 뒤 공항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출국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때 짐을 부치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하는 비행기에 자동으로 짐이 연결되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짐을 부치고 좌석 티켓을 배정받은 다음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갔다. 검사는 꼼꼼했다. 미국행이어서 더 그런가 싶기도 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은 자국의 안전이 곧 세계의 안전이라고 믿고 있다. 과연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런 문제와 상관없이 항공기의 안전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문제는 간편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나마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할 수 없으니.

1시간에 걸친 출국수속을 끝내고 오후 6시경 10번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8시 비행기여서 아직 시간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시간, 모두들 출국 인사에 분주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쥐고 거기에 눈을 박은 채 꼼짝 않고 있다. 7시 30분부터 탑승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8시 정각에 이륙했다. KAL 580편으로 우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뭐라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를 남겨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제는 돌아갈 수도 내릴 수도 없다. 갑자기 “여행은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순간 떠나야 하는 것, 이것이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홀연히, 미련도 없이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여행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든지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두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인천공항 탑승장 대기실. [사진-임영태]

국적 항공사의 친절한 서비스

비행하고 1시간쯤 경과한 뒤 기내식이 나왔다. 나는 비빔밥을 선택했다. 맛이 괜찮다.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이 맛을 한동안 못 볼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여행을 해보지 못한 나는 여행에서 먹는 것이 갖는 중요함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나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수많은 간접 경험에서 나온 추상적인 지식과 사고보다는 구체적인 경험에서 훨씬 정확한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실제 경험의 중요성이다.

식사 후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았다. <호빗-다섯 군대 전투>였다. <호빗> 3부작의 마지막 편이자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는 연결 편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뜻밖의 여정>은 극장에서 모두 봤으나 <호빗-스마우그의 폐허>와 <호빗-다섯 군대 전투>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극장에서 보는 장대한 맛은 없었으나 피터 잭슨 감독의 <반제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으로 연결되는 시리즈의 16년에 걸친 여정의 마지막 편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로스앤젤레스까지의 비행시간은 10시간 이상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LA로 가는 시간은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10시간 15분 정도로 잡혀 있고, LA에서 인천공항으로 올 때는 2시간 10분 정도 더 걸려서 12시간 30분 정도라고 한다. LA가 편서풍 지역이라 갈 때는 순풍을, 올 때는 역풍을 받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시간은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 감옥에 갇힌 신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진정됐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던가?

날짜 변경선을 넘는 바람에 하루를 벌었다. 실제로 시간은 가고 있으므로 번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시간 개념상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6월 9일 밤에 출발해 10시간 넘게 비행했음에도 여전히 6월 9일이다. 서울과 LA의 시차는 16시간이다. 서울이 16시간 빠르다는 이야기다. 도착 3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다시 기내식이 나왔다. 이번에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나중에 이 대표는 죽을 먹었는데 아주 좋았다고 칭찬했다. 나도 죽을 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죽을 먹고 말겠다고 생각한다.

   
▲ 대한항공의 기내식 비빔밥. 다른 항공사의 그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서비스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승무원들의 고된 노동이라는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사진-임영태]

   
▲ 대한항공의 기내식 오므라이스. [사진-임영태]

엄존하는 국가 경계선을 확인하다

그런데 우리 세 사람은 각각 좌석이 떨어져 앉아야 했다. 공항에 늦게 온 게 아니었지만 하나씩 독립된 좌석밖에 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 앉은 자리가 문제였다. 비행기 일반석 제일 앞쪽이었는데 어린아이와 함께 한 부부가 옆 좌석에 탔던 것이다. 아이가 계속 울어대는 바람에 교수님이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좌석 앞에 유모차를 놓아두어서 발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좌석을 바꾸자고 했으나 괜찮다고 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됐다. 비행종료 4시간가량 앞두고 승무원의 배려로, 항공사 직원과 자리를 바꿔주어서 마지막에는 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미국 현지 시각 6월 9일 오후 3시 10분경 LA 공항에 도착했다. 예정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우리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입국절차를 밟아야 했고, 다시 출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가까워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국경은 엄존한다. 나는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를 밟으면서 그걸 실감할 수 있었다.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은 자본밖에 없다. 물론 새들도 자유로이 오가지만 인간의 이동에는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 그걸 확인시켜주는 것이 국경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하지만 하나가 아니다. 그 속에는 숱한 경계와 구분, 차별이 존재한다.

2001년 9.11테러 사건 이후 항공기 탑승 절차와 출입국 심사 과정이 훨씬 까다로워졌다. 특히 미국으로 향하는 모든 비행기를 탑승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짐 수색과 몸 뒤짐을 당해야 한다. 모든 승객들은 잠재적인 테러 용의자, 또는 잠재적인 마약 혐의자 취급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 간 경계선, 즉 국경선이 실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때 나는 여기저기로 던져지는 짐짝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곳저곳으로 마구 휘둘리는 기분이다. 기분 나쁘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이런 것쯤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이게 싫다면 그냥 한국에 편안히 않아서 TV나 시청할 일이다. 요새는 세계여행기를 방영하는 방송국 프로그램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그림은 내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구도가 잘 잡혀 있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잠시 생각이 스쳐간다.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굳이 여행을 해야 하나? 내 돈까지 써 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 로스앤젤레스 공항 모습. 우리는 이곳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사진-임영태]

그런 생각도 잠시, 다음 절차가 바쁘다. 짐을 찾아 출국장으로 나온 다음,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다시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 탈 항공사는 유나이티드이고, 게이트 7번(G7)이다. 그러나 도무지 G7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처지다. 교수님은 여러 번 해외경험이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직접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초보 수준의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짧은 영어로 물어물어 거기를 찾아갔다. 가방을 맨 채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서 이동한다. 다른 이동 수단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 생각을 못한 우리들은 무거운 짐을 끌고 낑낑대며 한참을 헤맸다. 공항 시설이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하는데 너무 불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인천공항과 비교하니 확실히 그랬다. ‘아, 그래서 인천공항이 10년 연속 세계 1위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몰라서 고생한 것이지만 확실히 인천공항이 편리하게 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공항을 민영화하겠다고? 이런, 저절로 욕이 나온다.

한참을 헤맨 끝에 유나이티드 항공사 앞에 도착해 전자티켓을 제시하고 각각 좌석권을 두 장씩 받았다.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멕시코시티까지 가는 비행기 좌석권이다. 짐을 부치고, 검색을 받은 뒤 탑승장 앞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짐을 다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직원이 비행기만 갈아타면 자동으로 짐은 옮겨진다고 확인해 주었다.

내 머릿속 미국 문화의 잔상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저녁 8시 52분 출발이었다. LA공항에 도착한 게 오후 3시 10분이니까 시간은 충분했다.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최소 2시간 이상 시간을 허비했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면세점을 간단히 둘러본 다음 탑승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배가 고팠으므로 뭔가를 좀 먹어야 했다. 햄버거와 음료수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먹어야 한다. 나는 먹는 것을 밝히지는 않지만 먹을 기회가 있으면 그걸 놓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저녁 8시 50분,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창밖으로 LA 시가지를 보려했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9시 50분경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국제선 대합실로 이동했다. G92로 이동하기 위해 한참 동안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선 건물은 LA공항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밤에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사진을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밤 11시 14분이다. 시간 여유는 있었다. 뭘 좀 먹어야 하나? 배도 약간은 출출하다. 그러나 마땅히 먹을 만한 게 없다. 너무 서둘러 오느라고 식사할만한 곳도 지나쳐왔다. 다시 돌아가서 먹자니 그것도 귀찮았다.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면 마실 거라도 주겠지?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탑승하고 보니 정말 물밖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약간 배를 곯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배고프다는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우리들의 상황이.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창가에 앉은 나는 창밖으로 샌프란시스코 밤 풍경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강인지 바다인지 알 수가 없는 암흑이 있고, 그 좌우로 야경이 펼쳐졌다. 저 멀리 다리를 비춰주고 있는 불빛도 보였다. 저게 혹시 금문교는 아닐까?

갑자기 195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대중가요 <샌프란시스코>와 <애리조나 카우보이>가 생각나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왜 뜬금없이 그게 떠올랐을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미국 문화의 잔상들인가? 아니면 한국 현대사에 미친 미국 영향력에 대한 어떤 저항감인가? 아버지 세대의 상흔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애리조나 카우보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어릴 적 숱하게 들었고 따라 불렀던 대중가요다. 지금도 가요무대에서 가끔씩 들을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 읊조려 본다. 쓴 웃음을 짓고 창밖을 감상한다. 그러다 보니 비로소 여행을 온 설레임 같은 게 생긴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부터는 여행을 즐기자.

   
▲ 샌프란시스코 국제선 대합실에서 찍은 공항 풍경. 멕시코시티 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대기. [사진-임영태]

임영태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사)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다.

저서로는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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