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남쪽에서 북측 전문가라 자칭, 타칭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북 역시 당연하게도 엄연한 주권국가이기에, 북의 모든 것에 통달한 전문가는, 심지어 북 내부에서조차 존재하기 힘들다. 기껏해야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세밀한 분야로 나눌 때 전문가란 표현을 그나마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자. 얼마나 될까. 남북문제나 통일문제에 평소 관심이 적었던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 수가 적지 않다. 종편까지 포함한 방송 매체와 언론 매체에 등장해 이른바 북의 행동을 분석하고, 나름의 전망까지 주절거리는 이들이 꽤 많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정말 북 전문가란 표현에 어울리는 이들일까. 과연 그 중 몇이나 북의 실체, 작동원리, 본질에 접근하고 있을까.

여기에서 김진향 카이스트 교수가 총괄 기획해 최근 펴낸 『개성공단 사람들』의 추천사를 쓴 경북대 대학원 철학과 김성룡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북 사회에서 상당한 고위층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길더라도 인용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글이나 책을 본 적이 없다. 제대로가 아니라 목불인견이었다. 왜곡과 오도의 일반화는 물론, 차마 논문이라고 하기에도, 책이라고 하기에도 가당찮은 글들이 버젓이 인쇄되어 공론화되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총체적 무지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전체를 왜곡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북한을 욕하지 않고는 이 사회가 온전히 돌아가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여기에 기막힌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정작 북에서 살다온 사람이 보는 한국사회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북측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한마디 씩 떠들 수 있다. 누구나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북을 비난할 수 있다. 듣다보면 마치 살다온 양반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그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진실에 가까이 있을까.

남측의 시민들은 대부분 북측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말하는 북, 그리고 방송과 언론이 말하는 북을 실체라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이 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먹고 살만한 이들이라도, 재미없는 북 문제를 파고들 생각이 전혀 없다. 그다지 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리하게도 방송과 언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북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데 왜 굳이 수고를 들여 따로 북을 생각하고 바라보려 하겠는가.

때문이다. 북에 대한, 북측 사람들에 대한 허황되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이야기들이 판치는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 엉터리 전문가와 야매 언론인들이 만들어 내는 잔인한 ‘북 판타지’는 분단 극복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지금 우리들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반통일 세력이자 반민족 세력이라 불러 마땅하다.

북에 대한 연구나 전망, 언론보도가 형편없는 수준이 된 것에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작용한다. 먼저 오랫동안 분단되어 있었기에, 우리가 직접 북에 가볼 수 없었다. 그러니 어설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라, 전쟁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비록 특정 장소에 한정되었다 하더라도 북측을 마음대로 다녀올 수 있었던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북측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서로 만나고 접촉해야 온갖 루머와 설이 가라앉는다. 직접 보고 들었는데, 소설을 지어낼 순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북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내고 왜곡하고 뒤틀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숱한 국내 언론이 북에 대한 오보를 양산해왔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독자에게 진정 사과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정정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아니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평양에는 장애인이 거주할 수 없다는 오랜 ‘전설’은 우리 언론이 평양을 직접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고쳐질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북 당국의 조작이자 음모라고 헌신적으로 지금까지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북에 대한 기사나 방송을 하는 언론인 중 무책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때로는 굳이 이런 기자들이, 방송인들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심각하게 느낄 때도 있다. 아무리 부처를 순환해야 하고, 상대방이 정정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의 소설과도 같은 기사를 써댈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적 소양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데스크가 닦달하는 것에 못 이겨 꾸역꾸역 글을 끄적거린다.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달할 수 있음 더욱 좋다. 한심한 수준이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나 지식이 입력되면 결과는 안 봐도 빤하다. 광복 70년, 그 세월 중 우리는 고작 10여 년의 시간 동안만 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렸는지는 아직 온전히 평가할 수 없지만, 적어도 비난 일변도, 조롱 일변도의 이야기들은 덜 생산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용’의 정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자주성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유사 이래 어느 시대에나 어용은 존재했다. 가까운 과거를 생각해봐도, 4대강 사업이 홍수를 예방하고 우리 자연을 더욱 보호하는, 진정한 강 살리기라고 주장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이름 하나 하나까지 다 기억난다.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 하는 권력에 빌붙어, 되도 않는 논리를 들이밀며, 목줄에 묶인 개 마냥 자신의 지식을 파는 이들이 존재한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때에도 정부와 권력의 편에서 감히 시민들을 훈계하려 한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언론인들이 존재했다. 우습고도 기막힌 모습이다. 개가 사람을 훈계하는 꼴이다.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어용은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패거리를 이루어 상이한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 이들을 핍박한다. 그리고 그들은 남북관계를 말해도, 통일 문제를 다뤄도, 신기하게 모든 결론을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에게 빌붙어버리는 요술을 부린다. 남북문제도 미국이, 핵 문제도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도 미국이, 이 땅의 빌어먹을 모든 것이 죄다 미국이나 중국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 이게 현실이다. 쇼와 같은 현실이다.

부패한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진실이 오히려 질식사하곤 한다. 거짓이 화려하고, 진실이 누추한 비정상화가 정상화로 비치게 된다. 현재 남북관계의 오랜 경색국면에 있어, 그 책임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땅의 지식인, 언론인들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더럽고 누추한 것들이 너무나 당당히 떠들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신경숙과 같은 이들이 대세인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 정창현, 『장성택 사건 숨겨진 이야기』, 선인, 2014.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책의 저자는 언론인 출신의 학자이다. 때문에 그의 글에는 기자와 지식인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다. 물론 왜곡이나 거짓을 진실로 치장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도 깜냥도 없다. 그는 다만 객관적으로 북을 바라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분단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통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로, 북의 오늘을 꼼꼼하게 살피고 분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장성택 처형의 수수께끼. 아마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 사건은 진실을 드러낼지 모른다. 하지만 처형 당시나 혹은 지금까지도 남측에는 이를 둘러싼 온갖 소설이 난무한다. 근거도 빈약하고,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말 그대로 버젓이 전파를 타고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전달된다.

반면 북의 근현대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북의 역사를 되짚고 오늘을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서 내일을 전망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나 전망이 물론 100%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틀릴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그의 말과 글에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어용이 아닌, 부지런한 언론인의 피를 가진 학자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처형은 향후 꽤 오랫동안 북에 영향을 끼칠 중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강력하다. 언제나 그래왔듯 저자는 객관적 자료와 오랜 시간 바라본 북의 특성을 바탕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전망한다. 이는 북측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북측에 관련된 기사를 쓰고 있는 언론인들 모두에게 좋은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는 어쩜 외눈박이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에선 의외로 무력하고 또한 무책임하다. 하지만 지금의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조차 당당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진실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이 어용임은, 분명 스스로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모든 직업이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꼴이 될 것이다. 분단이 그 무슨 자랑이 아니라면, 광복 70년이 그 무슨 영광이 아니라면, 남북문제나 통일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리고 남북관계나 북에 대한 기사를 쓰며 생계를 꾸려가는 언론인은 그 무거운 책임과 역할을 항상 느껴야 옳다. 그리고 자신의 글이,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분단된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늘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양심과 책임감이라도 가져야 한다.

알량한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잘난 특종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평화다. 화해다. 그 지겹도록 단단한 분단 구조를 깨부수고 진정한 상생과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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