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IMF의 서슬 퍼런 칼 날 위에서 많은 아버지들이 낙엽처럼 스러져가던 그 때, 나는 입대했다. 대학 2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밴드 생활의 마지막을 불태우겠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무작정 들어간 군대였다. 기울어져 가는 집안에 입 하나 덜겠다는 갸륵한 마음 따위는 물론 전혀 없었던, 그저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 해 논산의 겨울은 얼마나 매서웠나. 찰나에 쏟아지는 온수에 살짝 녹았던 몸은 이내 목욕탕에서 막사로 돌아가는 길, 고래고래 내지르는 군가와 함께 다시금 얼어붙곤 했다. 차가운 논길을 바라보며 무작정 열을 맞춰 행군할 때는, 지나가는 강아지마저 마냥 부러웠던, 역시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논산을 떠난 나는 대전에서 육군정보통신학교에 들어가 무선중계반송을 주특기로 후반기 교육을 받았고, 결국은 다시 서울을 지나 비로소 의정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훈련소 교육을 받고 곧바로 자대배치를 받은 다른 동기들에 비하면 8주라는 귀한 시간을 후반기 교육이란 이름으로, 상대적으로 편하게 보낸 ‘축복 받은’ 케이스였다.

의정부의 자대는 3군 직할 통신여단의 직할 대대였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가 닿을만한 거리에 전문대학이 위치해 있는(그 대학의 여학생들이 그렇게 예쁘다는 이야기가 내내 돌았지만, 당연히 제대하는 그 날까지 그녀들을 볼 기회는 없었다), 결코 외지다고 할 수 없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외박이나 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면 왜 그리 을씨년스러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였어도 ‘사제 바람’과 ‘부대 안 공기’의 온도 차이는 냉정했다.

2001년 2월에 제대했으니, 어느새 14년이 되어간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부대 앞을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아직도 그곳에는 그 시절 나처럼 어리바리하기도 하고, 때론 ‘빡끈’(군기가 바짝 들어갔다는 소리다)하기도 한 병사들이 살고 있을까. 행여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아주 가끔은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쩌다 군대 동기 녀석과 고참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나마 대규모(!)로 만난 것은 그야말로 기억도 나질 않고, 달랑 하나 뿐인 동기 녀석이 가끔씩 업무로 서울에 올 때, 역시 서울과 경기지역에 살고 있는 고참들과 연락해 두서넛이 모이곤 했다.

각자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군에서는 도저히 지금의 직종에서 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이도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그게 긍정적이든 혹은 아니든), 주위 사람들을 안도케 하는 이도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군에 다녀온 이들은 대략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애써 고통스러운 기억,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들을 스스로 삭제하고(절대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이나 에피소드만을 자동 반복 생산하는 부류다. 그들은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강조하고, 강요하고, 강권한다. 때문에 군에 안 간 부류, 못 간 부류, 애써 빠지려 노력하다 실패한 부류들을,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혐오한다.

물론 그 중 제일가는 혐오대상은 당연히 이른 바 ‘빽’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은, 혹은 소위 당나라 부대라 불렸던 ‘편한 부대’로 배치 받는 부류였다. 솔직히 그런 이들을 직접 만날 기회조차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겠지만, 그들은 그런 부류를 정말 헌신적으로 미워했다. 매국노, 쓰레기, 하다못해 빨갱이라는 비난까지 쏟아냈다. 빨갱이라, 그건 좀 심오한 표현이다.

나머지 한 부류는 애써 군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부류다. 가기 싫었던 군대를 어쩔 수 없이 갔고, 일단 왔으니 살아남아야 했기에 때론 누군가를 괴롭혔고, 또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딱 거기까지다.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는 말 따위도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

난 어떤 부류였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느 쪽일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단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갓 제대 후에는 군 생활에 대한 유치한 과장과 무용담이 난무할 때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비로소 다가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대한민국의 모든 악의 근원이 바로 군으로 보였다. 그 어떤 곳보다 가장 먼저 개혁이 필요한 곳, 필요한 집단이 바로 군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물론 우리 군이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태생부터가 도대체 주체적일 수 없고, 자주적일 수 없는 그 뼈아픈 한계가 너무 서글프다. 최근 주한미군이 일으킨 교통사고에 대한 배상을 우리 정부가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 있다. 그런 존재다. 여전히 우리 군이라는 것은.

 

▲ 김종대·임태훈,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 나무와숲, 2014.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깊이 군을 들여다보고 또한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마음이 더 굳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군을 지탱하고 있는 사병들, 초급간부들에 대한 생각이다. 그동안 난 너무 거대담론에만 빠져, 그리고 건방지게도 군의 진정한 주인인 사병과 초급간부 그리고 우리 시민들을 뺀 채, 군 문제를 비판하고 비난해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김종대 편집장은(최근 그가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펴내왔던 국방전문지 <디펜스21 플러스>가 폐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땅이 이런 소중한 잡지 하나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천박하고 척박해졌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슬픔을 금할 수 없다. 감히 내 정신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민족21>의 오랜 휴간이 새삼 더 아프기도 하다.) 내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군사전문가이자, 또한 평화운동가이다.

그리고 임태훈 소장은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며, 아울러 타인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이 땅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이다. 이들이 말하는 우리 군의 이야기, 우리 장병들의 이야기, 초급간부들의 이야기는 진정 대한민국 군대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케 한다.

우리 군은 지금도 전시작전권이 없다. 매년 국가예산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비중을 국방비로 사용하면서도, 정작 사병들의 시급은 500원에 불과하다. 잊을 만하면 끔찍한 사건과 사고가 군대 내에서 벌어지고, 지금도 한 해에 100여 명이 넘는 사병들이 스스로 생명을 버린다. 매년 100여 명이 넘는 사병들이 자살하는 군대, 마치 내전과도 같은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시작된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는 나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다. 처음엔 나 역시 신기하기도 하고, ‘이젠 군대마저 예능으로 소비하는 구나’라는 애매한 감정이 들었다. 몇 편을 끝까지 시청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군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그 불순하고도 나약해빠진 메시지에 혐오감이 들었다. 세상에 억지로 애국심을 주입하여 성공한 나라가 얼마나 존재할까? 북이 그렇지 않느냐고?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평가할 수 없다. 그것 역시 건방진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 군대의 구성원인 사병들은 세계 최고라 할 정도로 우수한 인재들이다. 반면 우리 군은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전체적으로 부패했다. 이 기막힌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군은 감히 우리가 들여다볼 수도, 봐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는 그 오래된 환상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세금으로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로 운영되는 군을 정작 우리가 들여다보고 감시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우리는 유승준의 해프닝에 분노하면서도, 정치가를 비롯한 고위층 자제들의 군복무 면제에 치를 떨면서도, 정작 우리 사병들의 억울함 죽음엔 무관심하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에 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국익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드 도입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김진명이라도 떠올리면 다행일까.

무엇보다 우리는 너무나 긴 시간동안 우리 군의 전시작전권이 우리에게 없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오히려 예비역 장성들이란 이들이 전시작전권의 이양을 극렬히 반대하는 이 기막힘에도 눈을 감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전히 지겹게도 북이 우리의 위협대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직무유기로 모조리 감옥엘 가야 한다. 그게 상식에 맞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주권을 타국에 맡아달라고 간청하는 모습, 그런 비자주적인 비주체적인 국가의 군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 죽어가는, 그 사이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 자식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 역시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한가. 그게 맞는가.

책을 읽는 내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군의 주체이자 모든 것인 우리 장병들의 생명이 너무도 하찮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살아있는 권력들에 의해 묻혀간다는 점이었다. 내 상식엔 군대에서 스스로 삶을 버린 모든 장병들이, 구타나 가혹행위 등 지독한 부조리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군인들이 전부 다 국가유공자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다 자살한 여군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한 장병들 모두 피해자이자 명예 회복의 대상이다.

안보와 애국심을 그렇게 강조하는 보수 정권 시기에 자살한 장병들의 수가 더 많았다는 사실, 그렇게 안보 무능이라 비난받던 진보 성향의 정권 시기엔 오히려 자살과 군대 내 사고발생률이 줄었다는 사실은 무얼 말해주는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철책선을 지키며, 그 사이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 받고 있는 장병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최근 보수주의, 보수주의자에 대한 고민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생각에 보수는 값비싼 무기를 대책 없이 사들이기보다 우리 장병들의 복지와 인권에 더 치중하는 것이다. 값싼 애국심을 동원하거나, 군을 미화하는 예능프로그램 따위를 지원하며, 예전 같았으면 군사기밀로 분류되었을 것들을 죄다 보여주기 보다는, 진정한 국민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먼저 노력하는 것이다. 죽은 군인들을 우상화하기 전에 살아있는 장병들의 삶을 먼저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입으로 애국을 떠들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정치인, 권력집단을 부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유 없이 군 복무를 면제받은, 그리고 그 자식들도 면제받은 그런 정치인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우리의 주권을 노예처럼 타국에 안기기보다는, 당당히 받아 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더럽고 치졸한 사대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자주국방의 틀을 세워가는 것이 진정 보수주의자가 할 일이다.

온갖 부정부패와 사건 사고에 더럽혀지면서도, 끝까지 오만하고 이기적인 우리 군의 책임자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어설픈 애국심팔이를 하며 짓까부는 정치인들이 먼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군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이들을 모조리 한 통속으로 몰아 저열하게 비난하는 어설픈 마초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자식을 군에 보낸, 또 언젠가 보내야 할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읽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겨운 얼뜨기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는 전쟁을 잠시 멈춘 채 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 군의 개혁은 절실히 필요하다. 진정한 강군, 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안보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보수 정권이다. 보수답게 굴자.

슬프고 또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이 적잖이 담겨 있지만,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아울러 두 저자의 변치 않는 건승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모두들 다치지 말고 상처주지 말고 무사히 제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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