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6.15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15년이 되는 날, 북한은 정부성명을 통해 5개항의 대남 정책의 기조를 분명히 했다. 특히 “북남사이에 신뢰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당국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리유가 없다”고 남북대화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7월 7일에도 정부성명을 발표해 연방연합제 방식의 통일방안을 구체화하자면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리유가 없다”고 정상회담 의사까지 천명했다.

북측은 이번 정부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위임에 따라 엄중한 위기에 처한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려는 의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립장을 천명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당과 최고지도자의 ‘위임’을 받은 공화국 정부가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를 수습하고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만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해 7월 정부성명의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일이자 10.4선언 발표일인 10월 4일 북측 고위인사들이 방남했고, 올해 신년사의 연장선상에서 얼어붙은 당국간 관계에도 불구하고 6.15공동행사 실무접촉 등이 진행됐다. 따라서 6.15공동행사가 결국 무산된 지금을 ‘엄중한 위기에 처한’ 것으로 파악하고 다시 한번 ‘전환적 국면’을 주도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실제로 북측은 정부성명을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지난달 11일 북측 국경지역에 불법입국한 한국민 2명을 17일 오전에 돌려보내겠다고 적십자사를 통해 통보해 왔다. 지난 3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국정원 간첩’ 2명을 기자회견장에 내세워 중국 단둥지역에서 운영되는 국정원 거점이 30개 정도라고 밝히는 등 사실상 남북 정보당국 간의 ‘정보 전쟁’을 공공연히 선포했던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

그러나 정부는 즉각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은 부당한 전제 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당국간 대화의 장에 나오는 한편, 남북간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교류에도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물론 북측의 정부성명에서도 한미합동군사연습 영구 중지나 ‘국제공조 놀음’ 중지 등 남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세우기도 했고, 법.제도적 장치 철폐 등 기존 입장만 반복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정부성명과는 달리 파괴력 있는 구체적 제안이 포함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이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남북관계 경색 원인을 남측에 전가하려는 것으로 파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부성명이라는 최상급의 형식을 취해 제시한 조건부 대화제의를 통일부 대변인 성명으로 간단히 일축하는 모양새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좀더 차분히 북측의 의도를 살피고 적절한 격을 갖춰 입장을 내놓았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또한 최소한 ‘일단 대화와 협상 의지를 천명한 것을 환영하고 우리 국민 송환은 당연한 일이지만 인도적 조처’라는 평가 한자락 쯤 깔아두는 여유가 없는 점도 아쉽다. 아니, 우리가 좀더 주도적이고 공세적으로 대화제의를 할 수는 없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수없이 밝혀왔고, 지난해부터는 ‘통일 대박’이라는 신조어까지 설파했지만 임기가 절반이나 지난 지금, 실상 남북관계에서의 진전은 전무한 형편이다. 북측도 문제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대응방식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통일부 대변인 성명으로 “남북간 합의의 구체적 이행 문제를 포함하여, 남북간 상호 관심 사안을 폭넓게 협의.해결해 나가자는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고 빤한 말만 되풀이하기 보다는 북측도 호응해 나설 수 있는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내걸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 같은 우리의 관심사를 해결하자고 역제의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 대변인 성명 한줄한줄까지도 청와대의 재가가 있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6.15 15주년 기념일에 북측의 정부성명에 맞대응 형식으로 내놓은 통일부 대변인 성명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정부의 대응이 이번 성명 하나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후 정부의 적절한 추가 대응을 주목하고자 한다.

제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은 없다. 더구나 협상 상대가 있는 현실 국제정치에서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상을 걷어치우는 것보다 가능한 상대의 입맛에도 맞고 내 입맛에도 맞는 공동의 식탁을 마련하는 것이 진짜 실력이자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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