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이후 석 달 넘게 진행되던 개성공단 위기가 지난 달 ‘합의서 문구 타결’로 미봉된 가운데 문제의 중심에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정기섭 회장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이런 엉거주춤한 상태가 오래갈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임금 때문에 개성공단이 닫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섭 회장은 이날 유창근·신한용 부회장, 김학권 고문 등 협회 임원들과 함께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성공단 임금인상과 관련해 진행된 그간의 상황을 비교적 자유롭게 털어놓았다.

정 회장은 먼저 지난 달 22일 개성공단을 관할하는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이 ‘기존 기준에 따른 노임 지급과 차후 남북간 협의 결과에 따른 임금 차액 및 연체료 지급’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 문구를 수용한 것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을 가지고 부딪친 상황에서 북이 물러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포기할 수 있는 쪽이 결국 이기게 되어 있는데, 북측은 먼저 포기했다는 책임을 감수하면서 버릴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하반기 이후 개성공단은 남측 일각에서 언급하는 달러박스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북측의 입장에서는 상호 합의가 거의 지켜지지 않아 불만이 팽배한 곳이 개성공단이었다.

다만, 북측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사업'이기 때문에 “북측에서 임금문제 때문에 개성공단을 포기하겠다는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단의 합의운영을 강조하던 남측에 맞서 개성공단 노동규정 개정은 국가 주권사항이라며 북이 빼들었던 원칙을 쉽게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그는 내다보았다.

앞으로 남은 협의 안건 중 핵심 쟁점인 임금인상 ‘5% 상한선’과 관련해서는 계속 이 기준을 고집하면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한쪽의 양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북측은 세무세칙을 바꾸면서 벌금을 추징세액의 200배로 정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어서 자칫 5% 상한선 규정이 무너지는 합의를 할 경우 다른 분야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된다”면서도 “지구상에 최저임금을 정하면서 5% 상한선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결국 기업 측에서도 5% 상한선을 초과하는 것은 수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서도 그 부분만큼은 융통성 있게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유창근 부회장은 “정부는 임금인상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제도개선에 개입한 것이며, 기업의 임금인상은 생산성향상 등과 직결되는 사안으로서 완전히 별개의 두 문제가 뒤섞이면서 쟁점이 돼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학권 고문은 임금인상의 폭은 경영차원에서는 생산성과 연계해 고민할 수 있는 문제라며, 합의 원칙을 지키라는 남측 정부와 주권사항이라는 북측 당국이 정치적 쟁점으로 다투는 개성공단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입장은 상당한 고충이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고문도 정상적인 경영환경이 보장된다면 제도보완과 생산성 향상을 연계해 임금인상의 유연성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정 회장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지난 2013년 공단 가동중단 사태 당시 겪었던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일종의 ‘보증보험’처럼 활용되는 ‘남북경협보험’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5.24대북제재조치에 대해서도 “정부 정책의 변경으로 인해 민간사업자가 손해를 볼 경우, 기업의 투자 손실에 대해 당연히 정부가 책임지고 응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꼭집어 지적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