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기억 몇 가지. 내가 태어나기 3년 전 현 대통령의 모친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2년 후 현 대통령의 부친이 부하의 총탄에 의해 절명했다. 그리고 이듬 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난 어렸고, 순수했다. 이런, 결국 나이를 자백해버렸다.

나의 유년시절은 전두환 대통령의 시대였다. 아주 어렸으니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하지만 마치 공기와도 같았던, 시대의 일정한 느낌, 분위기는 어렴풋 기억난다. 물론 노태우의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 역시.

▲ 최규석 글·그림, 『100℃ -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창비, 2009년 6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리고 1987년 6월. 11번째 생일을 맞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의 함성. 당시 창신동에 살고 있었던 나에게,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또한 강렬하다.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조금 들어와야 닿을 수 있었던 우리 집은, 197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이었는데, 전경에게 쫓겨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온 시위대들은 담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와 이집 저집 뛰어넘어갔다.

“아이고, 학생들 위험해! 내려와!”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난 그때 ‘음, 기왓장 다 부서지겠군. 아버지가 아시면 난리 나겠는걸. 그런데 설마 나보고 지붕 위에 올라가 같이 보수 공사를 진행하자고 권유 하시는 건 아니겠지?’ 따위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워낙 순수해요. 제가.

또 하나의 기억. 당시 친했던 학교 친구의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다방이 있었다. 기억하시는지? 동전을 넣어 오늘의 운세를 뽑고, 홀 가운데에는 초대형 수족관에 금붕어들이 노닐며, 담배 연기 자욱한 틈새 사이로 예쁜 누님들이 달달한 커피를 따라주던 곳. 현관문을 들어가 카운터에서 대각선으로 오른 쪽 상단에(!) 컬러 TV가 장착되어 있어 특히 그 주변 테이블에 손님이 많았던, 아! 내 어린 추억의 공간이여!

물론 오해마시라. 나의 기억으로 그곳은 퇴폐, 불법 뭐 이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오히려 그 어떤 반란과 혁명의 기운이 도사리던 벙커 같았다고나 할까! 어린 기억에도 그곳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어떤 일탈과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아, 글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주산학원에 갔다가 다방엘 갔다.(단골 아닙니다요!) 친구 녀석을 찾으러 간 것인데, 사실 그곳에 가면 친구 어머님 혹은 함께 일하시는 아주머님이 맛난 요구르트를 주셨기 때문에, 그거 얻어먹는 맛도 큰 즐거움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녀석 학원 갔다 왔어요? 아직이요? 그럼 요구르트 하나 하면서 좀 기다려 볼까요?”(이랬다간 맞았겠지)

그날도 맛난 요구르트를 빨면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과 아주머님이 TV를 보며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시는 게 들렸다. 마침 TV에는 머리가 벗겨진 장군에서 머리가 살짝 더 빛나는 대통령이 되신 분이 무언가 근엄하게 말씀하고 계시었다. 먼 내용인지는 다행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함께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씀이 갑자기 귀에 확 빨려 들어왔다.
“아,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안 그래?”
저 대머리 아저씨를 두고 하는 말씀인가? 순간 난, 당최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줌마, 전(全) 씨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죠?”

난 전두환이란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당시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어떤 사람이어야만 될 수 있는 자리였는지도 몰랐다. 난 그냥 11살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그런데, 아주머니께서는(물론 친구 어머님도 함께) 날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어머, 너 어떻게 알았니? 꺄르르르~!!”
대략 장면이 상상되시는가. 내 기억으로 그 분은 전 씨가 아니었다. 즉 내가 던진 농담을 다시 농담으로 되돌려주신 것이다. 그 엄중했던 시대에, 11살짜리 아이는 그렇게 자라났다. 훗날 멋진(!) 어른으로!

이제 곧 마흔이라는 나이에 접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히 싸워온 이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느껴왔다고, 감히 자신하지 못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웠던 이들. 그리고 숨져간 이들. 그들을 호명하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부끄럽고, 죄스러운 행위일 수밖에 없다.

10년 단위로 나름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는 느낌이다. 87년 6월 항쟁, 97년엔 IMF의 파고에 휩쓸려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2007년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7년에는 다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아, 새로울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

어쩜, 우린 여전히 1987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투표를 통한 대통령 선출이라는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그 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자면 녹록치 않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 내에서는 민주주의의 퇴보가 선명하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눈을 감았고, 남북관계는 파탄이 났으며,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도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한낱 정권 연장을 위한 레토릭으로 전락했고, 국민을 쥐어짜는 정부의 모습에 어처구니만 맥없이 찾게 된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로 인해 전 국민이 할 말을, 갈 길을 잃었을 때다. 그리고 용산참사,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명박산성 앞에서, 치가 떨리는 뻔뻔함 앞에서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 나라를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논리가 살천스레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 민주주의를 다시 찾기 위해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1987년 6월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진실한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소환되어야 할 기억이다. 단지 역사 속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전히 현재의 모든 이들을 위한 살아 숨 쉬는 역사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행사장 귀빈석에 앉은 분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 될까봐 작품을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은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만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면서,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과 유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늘의 퇴보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책임도 물론 적지 않다. 하지만 당연히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다. 5년 만에 국가를 거덜 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2년 만에 자화자찬에, 왜곡과 책임 떠넘기기로 점철된 회고록을 펴냈다. 또한 머릿속에 ‘유신’이 살아 숨 쉬는 현 대통령은 독재 체제를 지켜내려 했던 이를 대법관 후보로, 군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를 총리 후보로, 지역갈등 조장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를 비서실장으로 두었고, 두려 했고, 두었다 본인들이 욕먹고 물러났다.(다음 총리 후보는 이젠 정말 발표를 듣는 것마저 두렵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누더기가 되고 있다. 난 과연 거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던가. 애써 외면하고, 입을 다물고, 눈을 감으며 그렇게 비겁하게 내 한 몸의 안위를 챙기지는 않았던가. 감히 먼저 간 이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해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부끄러움이 치욕스럽다.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가로 활약했던 피에르 베르니오는 이렇게 말했다는데 말이다.

“독재자가 커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의 무릎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선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 위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난 조심스레, 그리고 확고히 믿는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끊는다는 것을,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을. 국민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이를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했던 모든 권력들이 끝내 스러져 갔음을. 난 오늘도 믿는다. 때문에 비관은 없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란 것, 모두들 아시죠?

(아, 한 가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왜 너는 무슨 배짱으로 신간이 아닌 구간을 들고 나와 서평이랍시고 떠드느냐.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아, 그러니 제목이 ‘간서치의 둔한 서평’이지요. 신간 서평은 주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 격월간지 등등등에서 신속정확하게 보실 수 있답니다! 인터넷 서점은 기본이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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