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이 일어난 지 55주년이 됩니다. 1960년 4.19혁명은 부정선거에 대한 반대에서 촉발됐지만 점차 민주주의 획득과 민족통일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승만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 문제, 분단 극복을 향한 통일 문제 그리고 외세에 대한 자주화 문제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해인 1961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부세력이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통일은커녕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음에 따라 4.19혁명의 뜻이 온전히 꺾입니다. 그래서 4.19를 두고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디에나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는가 봅니다. 4.19혁명부상자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등 4.19혁명 관련단체들은 대부분이 체제내화 됐는데,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4.19혁명의 뜻을 기리고 이루려는 단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월혁명회입니다.

이 사월혁명회는 4.19혁명의 뜻을 역대 어느 정권도 참되게 이어받거나 이루려하지 않았기에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길 거부합니다. 철저히 재야에 남아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4.19에 즈음해 행사를 하지만 4.19혁명은 미완이기에 기념할 수 없다며 ‘기념행사’가 아닌 그냥 ‘행사’를 치릅니다.

매년 4.19가 되면 이 사월혁명회가 중심이 되어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를 진행합니다. 올해도 1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진보연대 등과 함께 ‘합동참배’를 진행하던 중 4.19혁명 관련 단체 일부 회원들의 난입과 폭언으로 행사가 파행을 겪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4.19혁명 관련 단체 일부 회원들은 합동참배식 진행 측의 순서지와 마이크를 잡아챘으며, 사회자를 끌어내리고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4월 혁명의 의미가 뭔지 아느냐. 왜 여기서 독재를 운운하느냐. 용공세력은 물러가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음주 상태이거나 위령비 앞에서 흡연을 해 국립4.19민주묘지 관계자들로부터 저지를 받았다고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날 행사를 준비한 사월혁명회와 이 행사를 방해한 이들 4.19혁명 관련 단체들과의 차이를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분명한 건 단체 이름에 ‘4.19혁명’이나 ‘사월혁명’ 등을 사용하는데 모두 같거나 비슷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4.19혁명’의 이름을 함께 쓰는 단체 행사에 훼방을 놓는 것 자체가 4.19혁명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고, 음주 상태에서 위령비 앞에서 흡연을 하는 건 4월 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짓입니다. 4.19혁명이 지난지 어언 55주년이 됐건만 아직 그 옥석(玉石)이 가려지지 않은 것일까요? 그래서 일찍이 이를 간파한 시인 신동엽은 당시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고 준엄히 꾸짖었나 봅니다.

아직도 껍데기가 남아 4.19혁명을 능멸하고 있는 현실이 4.19혁명의 뜻인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민족통일의 앞길이 막히고 있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추가-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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