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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가 꿈꾸던 자주평화통일 위해 노력하겠다"<포토뉴스> 인혁열사 40주기 ‘우홍선·김용원 선생 묘역 참배’
류경완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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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9  16: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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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열사 '우홍선 선생 묘역 참배' 행사가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 낙원공원묘지에서 2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24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으로 옮겨 열린 인혁열사 ‘김용원 선생 묘역 참배’.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1975년 4월 9일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 당한 ‘우홍선ㆍ김용원 선생 묘역 참배’ 행사가 사법살인 40주기를 앞두고 지난 24일 경기도 파주와 마석에서 연이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고인의 유족과 동지들, 4.9통일평화재단,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 추모연대, 사월혁명회, 고양시민회와 서울대민주동문회 회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유족 참배로 시작되어 묵상과 추모 노래, 열사 약력 소개 등이 이어졌으며, 추도사와 ‘우리의 소원’ 결의 노래, 참배객들의 분향재배로 마무리되었다.

   
▲ 우홍선 선생의 부인 강순희 여사가 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유족과 옛 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분향재배하는 김달수, 김영옥, 권오헌 선생 등 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우홍선 열사 약력>

1930년 3월 6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출생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교생으로 학도의용군 참전
1958년 육군 대위 예편
1960년 4.19혁명 이후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을 맡아 민자통에서 활동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수배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수사 받음
1974년 5월 2일 2차 골든스템프사 상무이사로 재직 중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1975년 4월 9일 사형 집행(경기 파주시 낙원공원묘지에 안장)
2007년 1월 23일 산화하신 지 32년 만에 무죄판결 받음

   
▲ 24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 김용원 선생 묘역에서 참배객들이 민족민주열사와 옥중 양심수를 위한 묵상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첫 잔을 올리는 김용원 선생의 부인 류승옥 여사.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인혁8열사들과 생사가 엇갈린 뒤 치욕적인 삶을 이어왔습니다. 오늘 선생의 대학 후배들이 그 뜻을 잊지 않고 찾아줘 너무 고맙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며 감사 인사를 하는 옛 동지 김달수 선생.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김용원 열사 약력>

1935년 11월 10일 경남 함안 군북면 수곡리 출생, 이후 부산고교에 진학
1956년 검정고시에 전국수석으로 합격,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
1960년 4.19혁명 시기 서울대 재학 중 서울대민족통일연맹에 참여.
1961년 5.16쿠데타 세력에 연행되어 조사 받음
1964년 동양공고 재직 시절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조사 받음
1974년 4월 18일 경기여고에 재직 중 2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1975년 4월 9일 사형 집행(경남 함안 선산에 안장되었다가 2012년 5월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장)
2007년 1월 23일 산화하신 지 32년 만에 무죄판결 받음

   
▲ 작년 김용원 선생의 모교인 서울대 교정에 ‘민족의 나무’ 기념목 식수, 제1회 34위열사합동추모제 개최에 이어 이날 처음으로 묘역을 참배한 서울대민주동문회 회장단.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추도사를 하는 정병문 서울대민동 공동회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이날 추도사에서 정병문 서울대민동 공동회장은 “제가 대학 3학년이던 1975년 4월 9일 인혁8열사에 대한 사형 비보가 전해졌고, 이틀 뒤 김상진 열사가 농대 시국성토대회에서 할복했습니다. 다시 이틀 뒤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 22일 열린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서 연행된 학생 230명은 바로 그 날 저녁 학적에서 제명되었습니다”라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박정희의 딸에 의해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열사가 꿈꾸던 민주주의와 민초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나가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 우홍원(왼쪽), 김용원 선생 초상.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한편, 4.9통일평화재단은 오는 4월 9일 오후 6시 서울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4.9통일열사 40주기 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며, 9일 오전 대구현대공원에서는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주최로 ‘40주기 묘역 참배와 추모 행사’를 갖는다.

또,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4월 25~26일 경남 의령의 이수병 선생 묘소 참배를 진행한다.

 
<인혁당 사건이란? >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은 1974년 4월 유신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하여 법원이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사형이 선고된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고,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밝혔고, 이를 근거로 유족들이 낸 재심청구소송에서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역시 자체 조사를 통해,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자의적 요구에 의해 미리 수사방향이 결정돼 집행된 것이라고 2005년 12월 발표했다. 2차 인혁당 사건의 중심이었던 ‘인혁당재건위’는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1월 23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수사당국의 가혹한 고문에 의해 조작됐고 이 사건 관련자들의 행위가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민주화운동이라고 판단돼 관련자 1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참조 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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