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식당을 개업하거나 전시 열림식이 있을 때 문 입구를 장식한 축하화환을 본 적이 있다. 나무로 된 받침대에 축하 글귀와 함께 하객의 이름이 들어가 있고 그 위로 여러 종류의 화려한 꽃들이 둥근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실 나는 이렇게 화려한 화환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시 때에도 화분이나 꽃다발 따위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한다. 특히 화환은 왠지 허영처럼 느껴지고 치우는 데도 여간 번거롭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현금을 부조하는 것이 좋고, 이것도 부담스럽다면 쌀이나 라면을 선물하기를 바란다.

▲ 박수정/화원도1/디지털회화/2015.
괴석을 중심으로 복숭아 열매와 꽃, 포도, 석류를 둥글게 배치하여 표현한 그림이다.
복숭아는 풍요로운 이상세계를 뜻하고 포도와 석류는 생명의 확산을 상징한다. 같은 사물을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은 그 의미를 증폭시키기 위함이다. 동시에 높은 장식성을 얻는다. [자료사진 - 심규섭]

아무튼 이렇게 화려한 화환은 분명 우리의 전통문화는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꽃을 꺾어 장식하거나 혹은 화병에 꽂는 문화는 없었다. 꽃이나 꽃나무 가지를 꺾은 것을 절지(折枝)라고 하는데 여러 귀한 사물과 함께 그린 것을 [기명절지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그림도 일본이나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조선 말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꽃을 둥글게 장식하는 문화는 유럽의 기독교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사람은 불교문화라고 주장하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화환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유행한 시기는 대략 100여년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화환의 바탕에 야자수 모양의 이파리가 있어 검색해 보았더니 종려나무 가지라고 한다. 종려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중국 남부지역이나 일본이 원산지라고 한다. 하지만 종려나무가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종려나무와 가장 비슷한 나무에는 파초가 있다. 바나나 과에 속하는 파초는 선비의 지조나 절개, 혹은 풍류의 상징이다. 그러나 종려나무 가지의 뾰족한 모양이 혹시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할거라는 엉터리 상상은 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물에 상징이 붙기 위해서는 생태적 특징을 넘어 철학적 가치와 결합되어야 하는데 종려나무에서는 그 어떤 인문학적 사연이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화원도(花圓圖)는 얼핏 화환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환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우리그림을 차용하여 변주, 창작한 것이다.
화원도에 영향을 준 우리그림에는 [석모란도], [사계절 꽃그림], [화조도] 따위이다. 괴석을 중심으로 여러 꽃이나 새, 나비를 표현한 그림은 흔하다. 특히 매화나 복숭아나무 따위의 꽃나무를 그릴 때는 으레 괴석을 함께 표현했다. 매화와 함께 표현되는 괴석은 분명 태호석(太湖石)이다. 태호석은 풍파에 구멍이 숭숭 뚫려 못 생긴 돌이다. 이런 못난 돌의 모습이 어려움을 이기는 선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자발적 청빈’ 혹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다. 괴석을 바닥에 놓고 매화나무를 그리면 그 상징적 의미가 증폭됨과 동시에 조형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풍요로운 이상세계를 뜻하는 복숭아나무를 그릴 때도 적용된다.
특히 [석모란도]는 괴석에 풍요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그린 것인데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통제된 풍요를 뜻한다. 물론 통제된 풍요는 공동체의 풍요이다.
[석모란도]와 같이 괴석이 있는 그림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태적 상징을 넘어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화나 복숭아나무, 모란은 바위틈에서 자라지 않는다. 바위틈에서 자라지 않는 식물을 억지로 바위에서 자라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화원도는 모방과 융합이라는 창조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켜 창작한 그림이다.
우리그림의 여러 요소를 발굴하고 한 곳에 모아 비빔밥처럼 버무렸다. 그래서 새롭게 창작한 그림임에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조형적으로 보자면, 일단 괴석은 든든한 중심 역할을 한다. 수많은 꽃이 표현되어 있어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커다랗고 확고한 괴석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괴석을 중심으로 제일 안쪽에 복숭아열매, 중간에는 포도, 밖에는 석류가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세 종류의 열매를 3단으로 표현한 것이 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조형적으로 3단이 가장 안정적인 표현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숭아, 포도, 석류라는 세 가지 열매의 관련성도 없다.
각각의 상징은 독립적이다. 복숭아는 풍요로운 이상세계를 뜻하고, 포도와 석류는 생명의 확장이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민화에서는 장수, 부귀, 다산, 액막이 따위로 해석할 것이다.
사물의 선택과 결합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다. 확대원근법의 조형원리에 따라 꽃과 이파리, 열매를 함께 그려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더했다. 또한 이런 과실수는 함께 자라지 않는다. 더구나 복숭아나무 위에 포도나무가, 그 위로 석류가 자라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참고로 각 나무들은 7~10월 사이에 열매를 맺는데 한 두 달의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의 특징은 각 열매를 둥글게 배치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세로나 가로로 그려도 될 그림을 굳이 원형으로 표현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풍성함이다.
원형의 구도는 가로나 세로구도가 가지는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니까 가로세로를 합친 구도이다. 이렇게 가로와 세로의 요소를 한 화면에 구현할 수 있는 것은 확대원근법이라는 조형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원형구도를 사용하면 많은 사물을 넣어 표현할 수 있다. 이 그림에는 20여개의 복숭아, 9송이의 포도, 15개의 석류와 함께 수많은 이파리와 꽃이 표현되어 있다. 이 정도의 사물을 세로나 가로로 그리면 너무 긴 그림이 되어 조형성이 흐트러져 버린다.
또한 원형구도를 사용하면 각각의 열매는 괴석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그림에서 반복성은 시각적 중독을 일으켜 풍성함과 동시에 화려한 느낌을 준다.

▲ 박수정/화원도2/디지털회화/2015.
이 그림은 국화와 사과를 중심으로 그렸다. 국화는 은일을 뜻하는 군자의 꽃이다. 그래서 괴석과의 결합은 자연스럽다. 복숭아가 우리민족을 대표한다면 사과는 서양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서양문화는 사과로 시작해 사과를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여신의 황금사과, 월리암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심지어는 미국의 세계적 IT회사인 애플도 사과가 상표이자 회사이름이다. 사과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된 시기는 대략 20세기 초반이다. 사과 주변의 꽃은 당연히 사과꽃이다. 아무튼 사과는 특별한 상징이 없다. 그럼에도 사과를 화원도에 표현한 것은 붉고 맛있으며 일상적인 열매라는 현대성 때문이다. 특히 표면이 매끄럽고 붉은 색을 띠는 사과의 생태적 특징 때문에 제사상에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을 것이다. 사과는 우리문화와 서구문화가 결합한 상징물일 수도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림의 제목이 화원도이다. 더불어 화원도는 그림의 제목이자 분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괴석을 중심으로 원형구도를 사용하여 꽃이나 열매 따위를 그린 그림을 모두 화원도라는 명칭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물론 꽃이나 열매 위에 나비와 벌, 혹은 새가 들어가도 화원도가 될 것이다.
화원도라는 이름이 애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형식의 그림에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화환도(花環圖)라는 명칭도 생각했지만 축하화환과 차별되고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에 화원도로 정했다.
우리그림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과거의 빛나는 전통을 모방하여 현대의 정서나 흐름에 맞게 융합하는 창조가 필요하다.
화원도는 이러한 우리그림의 발전에 작은 시금석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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