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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 갑질 권하는 사회에 던지는 을의 목소리 영화 이야기<관람기> 이미혜의 영화 이야기
이미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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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5: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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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Daum영화]

추운 겨울날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하필이면 토요일, 늦은 밤이었다. 전전긍긍하며 한밤중에 수리 접수를 하니 일요일 아침 일찍 수리기사한테 전화가 왔다. 얼마나 미안하고 또 고마운 일인가.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수리가 끝나고 받은 영수증에 이런 문구가 씌어 있다. “감사합니다. 고객은 우리의 은인.”

이게 무슨 소리인가? 휴일에 서비스를 요청한 나는 당당한 은인이 되고, 한겨울에 고장 난 보일러로 겪을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달려온 수리기사는 오히려 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해야 한다니? 수요와 공급은 상호 필요에서 결합하는 것이다. 보일러를 판매한 회사가 수익을 얻는 만큼 나 역시 보일러 덕분에 따뜻하고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고장 난 보일러 덕에 수리기사는 직업을 얻게 되었겠지만, 보일러가 고장 나면 아쉬운 건 나다. “제가 더 감사하죠, 수리기사님!”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그러므로 모든 노동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값하는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의 거래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비록 실질적으로는 노동이 자본의 예속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법제는 노동력을 상품화시키는 대신 노예나 머슴 같은 인격적 지배로부터는 해방시켰다. 노동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이다. ‘갑’과 ‘을’이라는 표현은 이런 계약 관계에서 사용하는 편의상 호칭일 뿐 상하 관계나 주종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영어에는 ‘갑을 관계’는 있지만 갑을 관계에서 파생된 ‘갑질하다’에 상응하는 표현은 없다.

그런데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사용하던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식 표현은 “The customer is always right.”이다. 중국어에도 유사한 표현이 있는데, “顾客至上(손님이 첫째[우선]이다.)”이라는 말이다. 영어나 중국어 표현은 손님을 제일로 중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 그들에게 봉건적 전제 군주의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비유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이 전근대적 사고가 오늘날 서비스업을 넘어 전방위적 위세를 떨치며 우리 사회의 모든 경제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손님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는 ‘갑’과 ‘을’로 나누어진다. ‘갑’이 왕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현실 속에서 노동은 언제나 ‘을’로 취급된다. 쳐다보는 게 기분 나쁘다고 아버지뻘 되는 자신의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한 20대 청년은 자신을 ‘갑’으로 여겼을 것이다. 비행기 승무원과 사무장을 수많은 탑승객들 앞에서 무릎 꿇리고 폭언을 퍼부은 항공사의 젊은 부사장도 자신을 ‘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카트>에서 대형 마트인 ‘더마트’ 계산원들은 아예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고 교육받는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도 ‘을’이고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마트의 고객들에게도 ‘을’이다. 대형마트 점장은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라고 전근대적 ‘갑’ 노릇을 당연시하고, 어디 가서 ‘갑’ 노릇 해볼 기회라곤 별로 없었을 것 같은 마트 고객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계산원을 보란 듯이 무릎 꿇리고 ‘갑’의 위세를 과시한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는 ‘갑’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한국 상업 영화 최초로 ‘을’ 중의 ‘을’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오늘 나는 해고되었다.”라는 영화의 카피처럼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을 앞둔 때였다. 계약 기간도 채 끝나지 않았지만 해고는 강행되었고 이랜드 그룹 측은 그들의 자리를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대부분 여성이었던 해고 노동자들은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 싸움이 512일간이나 이어지게 될 줄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했다.

싸움의 파장은 컸다. 파리 목숨보다 못한 비정규직의 고용 불평등 문제와,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기업의 편법과 횡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607만 7000명, 전체 노동자의 32.4%를 차지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추산으로는 더 심각하여 852만 명, 전체 임금 노동자의 45.2%가 비정규직이다. 현실은 갈수록 더 많은 ‘더마트’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고, 정확한 국제 통계가 가능한 임시직 비율은 OECD 국가 중 4위이다. 임시직 비율이 회원국 평균은 12.8%라니 다른 나라도 다 우리처럼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004년 정규직의 65.0% 수준이었던 것이 계속 격차가 벌어져 2011년에는 56.4%가 되었고, 지난해에는 55.8% 수준밖에 안 된다. 300인 이상 기업으로 한정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는 2010년 기준으로도 4.2배에 달한다. OECD가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성장을 방해한다.”고 지적했을 정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커서 2004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59.8%였던 것이 2010년에는 56.7%로 떨어졌다. 중소기업 정규직은 대기업의 비정규직보다도 임금이 적어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6.1, 중소기업 정규직은 59.4,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7을 받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지난 10여 년 사이에 가속화되어 왔다.

임금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OECD가 지난해 하반기에 내놓은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비정규직 중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1.1%이고, 3년 후 전환되는 비율도 22.4%에 불과하다. 회원국 평균이 53.8%라니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OECD는 “유럽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인 것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덫’이 될 위험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임금이 적은 것은 참는다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계획하고 준비할 미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기약 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고 설령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내수 시장이 살아날 가망은 없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 역사가 경험한 그 어느 사회보다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여타의 계급 사회가 계급 지배에 외적 강제력을 동원했던 데 비해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을 개인으로 파편화시켜 시장에 풀어 놓고 개개인의 탐욕에 불을 질러 스스로 자본주의의 동력이 되게 한다. 그런 한편 자본주의의 치명적 약점은, 마치 태생적으로 자가 면역 질환을 지닌 사람처럼, 이윤을 향한 탐욕의 무한 경쟁이 무수한 사회적 병폐를 초래함으로써 스스로 자본주의 체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복지 제도나 다양한 법적 규제를 통해 갈등을 완화시키며 자신을 복제할 줄 아는 영리함으로 위기에 대처해 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경제적으로 전근대적인 퇴행성까지 지니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고용 불안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직 기업하기에만, 아니 그것도 대기업하기에만 좋은 나라를 만드느라 고용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양산되는 비정규직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사회 불안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현 정부가 내건 다른 공약들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 전환을 강화, 정착시키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기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보장하겠다던 공약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년 동안 비정규직은 증가했고, 임금 격차도 2년 연속 커졌다. 일자리의 질 자체가 더욱 나빠져 시간당 5580원의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180만여 명, 전체 노동자의 12.1%에 달한다. 청년 실업률은 9%대로 역대 최고에 달하고, 취업한 청년 5명 중 1명은 1년 이하의 계약직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청년층 고용률은 2012년 기준 OECD 통계에 따르면 40.4%로 회원국 평균 50.9%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OECD 회원국 중 청년 고용률이 40%대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단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우리 경제가 회생하려면 최소한 비정규직도 일할 만한 일자리가 되어야 하고, 또한 더 나은 일자리로 가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비정규직 마트 계산원 선희가 엄마 몰래 알바를 해온 고등학생 아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모자가 서 있는 뒤편으로 끝 모를 콘크리트 벽이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현재의 비정규직과 그 가난을 물려받을 미래의 비정규직이 마주 서 있는 현실은 저토록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언론은 마트 계산원이 파업해서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한다고, 버스나 철도가 파업해서 시민의 발을 묶는다고, 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 상품의 가격이 오르고 노동자가 쟁의를 벌이면 경제가 어려워져 결국 당신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생존의 벼랑에 몰린 사람들의 절박함과 며칠 동안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같은 저울에 올리고, 자본이 양보해야 할 부분을 불특정 다수 시민들의 손실분으로 떠넘기며, 당신들이 갑인데 왜 참고 있냐고 끊임없이 충동질한다.

영화에서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측은 대체 인력을 투입한다. 사측의 불법 행위를 막으려 대체 인력으로 고용된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마트 이용객이 항의를 한다. 회사하고 해결할 문제인데 왜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냐고. 우리 대부분은 계산원을 무릎 꿇리는 진상 고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휴일에 찾은 마트가 문을 닫았을 때 영화 속 고객처럼 불평을 쏟아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을’이겠지만 또 다른 약자 앞에서는 ‘갑’ 행세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하지만 파업이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면 할수록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노동자들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그들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편안한 생활을 누려 왔는가에 대한 자각과 고마움이 아닐까. 그들이 멈추면 세상이 운행을 멈춘다!

영화에서 ‘더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실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가슴에 응어리진 억울함을 감수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착하고 성실하고 가족밖에 몰랐던 선희가 알바비를 떼인 아들 대신 돈을 받아오고 나서 아들의 억울함을 헤아리는 장면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억울함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억울함, 이것은 노동 문제나 경제 문제 이전에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이것이 선희와 그의 동료들이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메시지이자 내가 뒤늦게라도 이 영화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부디 들어 달라, 이렇게 억울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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