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미국 인권재단 관계자들이 경기도 파주시 문산쪽에서 비밀리에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20일 오전 박 대표가 전날 밤 늦게 비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는 사실을 경찰로부터 사후에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쪽 관계자 2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단체의 전단살포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항이며, 이로 인해 해당지역 주민의 신변안전에 명백한 위해가 있을 경우 해당단체가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을 당부하는 수준에서 관여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판에 박힌 발언도 되풀이됐다.
그러나 19일 늦은 밤에 박 대표와 일부 미국인들이 관련된 대북전단 살포가 '현명한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미국인을 포함한 인권재단(HRF) 소속 외국인들이 입국 목적에 위배된 활동을 한 것인지 여부도 "영상을 보고나서 판단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공문으로 전단살포 중지를 요청해 달라는 박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며, 지난 15일 통일부 고위 관계자가 박 대표를 만나 정부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현명한 대응을 당부했는데 그 정도면 적정하다고 말했다.
설득하기 위한 접촉이었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구두로 전달하는 것이 회신용으로 보내는 공문처리 보다 더 적절하기도 하고 높은 수준의 일처리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낮은 방식의 업무처리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 관계자는, 낮은 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는 공문처리를 왜 꺼려하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입을 닫았다.
열흘전 정부가 강제로 등을 떠밀어 미국으로 내보낸 신은미씨가 떠올랐다.
떠오르는 의문은 그토록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왜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박 대표의 대북전단 살포에는 금과옥조처럼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보편타당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이지만 신씨가 미국 국적자여서였던가? 아니면 신씨의 발언이 '현지 주민의 신변 안전에 명백한 위해'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나?
지난 10일 우리 정부에 의해 출입국관리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강제출국당한 신씨는 출국성명에서 자신을 외국인 취급한 정부에 섭섭함을 느꼈다고 호소하면서도 거꾸로 뜨거운(?) 모국애를 표현했다. "비록 몸은 강제출국 당할지라도 모국을 향한 내 마음까지는 강제출국시키지 못한다."
신씨는 같은 출국성명에서 "북한 여행 후 민족애와 동포애가 생겼으며 민족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염원하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모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애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오후 전쟁기념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박 대표는 전날 자신의 전단살포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부의 대화제의에 북측이 나오지 않을 경우 '디 인터뷰' USB와 DVD를 곧 대량 살표하겠다"고 말하고 정부의 자제요청과 상관없이 강행할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박 대표는 "(북측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거나 북한인민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느니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주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하나하나 압살하는 악랄한 행위"라며, "진실의 대북전단으로 계속 대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균형있고 진정하게 이 사회를 포용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백히 남북관계의 개선에 위해요인이 되어 있는 전단살포로 인해 평화로운 남북관계 환경에서 편안히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국민의 신변안전이 위협받고 있지는 않은가?
또 하나, 미국 인권재단(HRF) 소속의 외국인 20 여 명이 항시적인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도는 접경지역에서 어젯 밤 11시가 넘는 시각에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동에 참여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3월에 대규모 전단살포를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나?
금발에 선글라스를 쓴 이들은 입국목적이 적혀있을 비자 종류를 묻는 질문에 "마스터도, 비자도 모두 있다"는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 땅의 관계개선과 평화를 떠나서 살 수 없는 국민들은 과연 누구를 강제출국시켜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다시 통일부 기자실로 돌아가서, 통일부에서 공문을 보낸다고 한들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한다는 보장도 없는데다, 이렇게까지 하면 북측의 요구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일부가 고민할 일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여야 할 것이다.
"사회는 변화를 통해 활력을 유지합니다. 좋은 체제, 제도, 사상, 문화라도 시간과 함께 변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떨치려면 '창조적 파괴'의 고통이 따릅니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탑골에서 부는 바람' 특별전에 부쳐 강홍빈 관장이 여는 말로 써 놓은 글이다.


美HRF 직접관여는 주권침해, 강제출국으로 대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