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강제출국 당한 신은미 씨가 출국 직전 인천공항 내 정부합동청사 로비에서 취재진 앞에 마지막 소회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같은 ‘통일토크콘서트’ 건으로 13일 구속실질심사를 앞둔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신 씨 부부를 눈물로 배웅하는 민권연대 등 단체회원들과 지인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저는 앞으로 5년 간 입국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비록 몸은 강제출국 당할지라도 모국을 향한 제 마음까지는 강제출국 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신은미 씨는 마지막 출국성명을 통해 “마치 ‘사막에서 물줄기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 그리고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내 모국의 동포들과 항상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신 씨의 마지막 출국 또한 순탄치 못했다. 당국은 전날 변호사와 합의한 지인들과의 작별시간 30분을 5분으로 줄이려다 격렬한 항의를 받았고, 취재진의 과잉취재를 피해 신 씨 일행이 탄 차를 빼돌리려다 지인들의 맨몸 저지에 막혀 포토존으로 되돌아왔다. 민권연대 등 단체 회원과 지인 30여 명은 두 시간여를 기다려 신 씨 부부를 눈물로 배웅했다.

▲ 취재진과의 실랑이 속에 신 씨 일행이 탄 차를 빼돌리려다 막혀 다시 포토존으로 돌아오는 차량.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신 씨 일행을 기다리는 사회단체 회원들의 아기들. 분단 70년 초입의 스산한 풍경을 이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제 아무리 ‘힘센 악’도 ‘선함’을 이길 수 없고, 제 아무리 강건하게 포장되어진 ‘올바르지 않음’도 ‘옳음’을 범할 수 없습니다. 저도 늘 사랑하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우리 모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애쓰겠습니다”. 취재진 앞에서 마지막 감사를 표하는 신은미 씨.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신은미 씨의 남편 정태일 선생.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지인들과 일일이 안으며 인사를 나누는 신 씨 부부.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지인들과 일일이 안으며 인사를 나누는 신 씨 부부.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강제출국 되면 2020년 이후에나 입국할 수 있다. 마지막 작별의 순간 누군가 힘차게 외친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다시 만납시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출국성명>

지난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첫 ‘통일 토크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첫 콘서트 끝나기가 무섭게 몇 종편 언론들이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 했다’, ‘북한 3대 세습을 찬양했다’, ‘11월 19일,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날에 맞추어 콘서트를 연 저의가 뭔가’라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해 가며 ‘통일토크 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고 허위, 왜곡보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내려왔다’라는 등 그 황당한 허위, 왜곡의 수위는 날로 더 높아만 갔습니다.

마침내 세뇌에 가까운 허위 보도를 지켜 본 한 청년이 2014년 12월 10일에 ‘익산 강연장’에서 폭발물 테러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또한 허위 보도한 한 종편의 ‘마녀사냥’의 결과물이며 그 청년 역시 희생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폭발물 테러에 관하여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편의 보도를 따라 ‘통일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고 명명하시며 낙인까지 찍으셨습니다.

저는 테러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3차례의 출국정지를 당해가며 거꾸로 가해자의 신분이 되어 3차례, 3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경찰에서 그리고 또 한 차례 15시간에 걸쳐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11월 19일의 토크 콘서트 내용에 관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조사가 끝났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저의 책 그리고 미국에서의 활동에 대한 조사로 보냈습니다.

11월 19일의 콘서트는 2014년 8월부터 이미 계획이 되었으며, 콘서트 날짜는 2014년, 11월 22일과 12월 5일에 한국에서 있을 저의 가족 행사에 맞춰 정해졌으며, 적어도 ‘통일 토크 콘서트’ 한 달 전부터는 광고가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11월 19일,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 날짜에 맞춰 콘서트를 열었다’는 종편의 억지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지상낙원이다’라고 한 허위 보도에 대해서도 경찰에서는 ‘토크 콘서트에서 그런 말 한 사실 없다’라고 조사에 대한 사실을 발표했으며, ‘북한 3대 세습을 찬양했다’라는 허위 사실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임이 조사 내내 잘 밝혀졌습니다.

토크 콘서트에 관한 조사가 끝난 후, 장시간 동안은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죄목을 찾기 위해 저의 책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와 몇 년에 걸쳐 수십 차례 동안 해 왔던 국내외의 강연 내용에 대한 심도 높은 조사를 했습니다.

이미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통일에 도움이 된다며 ‘우수문학 도서’로, 그리고 통일부는 홍보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제 책과 강연 내용에 관한 검증을 다 해 주었고, 뿐만 아니라 여러 TV 방송을 포함한 많은 언론 매체들에서 책의 내용과 사진들, 저의 인터뷰가 지금의 북한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 점을 높이 사 방영을 했습니다. 공영방송인 KBS는 제가 북에서 찍어온 동영상을 다큐멘터리 제작에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부를 비롯한 많은 TV, 언론매체들도 북한 찬양에 동참한 것이 됩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모순된 이야기들로 저에게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 죄목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이며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저로부터 확실한 죄목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조사 날에는 ‘출입국 관리법 위반’에 대한 수사를 했습니다. ‘외국인이 남의 나라에 관광으로 들어와 강연을 했다. 위법이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 들어오면서 그 나라 출입국 관리 위반 지침서 정도는 한 번 살펴보고 와야 하지 않나’등의 이유가 ‘출입국 관리법’을 위반한 죄목이 되었습니다.

800만 해외 동포들은 자신들의 모국에 들어오면서 단 한 번도 외국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 대한민국이 남의 나라입니까. 내 부모, 형제, 친지,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는 영원한 나의 고향입니다. 정말이지 한심하리만큼 슬픈 질문들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은 기소를 유예하고 법무부에 저의 강제출국을 요청하였습니다. 공공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저는 북한 여행 후, 민족애와 동포애가 생겼으며 민족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과 북의 동포들은 같은 언어, 역사를 공유함은 물론 같은 음식을 먹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함께 눈물 흘리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한 민족이요, 한 형제요, 한 겨레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책에서나 강연에서나 ‘우리 남과 북의 동포들은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하루빨리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우리 북녘 동포들의 삶과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민족의 정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얘기들이 우리 모국의 공공안전과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인지요.

통일의 대상은 저처럼 평범한 남과 북의 동포들입니다. 이들이 통일의 주인이며 대다수를 이루는 남과 북의 대중인 것입니다. 제 아무리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통일 방안을 훌륭하게 연구하고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통일의 대상인 저 같은 평범한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분단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이상적인 통일 방안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강제출국을 당하는 저는 앞으로 5년간 입국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비록 몸은 강제출국 당할지라도 모국을 향한 제 마음까지는 강제출국 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치 ‘사막에서 물줄기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 그리고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내 모국의 동포들과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아무리 ‘힘센 악’도 ‘선함’을 이길 수 없고, 제아무리 강건하게 포장되어진 ‘올바르지 않음’도 ‘옳음’을 범할 수 없습니다. 저도 늘 사랑하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우리 모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 1. 10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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