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2005년 MBC 시사프로그램 ‘PD 수첩’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황 교수는 당시 서울대 석좌교수로서, 2005년 5월 사람의 난자를 이용하여 체세포 핵 이식의 방법으로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사이언스 지에 게재했다. 연구가 불러온 국내외적 반향은 컸고, 황 교수는 일약 국민적 영웅이자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터였다.

의혹은 처음에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곧 논문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연구원의 난자를 채취했고, 불법 매매 난자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논문이 조작되었으며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2006년 1월 사이언스 지는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을 직권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3월 논문 조작 혐의를 조사해 온 서울대학교 징계위원회는 황우석 교수를 파면 결정했다. 5월에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교수의 재판은 2014년 2월에야 최종 판결이 났다.

연구비 횡령과 불법 난자 매매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대의 파면 징계도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 하지만 황 전 교수에게 고작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는 것으로 이 희대의 사기극이 막을 내린 것은 사건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파장과 충격에 비하면 허망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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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사건의 제보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황우석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실 그것이었다.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하면서 연구팀장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실제 제보자 류영준은 황 교수의 연구가 순수한 학문적 동기에서 멀어지며 권력화하는 것을 보고 연구실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검증 안 된 줄기세포를 장애 아동에게 임상 실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떤 치명적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이 위험한 시도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제보를 결심했단다.

물론 그 대가는 가혹한 것이었다. 황우석 지지자들이 그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들이닥쳤고 그는 해고되었으며 한동안 도피 생활까지 해야 했다. 2년 동안 실직자로 지낸 끝에 전공을 신경외과에서 병리학과로 바꿔 새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전문의와 임상교수를 거쳤다. 그 동안 8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는 지금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의사로서의 양심에 따른 제보 한 건이 그의 인생을 10년이나 돌아가게 했다.

그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 아닐지. 영화 속 제보자 심민호 팀장은 아이의 병원비 때문에 심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논문 조작에 대한 협조를 제안받는다.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가뜩이나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고뇌 끝에 진실을 제보할 것을 결심한다. “당신은 모든 것을 걸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어!” 이 취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윤민철 PD의 말에 대한 심민호의 대답은 뭉클한 울림을 준다. 양심을 지키는 길을 택한 그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은 것은 단지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소망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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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호의 동료 연구원이지만 그의 편이 되어 주기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던 미현, 심민호의 아내 김미현 연구원 역시 양심이니 윤리니 하는 거창한 문제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과 가족을 위해 모든 의혹을 외면하려 했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진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도대체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기에, 오히려 몰랐던 진실을 아는 것이 그를 공연한 갈등과 번민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데,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울컥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핑계 속에 내팽개쳐진 인간의 숭고한 정신, 그러나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움터 올라오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 숭고한 정신의 이름은 ‘양심’이 아닌가. ‘부끄럽지 않은 부모’라는 명분조차도 필요 없이 그는 양심의 소리를 따른다.

그러나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식과 위선의 동의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공익 제보자들의 순수한 결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한 개인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과 무관한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제보의 동기를 의심하고 모욕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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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진짜 주목하는 문제는 제보자가 아니다. 그건 사건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영화는 묻는다, 진실인가 국익인가. 언론은 무엇을 수호해야 하는가.

사실 이 질문은 이상하다. 진실과 국익이 대등하게 저울에 올려져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는 가치가 될 수 있다면, 이런 명제도 성립 가능할 것이다. ‘거짓과 허위는 국익이 될 수 있다.’ 이 명제는 우리를 윤리적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데 ‘진실인가 국익인가’라고 바꿔 말하면, 이 질문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마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논하는 것처럼 짐짓 도덕적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교묘하게 포장된 명제들 사이를 걷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진실이 곧 국익이다. 그 단위가 국가이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어떤 경우라도 거짓과 허위로 이득을 본다면, 그것은 이미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며, 범죄적 행위로 지탄받아야 한다. 거짓과 허위는 국익이란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다. 영화의 진짜 대립축은 진실과 국익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사사로운 잇속을 국익으로 포장한 부도덕한 욕망과 타락한 언론이 있다.

흔히 진실을 수호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는 윤민철 피디를 공격하며 여론몰이를 하는 것 역시 언론이다. 이장환 박사는 언론 플레이에 능란하다. 평소에 치밀하게 언론을 관리해 왔으며,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언론에 노출시켜야 되는지 알고 있고, 자신의 거짓과 위선을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언론을 동원할 줄 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통해 여론을 호도한다. 그는 언론을 통해 자신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영화는 진실을 추적하는 한 언론인의 노력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지만, 몽매한 여론을 등에 업고 진실의 눈을 가리는 언론의 가공할 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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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통제 방식은 바뀌었다. 무식하게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대신, 언론의 입을 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말했다.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대중은 속아 넘어간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었다.”

이장환 박사의 ‘큰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해 윤민철 피디는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지만,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이성적 인식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로부터 차단당한 대중은 기를 쓰고 유비통신이라도 찾아 그 목마름을 해소하려고 들지만, 이미 잘못된 정보에 현혹당한 대중은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 맹목적 믿음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는 괴벨스의 말처럼 자신들의 믿음을 훼손한 자에 대한 증오의 물결이 사회를 뒤덮는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무서웠다.

방송사 간부들이 윤민철 피디를 압박하며 말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도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 당신이 믿는 것은 환상이고 당신의 신념은 맹목이라고 지적하는 순간,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흥분한 군중의 무리로 돌변하는 사회는 무섭다. 더구나 이것이 우리가 겪은 실제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볼 때, 영화를 보는 일은 막막하고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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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메라는, 이장환 박사의 차를 막고 힘겹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의 모습을 오래 주시한다. 난치병 환자의 희망, 중증 장애인의 희망, 이장환이라는 끈을 놓치면 그 희망이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그의 손을 부여잡는 저 남루한 장애인 모자의 간절함이 조금 후에는 윤민철 피디에게 퍼부어지는 계란 세례가 되고 제보자 심민호의 집 유리창을 박살내는 돌이 될 것이다. 희망과 광기가 이렇게 한끝 차이로 뒤집어진다.

괴벨스는 말했다.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이장환의 모델이 된 황우석은 현재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동물 복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10억 원 규모의 경찰견 복제 프로젝트도 수주했다고 하고, 중국에 동물 복제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여전히 “영화 보고 충격 받았어요. 황우석 줄기세포 정말 없나요?”라거나, 황우석이 재기를 노리면서 성공시킨 코요테와 사자견 복제 사례를 근거로 황우석 줄기세포를 다 ‘사기’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99가지의 거짓에 섞여 있을지 모르는 1개의 진실에 목매는 대중의 심리를 괴벨스는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리고 여전히 황우석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이들이 말한다, 피디수첩이 어느 정도 진실을 찾아냈을지는 몰라도 공연히 황우석의 발목을 잡아 국익에는 손해를 끼쳤다고. 눈 먼 자들의 도시이다.

반면에 황우석 사건을 고발한 한학수 피디는 최근 비제작부서인 신사옥개발센터로 발령을 받았다. 그의 새 업무는 사옥 앞의 스케이트장 운영이다. 그리고 MBC는 아예 교양제작국을 해체해 버렸다. 영화 속 방송국의 사장은 윤 피디의 설득에 방송을 결심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끝으로 나는 괴벨스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더 떠올린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언론이 왜 중요한지를 이보다 더 아프게 가르쳐주는 구절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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