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진보정책연구원)

『마녀 vs 마녀』(도서출판 AGORA) 표지 [사진제공-AGORA]

무서운 세상이다.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장에 사제폭탄이 터지고, 2명이 다쳤다. 현장에서 잡힌 용의자는 고3. 그 학생이 목표한 대로 사제폭탄이 정상적으로 터졌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국회의원을 5명이나 보유한 정당에 대해 정부가 강제 해산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개인에 대한 폭력은 어쩌면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폭력에 둔감해지고, 폭력에 젖어가는지도 모른다.

고3이 신은미-황선에게 사제폭탄을 던지고, 정부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한 것은 같은 이유였다. 종북! 종북이라는 말 하나로 특정 개인과 특정 정당은 폭탄을 던져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온갖 패악질을 해도 되는 정당이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해산 시도를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잔혹사의 맥락에서 검토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반성적 성찰과 통합을 제안한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통합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인 박경순이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마녀 vs 마녀』(도서출판 AGORA). 진보당을 해산하려는 박근혜 대통령(bad girl)과 박근혜 대통령이 해산시키려 하는 통합진보당(witch)을 대비시킨다. 누가 진짜 마녀인가를 묻는 것이다.

진보당에서 민주노동당까지의 진보정당 역사: 탄압과 분열의 잔혹사

1956년 진보당 당수 조봉암이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지고 진보당이 강제해산된 후 진보정당의 역사는 ‘암흑의 시대’를 맞는다. 4.19 혁명 이후 사회대중당, 혁신동지총연맹, 한국사회당, 사회혁신당 등 진보정당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진보정당의 르네상스가 열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1년 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반공정책은 진보정당이 설 수 있는 토대를 무너뜨렸다. 박정희부터 전두환으로까지 이어지는 25년간의 군부독재 체제 하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87년 체제의 등장과 함께 진보정당 운동은 활성화된다.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적 선거 제도의 확립은 진보적 이념을 내세운 진보정당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을 제공했다. 그러나 1988년의 민중의당, 1990년의 민중당은 각각 총선과 대선에서의 패배 이후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왜 87년 항쟁 이후 진보정당은 실패하였는가? 박경순은 반공과 반북이라는 폭압적 정치상황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보정당 운동이 갖는 한계와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와 결함은 첫째, 진보진영의 분열과 대립, 반목이다. 둘째, 대중적 토대와 기초가 없었고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했다. 따라서 진보정당 잔혹사는 단지 탄압사가 아니다. 진보정치세력의 분열사가 포함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출범은 새로운 진보정치 시대를 여는 기원이 된다. 민주노총은 창립선언문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실현’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저자가 보기에 민주노총의 출범은 민주노동당 창당의 ‘첫 출발’이었다.

1996년 12월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과 민주노총의 총파업 그리고 민주노총의 승리는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조직적 기반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주노총은 1997년 3월 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을 결의한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은 ‘국민승리21’을 결성하고 97년 대통령 선거에 권영길 후보가 출마한다.

이전의 진보정당과 다르게 국민승리21은 대선 이후 진보정당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수많은 논의 끝에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창당은 진보정당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박경순은 민주노동당의 탄생을 “정당민주주의의 발전과 진보정당 운동에 있어 불멸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한다. 소수 몇 몇 사람들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대표하는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결심하여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당의 기초를 만들고, 여기에 진보적 정치세력들이 단결해서 전체 진보진영의 총의로 대중적 힘에 의해 민주노동당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독점 정당체제에서 보수와 진보의 생산적 경쟁이 가능한 새로운 정당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마녀(witch)의 탄생 1: 통합진보당

민주노동당을 계승한 통합진보당은 화형에 처해야 할 마녀인가? 박경순의 답은 단연코 ‘아니다’이다.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는 통합을 선언하고, 2012년 2월 통합진보당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통합진보당은 4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10.31%, 원내 의석 13석을 획득한다. 애초 목표에는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이었으나, 수도권에서 4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보였으며, 원내 3당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렇다면 원내 3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어야 할 ‘마녀’로 둔갑한 사연은 무엇일까? 박경순은 ‘당내 분열을 격화시켜 통합진보당을 와해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선 당내에서는 소위 ‘비례대표 경선 진상규명위원회’의 허위, 날조 조사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의도적으로 당내 일부 세력(소위 경기동부연합 계열)을 부정 선거의 주범으로 매도하고 당 내에 반동부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불순한 의도’는 5월 4일 운영위원회에서 경선후보 사퇴 촉구안을 가결시키기에 이른다. 당내 갈등이 ‘적대적 대결 양상’으로 치닫게 되고, 5월 12일 중앙위 폭력 사태로 비화된다. 분당 상황을 막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강기갑 당대표가 8월 초 탈당을 선언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은 반쪽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2013년 8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빌미로 하여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마녀(bad girl)의 탄생 2: 박근혜 정권

새정치민주연합의 문희상 비대위원장조차 “정당 해산결정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당성도, 명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박경순의 주장이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박근혜 정권의 유신부활 책동과 새누리당 영구집권 야욕의 산물이다. 유신부활을 통한 수구보수 영구집권의 꿈을 꾸고 있는 집권 세력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이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 정당이며, 노동자·민중의 편에 서서 가장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정당이고, 분단 체제를 허물고자 하는 자주통일 정당이기 때문이다.”(14쪽)

위의 세 문장은 지금까지 통합진보당이 해 왔던 주장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느낌을 준다. 박근혜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통합진보당을 정치적 희생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경순은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통합진보당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는 국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전략(Pivoting to Asia)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17쪽)

풀어내면 이렇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전략 성공을 위해 한미 군사동맹 강화와 한일 군사협력 체제 구축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으로서는 한미 군사동맹 강화 노선에 부정적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한국 정치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반미자주화투쟁이 격화될 경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며, 아시아 회귀 전략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군사동맹을 적극 지지하는 수구보수 정치 세력들이 안정적으로 집권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종속적 한미동맹에 문제를 제기하고, 남북 화해협력과 자주통일을 적극 옹호하는 세력들을 정치권 밖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 퇴출 대상이 바로 민주노동당이었고, 통합진보당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물증’은 없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었던 국내 정치조직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었다는 논리적 정황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의 이같은 주장을 ‘근거없는 운동권식 사고’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대개 미국의 국내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암암리에 전개되어 왔고, 상당히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라야 그 개입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의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구조를 상수로 두고 있는 ‘자주파 박경순’ 입장에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선택은?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가 연내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소송에 대한 최종판결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선고를 속히 내달라는 새누리당의 주문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연내에 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재판관들이 수시로 평의를 열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로 확인되었다. 통상적으로 격주 목요일에 열리는 평의가 11월 25일 최종 변론 이후 수시로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변론종결 이후 4주를 넘겨 선고하면 안된다는 민사소송법 규정도 거론된다. 12월 안에 판결을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들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통합진보당의 위헌성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론이었다. 이에 대해 박경순은 아래와 같이 반박한다.

“첫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폭력에 의한 정권 전복 노선이 아닌 합법적 선거에 의한 집권을 추구하고 있다.
둘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일인독재와 일당독재를 반대하고, 삼권분립 정치 체제와 복수정당제, 의회 제도를 기본 정치 체제로 내세우고 있다.
셋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헌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적소유와 시장경제 질서를 기본 골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에 입각한 경제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49~51쪽)

박경순은 민중주권론도 합헌적인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통합진보당의 민중주권론은 국민주권론을 반대·배격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게 아니라, 국민주권론에 기초해 그것을 실질화하고 완성하자는 이론이다.”(56쪽)

이제 ‘인용이냐 기각이냐’ 하는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과연 헌법재판소는 어느 ‘마녀’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어떤 판결이 나오건간에 2012년부터 시작된 ‘마녀 사냥’은 한 국면을 넘게 된다. 그렇다면 헌재의 판결 이후 통합진보당에 대한 ‘마녀 사냥’은 중단될까?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구보수 세력들의 ‘종북 사냥’은 헌법적 테두리를 넘어서고 있고, 공권력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

헌재가 해산결정을 내린다면 수구보수세력은 ‘통합진보당의 잔존 종북 세력’을 뿌리 뽑으려 할 것이며, 해산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에 대한 ‘종북 공세’는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이를 예감했던 것일까. 저자 박경순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은 ‘전망과 결심’을 밝히고 있다.

“향후 진보정치 세력의 단결과 재통합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방해하려 할 것이며, 통합진보당 와해 공작보다 더욱더 혹독한 제2, 제3의 탄압 사건을 일으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역사와 민중의 거센 전진의 힘을 막을 수는 없다. 분단 체제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보수적 특권 체제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와 저항은 이미 막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다. <중략> 이 힘은 거대한 민중들의 함성으로 모아지면서 분단 체제와 기득권 체제를 허무는 거대한 태풍으로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갈 것이며, 그 태풍은 온갖 낡은 것들을 다 쓸어내버릴 것이다. 그 위에 민중들이 염원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 자주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 세력들은 지난날의 활동에서 교훈을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그 어떤 탄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동 중심의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할 것이며, 새시대를 열어나가는 선봉 부대로서의 자기의 역사적 소명을 다할 것이다.”(175쪽)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리건 ‘마녀 vs 마녀’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마녀 vs 마녀』는 진보진영에게 “피할 수 없는 이 싸움에게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서평은 <오마이뉴스>와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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