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1969년 사형당한 권재혁 선생의 45주기 추모제가 4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선생의 사진 옆에 45년 만인 올해 5월 재심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서가 놓여 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남조선해방전략당’(이하 ‘전략당’) 사건으로 1969년 사형 당한 권재혁 선생의 45주기 추모제가 4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30여 명의 추모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제는 노중선 4월혁명회 전 상임의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어 경과보고와 추모사, 유족인사와 헌작, 추모 노래와 추모객들의 분향재배로 마무리되었다.
이날 추모제는 전략당 사건 관련자와 유족들을 비롯해 양심수후원회, 범민련남측본부, 4.9평화통일재단, 추모연대와 서울대민주동문회 등 각계 인사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전략당 사건 관련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4월혁명회 전 상임의장이 인사말에 앞서 잔을 올리고 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고인의 약력과 사건경과를 설명하는 이호윤 서울대민동 공동대표.[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권재혁 선생 약력과 사건경과>

- 1925년 경남 산청 출생
- 1950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1956년 도미, 59년 오리곤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61년 5.16쿠데타가 발발하자 그 해 12월 돌연 귀국, 육사와 건국대 강사 역임
- 1963년 한국수산개발공사 영업책임자, 노동자 조직화와 반독재 민주화투쟁 전개
- 1968년 7월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남조선해방전략당’의 당수로 지목,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죄, 내란예비음모죄, 간첩죄 적용
- 1969년 11월 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당시 45세)
- 2009년 4월 28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전략당 사건은 중정의 조작극’이라고 진실 규명
- 2014년 5월 16일 대법원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이란?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3선 개헌을 준비하던 1968년 중앙정보부의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관련자 권재혁이 발표한 논문 제목 ‘남조선 해방의 전략과 전술’에 착안하여 중정이 작명하였다.

관련자 이일재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서클들의 연합조직을 만들어 차츰 당조직으로 발전시킬 생각은 있었으나 아직 지하정당으로 발전한 상태는 아닌, 서클활동 수준의 노동운동조직이었다고 한다. 조직의 노선은 ‘민족자주통일’로 남한 프롤레타리아의 자주적인 각성과 조직화가 선결 과제라는 데 합의, 일부는 노동현장으로 투신하고 일부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돕는 외곽조직 역할을 하는 등 전국적 노동운동조직의 맹아 형태를 띠었다.

1967년 경 권재혁 선생과 김종태 선생(통혁당)이 몇 차례 만나 통합을 논의하는 와중에 68년 7월 김종태 선생이 연행되면서 대대적으로 체포.구금되게 된다. 68년 8월 24일 ‘통일혁명당’ 관련 사건 발표 때 ‘남조선해방전략당’은 산하조직으로 발표되었으나 실제로는 별개 사건으로 기소.처리되었고, 13명의 관련자들은 7년~사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과거사위 진실규명과 재심 과정을 통해 흩어진 유족들이 모이고, 2014년 5월 16일 마침내 재심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진다. 2012년 11월에는 국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국가폭력 희생사건 재조명’이란 주제로 전략당 사건에 대한 심포지움도 개최했다.

▲ 추모사를 하는 추모연대 박중기 명예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오세철 이일재추모사업회 고문(왼쪽부터).[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전략당 13명 동지들 중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형락 선생의 부인 한기명 대경범민련 의장(86세)과 딸 이단아 씨. 매년 추모제에 참석하는 한 의장은 이날도 노구를 이끌고 새벽에 경산에서 상경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이날 추모사에 나선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60~70년대 전략당, 인혁당 사건 등을 박정희 정권의 ‘영남 지역 진취적인 인사들에 대한 학살’로 규정하고 민족의 선각자이자 나팔수였던 자랑스런 아버지의 뜻을 유족들이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도 “민중해방과 민족해방, 평등과 자주통일이라는 선생의 염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민중과 민족이 자각하여 운동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오늘의 역사적 과제이다”라고 강조했다. 오세철 고문 또한 ‘국가보안법 철폐와 투쟁하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한기명 대경범민련 의장이 나서 “민중이 잘 사는 세상,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 자주적으로 통일되는 세상, 열사가 갈망하던 세상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고 호소하고, 남북정상의 615공동선언 전문을 암송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장남 권병덕(65) 씨가 유가족 인사를 통해 추모객들에 감사를 표하고 45년 간 간첩의 자식으로 살았던 억울한 삶과 피맺힌 한을 토로하고 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권 선생의 장남 병덕(65) 씨는 유가족 인사에 나서 피맺힌 한을 토로했다.

“68년 아버지께서 끌려가고 하루아침에 빨갱이 집안이 되자 어느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유령의 집이 되었습니다. 1년 뒤 첫 면회를 가니 ‘밥만 먹으면 된다. 다시는 오지 마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작별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친척과 친구들의 손가락질이 싫어 여러 번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과거사위 진실규명을 위해 3개월 간 미친 사람처럼 검찰 수사기록을 찾아 다니던 때,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고 그 날 국가기록원에서 기적처럼 마이크로필름을 찾았습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추모객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분향재배하는 전략당 사건 관련자의 유족들. 13명의 동지들 중 1차로 5명이 재심 무죄 판결을 받았고 2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오세철, 김영옥, 권오헌 선생.[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미망인 이종식 여사(85세)와 유족들. 촉망받던 젊은 남편을 69년 모란공원에 묻고 모친은 미아리에서 노점상을 하며 3남매를 키워야 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추모제 후 기념사진. 올해 출범한 서울대민주동문회도 민주화운동의 선배를 기리며 처음으로 참가했다. 한편, 오는 11월 8일 오후 서울대 교정에서는 권재혁 선생을 포함한 서울대 민주열사/희생자 34위에 대한 첫 합동추모제가 예정되어 있다.[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이 땅의 40대 이상은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의 하재완이 사형 당했을 때 그의 막내는 4살이었다. 잘해야 여덟, 아홉 살 먹었을 동네 형아들은 4살짜리 꼬마를 빨갱이 새끼라고 새끼줄로 나무에 묶어놓고 사형시키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 형아들은 무슨 죄인가?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간첩사건 발표 날 때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저런 것들은 잡아 죽여야 한다고 박수 치지 않았던가? 마침 그 골목에 살지 않았을 뿐, 그 암울한 시절을 산 사람들은 모두 새끼줄 한 자락을 잡고 있었던 셈이다.” _ 한홍구 교수, 2009년 11월 4일자 <한겨레신문> 시론 ‘권재혁을 아십니까’ 중에서.

<권재혁 선생 장남 병덕 님의 유가족 인사(전문)>

아버지 추모제를 저희 유가족들도 잊고 살았던 시절,
추모제를 지내 주셨던 고 김병권 선생님, 고 이일재 선생님, 권오봉 선생님, 한기명 선생님, 김영옥 선생님, 권오헌 선생님, 노중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오늘 제45주기 아버지 추모제에 민족민주열사들의 정신과 뜻을 계승하고 있는 애국시민 선생님들의 참석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사법살인 당한 서대문교도소에서 추모제를 지내 주셨던 고 김병권 선생님,
녹십자병원에서 저에게 아버지의 재판 소식을 묻고 묻다가 돌아가신 이일재 선생님(선생님은 노동계의 대부이자 혁명투사이셨습니다),
우리 집 미아리 건넌방에서 하루 종일 원고만 쓰시다가 “병덕아, 냉수 한 컵 갖다 줘” 하시던 이강복 선생님, 명재 형한테서 들었습니다. 옥중에서 옥사하셨다고...
선생님들,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2014년 5월 16일 대한민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에서 대법관이 ‘권재혁 무죄’라고 했습니다. 5월 16일이 어떤 날입니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탱크를 가지고 한강을 건너와 쿠데타를 일으킨 바로 그 날,
대법원이 45년 전에 간첩죄로 억울하게 사법살인 당한 저희 아버지에게 무죄라고 선고한 날입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진보경제학자로서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던, 앞길이 촉망받는 젊은 경제학자를 사형시킨 것에 대해서 국가는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박근혜 정권은 아버지 정권에서 사법살인 당한 그 억울한 생명과, 그 가족들이 45년 간 간첩의 자식으로 살았던 억울한 삶과 피맺힌 한을 어떻게 보상하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차디찬 바다 속에 잃어버리고 거리에서 아픔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 합니다.
45년 전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문에 아버지를 서대문교도소에서 잃고 억울하게 사형수의 아들이 된 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월호 참사는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칩니다.

민주열사들이 있는 모란공원에서 미친 사람처럼 외치고 싶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무죄입니다.
민족민주열사들이시여! 애국시민 선생님들이시여! 기뻐해 주십시오.
저는 45년 간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해방과 자유를 찾았습니다.
1967년 설날 13분 선생님들이 저희 집에 오셔서 떡국을 드시면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웃던 모습이 생생히 생각납니다.

제가 아버지 산소에 오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가사를 낭송하고 유가족 인사를 끝내겠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동지’는 전략당 사건의 13분 선생님입니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새 날’은 선생님들의 뜻과 정신, 우리 민족의 자유와 평등, 민주화 그리고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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