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포 애기봉 등탑 철거 소식을 듣고 ‘왜 등탑을 없앴느냐, 누가 결정했느냐’며 진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애기봉 등탑은 지난달 15~16일 이틀간에 걸쳐 해병대 2사단이 철거했습니다. 당시 철거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가 일주일 여가 지난 뒤에야 관련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안전진단에서 애기봉 등탑이 D급(보수 후 사용 가능) 진단을 받았으며, 당초 내년 3월 김포시가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붕괴 위험이 있어 관광객 안전을 고려해 사단장이 조기 철거를 지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안전상에 문제가 있기에 철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듯, 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현명한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이 군의 안전대책이 잘못됐다며 ‘진노’한 건 아니겠지요. 알다시피 이 등탑은 1971년 처음 애기봉(해발 165m) 전망대에 세워졌습니다. 18m 높이의 이 등탑은 북측지역과 불과 3㎞ 거리에 있어 불을 밝히면 개성에서도 볼 수 있어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점등식 논란을 빚어왔습니다. 북한이 이 등탑을 대북 선전시설이라며 줄곧 철거를 주장한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 등탑이 한동안 점등을 안 한 적도 있습니다. 2004년 6월 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당시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선전 활동을 중단하고 선전 수단을 모두 제거키로 하면서 점등이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자 군은 그해 12월 종교단체의 등탑 점등 행사를 다시 허용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어쨌든 43년 동안, 때만 되면 성탄절 점등식 행사 문제로 남북간 긴장감을 조성하며 남북 대결의 상징물로 존재했던 등탑이 철거됐다면 민족 화해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게다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대통령이라면 제 입으로 철거 명령을 못해도 군에서 알아서 철거했다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일 텐데 그게 아니라 진노를 했다니요, 박 대통령의 대북관이 확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북측을 적대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통령의 진노와 질타가 있었다고 하자 국방부 관계자가 애기봉 등탑을 철거한 자리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북측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북측은 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이 “지난 시기 반공화국 심리전에 이용해오던 애기봉 등탑을 아래 것들이 철거한데 대해서도 뒤늦게 알고 야단법석함으로써 자기의 대결적 심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고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남측이 북측의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무산에 하나의 구실을 제공한 셈입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실질적으로 무산시킨 역할을 한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한 바 있습니다. 이날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보수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지역 주민 및 진보단체 회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자 공권력은 양측의 충돌만 방지할 뿐 보수단체의 전단 살포는 사실상 방치했으며, 심지어 보수단체를 호위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엔 박 대통령의 숨길 수 없는 대결적 대북관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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