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2015년 12월 1일로 환수하기로 한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적절한 시기”까지 미합중국이 계속 보유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통수권을 남의 나라에 계속 맡겨두는 굴욕적 상황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을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결단’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사실상 무기 연기, 역사적 굴욕 사례로 남을 것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제제4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을 갖고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국가통수권자들은 SCM 건의를 기초로 전작권 전환에 적정한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적정한 시기’에 대해 “대한민국과 동맹이 핵심 군사능력을 구비하고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이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할 때”라고 명기했으며, 국방부 관계자는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고 2022년까지 진행된다”며 “조건이 충족되는 시기는 2020년대 중반”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작권 환수의 특정 시점을 못박지는 않아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소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양국 정부가 명시한 ‘핵심 군사능력 구비’ 문제만 보더라도 킬체인과 KAMD 구축이 예상대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북측의 새로운 위협 전력이 대두되면 그에 맞설 무기체계 구축이 새로운 과제로 제기될 수 있다.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이라는 조건 역시 추상적이어서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이나 동북아에서의 긴장고조 등의 상황이 전개되면 전작권 환수는 또다시 연기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SCM에서의 양국 합의는 사실상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로 볼 수밖에 없다.

2012년 4월 17일로 정해졌다가 이미 한 차례 연기된 적이 있는 전작권 환수를 다시 한번 재연기하면서 환수 시점마저 명기하지 못한 이번 협상은 두고두고 역사적 오점으로 거론될 것이다.

평시작전권은 그나마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4년 환수했지만, 작전권 자체가 전시에 필요한 것임을 감안하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없는 자주국방이나 자주국가 달성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통상 보수세력은 튼튼한 국방력을 기초로 부유한 국가를 추구하는 이른바 ‘부국강병’을 모토로 삼는데 비춰 작금의 한국 보수세력은 스스로 보수의 기치를 저버리고 미국의 그늘 아래 투항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희망사항 보다는 우려사항만 빠짐없이 명시

이번 SCM 공동성명에는 전작권 환수 무기 재연기 뿐만 아니라 “연합사령부 본부를 현재의 용산기지 위치에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주한미군의 대화력전 수행전력을 한국군의 대화력전 능력증강 계획이 완성되고 검증될 때 까지 한강 이북 현 위치에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공동성명 안에 포함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을 유지”한다는 문구가 무색한 대목이다. 전작권 환수 무기 재연기를 빌미로 YRP와 LPP 합의가 명백히 침해돼 쓰레기통에 던져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희망사항 보다는 우려사항만 빠짐없이 반영됐다. “한.미.일 정보공유방안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했고, “정전협정과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미 국민적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로 둔갑시켜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양해각서(MOU) 형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과 유엔사 해체라는 시대적 여망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전협정과 유엔사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못박는 역사퇴행적 합의를 내놓았다.

나아가 국방장관 간의 합의라는 점에서 양국 군사동맹 강화를 위한 군사적 조치는 필수겠지만 “한반도에서의 연합훈련 지속 실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 등은 시대의 흐름과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적절한지 의문이다.

한.미연합 군사연습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북측은 물론 중국 등 주변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이다. 심지어 북한은 최근 한.미 군사연습이 꼭 필요하다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실정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2005년 9.19공동성명이라는 6개국간 합의서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국방장관이 6자회담 초기에 미국이 꺼내들었던 CVID(Complete , Verifiable ,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굳이 다시 명시한 것도 퇴행적이다.

이번 한.미 국방장관의 합의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한.미 군사동맹에 매달린 보수정권의 제 무덤파기라 할 수 있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를 헤아리며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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