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응원단과 북측 선수단은 가까이에 앉아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인천 아시안게임 북측 서포터즈로 활동한 지난 20여일은 과거를 본 듯하기도 하고 미래를 본 듯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남과 북은 서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반가워하는 한편 내내 그리워했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 이사장 성유보)의 회원들 40여명은 인천에 상주하는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꾸려 9월 15일부터 10월 3일까지 북측 선수가 참가하는 38개의 경기, 축구를 포함한 10개 종목에 참가해 응원을 펼쳤고 8개의 금메달을 따는 현장에 함께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운영 미숙 등으로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아리랑 응원단이 참가한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대회 슬로건이 실현되는 듯했다. 특히 10월 1일 여자축구 시상식에서 남과 북 선수들이 함께 기념촬영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는 ‘우리가 이런 순간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목이 쉬어라 응원해 온 것이구나’ 싶었다.

▲ '아리랑'응원단은 북측 선수가 참가하는 38개의 경기, 축구를 포함한 10개 종목에 참가해 응원을 펼쳤고 8개의 금메달을 따는 현장에 함께 했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북측 선수들조차 우리 응원에 깜짝 놀라고 당황해했다. 응원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보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선수들이 더 많았다. 북 선수들이 우리 응원단을 보고 반가워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응원단이 빨간 색 옷을 입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은메달을 따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선 퇴장하는 순간까지 우리를 돌아본 선수, 응원단이 보이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리다가 급히 인사를 건넨 선수, 금메달 딴 선수가 응원단을 향해 인사를 못하고 퇴장하자, 대신 우리를 향해 인사했던 북측 코치. 가슴 뭉클했던 장면은 수도 없다.

북측 선수단만이 아니라 관람하러 온 시민들과도 호흡을 맞추는 응원이 만들어졌다. “북한에서 왔어요?”라고 묻는 시민들이 경기장마다 한 명씩은 꼭 있었는데 북측 서포터즈라고 대답하면 “북 응원단이 오지 않아 아쉽다”며 격려를 보내줬다.

축구 경기에서는 ‘우리 옆에 앉아야 재미있다’며 전반, 후반 자리를 옮겨 함께 응원한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서너 번 갔던 역도 경기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를 알아보곤 “오늘은 빨간티가 와서 재미있겠네”라며 인사하기도 했다.

우리 응원소리에 흥이 났는지 우리에게 북 선수의 이름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물어온 시민도 많았다. 반북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민족애, 동포애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 북측 역도 김은국 선수의 금메달에 남과 북이 마주보며 환호하는 모습이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21일 역도 62kg급 김은국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환호가 터졌다. ‘최고다! 김은국!’ 퇴장하던 북 선수단이 뒤를 돌아본 순간,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핏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북 선수단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보였다. 불과 계단 4개로 떨어져있는 사이. 눈물을 훔치며 마주보며 부르는 노래가 역도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2. 아리랑 응원단을 감동시킨 박수 소리

우리는 농을 섞어 “같은 동포라 그런지 메달 주력 종목도 비슷한 게 많다”고 말하곤 했다. 대표적인 게 유도. 유도 81kg급 남측의 김재범 선수와 북측 박홍위 선수가 맞붙은 8강전. 남북공동응원이 쉽지 않아 조용히 한반도기만 흔드는 상황에서 경기장 내 아나운서가 남북공동응원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남북 선수에게 모두 힘찬 박수를 쳐주십시오.” 경기장을 뒤흔드는 박수 소리는 경기장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심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3. ‘으~~아’ 함성과 함께 번쩍 들어 올린 역도

▲ ▲ 10월 1일 복싱 경기장에서 북측 역도의 김은주 선수가 '아리랑'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역도 75kg급에 출전한 김은주 선수는 처음 용상에서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응원단은 큰 목소리로 ‘으~~아’를 외쳤고 김은주 선수는 그 순간 번쩍 들어 올리며 성공했다. 응원단 내에서도 응원 기운을 잘 받은 선수로 꼽히지만 김은주 선수도 인터뷰에서 “한민족이라는 입장에서 응원해주고 그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은주 선수는 후에 복싱 장은희 선수를 응원하는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 우리를 향해 가장 열성적으로 팔을 흔들고 일어서서 인사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4. 시민들의 응원을 뜨겁게 만든 '정학진’

확실히 우리 민족이다. 많은 시민들이 남북 대결전이 아니면 북측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슬링 57kg급 북과 카자흐스탄의 금메달 대결,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은 모두 ‘정학진’ ‘정학진’을 연호했다. 시민들은 경기장 반대편에서 응원하던 북측 선수단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몰래 사진 찍는 사람은 있어도 북 선수단을 향해 많은 시민들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손을 흔드는 장면은 이 경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시민들의 응원도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5. 이름 연호에 웃음꽃 활짝 핀 '라은심'

남북 대결전이 펼쳐진 축구에선 ‘우리는 하나다’, ‘통일 조국’ 구호를 제외하고는 마땅히 외칠 구호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북 선수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주자는 것이었다. 몸을 풀고 경기 시작을 위해 경기장에서 퇴장하는 북 선수의 이름을 한명씩 연호했다. ‘홍명희’, ‘김은주’, ‘허은별’, ‘라은심’ …. 그 순간 북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선수들은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며 손을 흔들었다.

6. 응원이 끝나길 기다렸던 다이빙 심판

▲ 9월 30일 싱크로나이즈드 북측 감독과 심판이 '아리랑'응원단을 향해 '우리는 하나'라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싱크로나이즈 다이빙 10m 플렛폼’ 여자 결승에서 김은향-송남향 선수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우리 선수 잘한다’, ‘이겨라 코리아’를 외치며 시상식까지 응원을 이어가고 퇴장하려는 순간, 누군가 1층에서 2층에 있는 아리랑 응원단을 부르는 게 아닌가.

북측 코치와 북측 출신의 심판이었다. ‘수고하십니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 우리 응원이 끝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화답하자 함박웃음으로 손가락 하나를 펴보이던 심판과 코치, 짧은 한 순간이었는데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7. ‘인사하고 가라우’라고 했을 북 관계자

▲ 복싱에서 금메달을 딴 장은희 선수에게 응원단의 위치를 설명하는 북 관계자의 모습이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복싱에서 금메달을 딴 장은희 선수가 시상식이 끝나고 링을 내려오는 순간 북 선수단 맨 앞에 앉아있던 남자 관계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맞은편에서 응원하고 있던 우리를 가리켰다. 1층에 있는 장은희 선수에게 소리 지르고 우리를 가리키는 동작을 반복했는데 장은희 선수에게 우리에게 인사를 하라고 알려주는 모양새였다. 장은희 선수는 결국 취재진과 대회 관계자들에게 막혀서 응원단 앞까지 인사하러 오지는 못했다.

8. 꽃다발을 던져준 김정-김혁봉 선수

▲ 김정-김혁봉 선수가 '아리랑'응원단에게 꽃다발을 던져줬다. [사진-통일뉴스 신미연 통신원]

마지막 응원이었던 지난 3일, 김정-김혁봉 혼합복식 결승경기는 홍콩과 1~2점 차를 다투며 치열하게 진행됐다. 여자축구 시상식에서 남과 북의 선수가 보여준 화합의 장면 덕분이었을까. 이 날 처음 우리가 “우리는”을 외치면 북 선수단이 “하나다”를 외쳤다.

경기가 끝난 뒤 응원을 마치고 경기장을 나서는 북 선수들, 관계자들에게서 “다시 만나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응원단에서도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북 선수단을 향해 인사했다. “다시 만나요!”

그 순간 김정-김혁봉 선수가 우리에게 꽃다발을 던져줬다. 금메달 시상식 때 받은 꽃다발이었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의 징표인지, ‘우리는 하나’라는 확인의 징표인지 꽃다발을 받은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북받치는 꽃다발을 들고 목이 메인 채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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