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고위급 인사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최룡해 근로담당 비서가 지난 4일 인천을 전격 방문했다.

이들 3인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 및 북측 선수단 격려가 목적이었으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이례적인 방남은 또 다른 의미를 지녔다.

표면적 방남 목적과 달리, 이번 방문에서 남북은 고위급 오찬회담에서, 오는 10월 말 혹은 11월 초 제2차 고위급 접촉을 갖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지난 8월 남측이 북측에 이산가족상봉을 포함한 남북간 포괄적 현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에 대해 북측이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답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지 살포와 박근혜 대통령이 UN연설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거론한 이후, 북측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 이어 정책국 대변인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질의응답 등에서 험악한 말을 쏟아낸 이튿날이었다.

이날 오찬회담은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규현 NCS 사무처장, 한기범 국정원 1차장 등 안보라인이,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당 비서 등을 만나는 사실상 제2차 고위급 접촉의 형식을 취했다.

당시 김관진 실장은 북측 인사들과 만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삐라는 민간단체가 하는 것이고 우리 법체계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 법체계를 이해시킬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찬회담에는 '5.24조치', 대북 전단살포,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상봉 등 현안은 오가지 않았다.

오찬회담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고 인사를 전했고, 남북은 인천 아시안게임 결과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김관진 실장의 제2차 고위급 접촉 필요성 제기에 김양건 당 비서는 "방남 계기로 남북관계를 잘 풀자는 입장"이라고 말하며 오는 10월 말, 11월 초 제2차 고위급 접촉 수용으로 답했다.

즉, 이번 남북 고위급 오찬회담은 단순 인천 아시아게임 폐막식 참가가 아닌 제2차 고위급 접촉 합의와 함께,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한 자리인 것이다.

물론 이번 북측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은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체육강국 정책을 재확인했다는 점에 국한될 수 있으나, 대외적으로 보통국가로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대남관계를 대화로 풀겠다는 모습을 보여 1거3득의 성과를 취한 셈이다.

남측도 북측 고위급 인사들의 방남과 오찬회담 성과가 주는 의미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번 고위급 오찬회담이 남북관계 국면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는 기류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5일 오전 <KBS 일요진단>에 출연, "(북측 고위급 인사 방남이)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북한 나름대로의 방식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다"며 "전달되지 않은 많은 대화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번 방문을 쉬운 분야부터 남북관계를 여는 작지만 의미있는 출발로 삼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북한이 그 동안 걸었던 대북 전단 살포나 5.24조치 등의 문제제기는 없었다"며 "북측 고위급 인사 3명이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자고 했다. 그런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잘 풀자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즉,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통일구상' 발표 이후, 한.미 군사연습,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 박 대통령의 UN연설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이번 북측 고위급 인사들의 방남으로 전환될 계기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남북 고위급 오찬회담이 남북관계 복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자리였다는 의미가 있지만 산적한 남북간 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시험대에 오를 것은 분명하다.

북측은 여전히 대북 전단지 살포와 북한 인권문제의 이슈화에 불쾌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5.24조치' 해제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남북관계 복원의 단초로 삼고 있다.

남측도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대북 전단지 살포를 정부가 나서서 막지 않는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대북 압박을 고수하고 있고, 여기에 남측도 동조하고 있다는 점은 모처럼만에 조성된 남북관계 국면전환 계기가 깨질 가능성이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어제 남북 고위급의 만남은 상호 대화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이 분위기를 제2차 고위급접촉까지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남북 당국자들이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추후 열릴 제2차 고위급 접촉 이후 남북관계 복원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4일 전격적으로 열린 남북 고위급 오찬회담 이후 남북이 오는 제2차 고위급 접촉까지 대화의지를 어떻게 유지하고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향후 열리게 될 제2차 고위급 접촉의 결과가 남북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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