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결승전이 벌어진 인천문학경기장, 북한 대 일본전. 북한이 3-1로 이겨 우승했다. 경기도 명(名)경기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응원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이기도 했다. 일본 측한테는 뭐하지만 남측 관중이 북측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응원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경기였다.

단순히 최근 껄끄러운 한일관계를 반영하듯 남측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북측을 응원한 것만은 아니었다. 북측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타나자 남측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근질근질하던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DNA가 그대로 발산되는 듯했다.

한마디로 북측의 체력과 스피드가 일본의 기술과 조직력을 압도한 경기였다. 그러나 여기엔 관중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장 본부석 맞은편의 조그마한 일본 측 응원석을 빼고 스탠드는 온통 북측을 응원하는 남측 응원단과 관객이었다. 일본 측 응원단은 고립무원의 섬 같았다.

북측 경기의 단골 응원단인 ‘남북공동응원단’과 ‘아리랑응원단’이 본부석 맞은편에 일본 측 응원단을 사이에 두고 각각 자리했다. ‘남북공동응원단’은 흰색 바탕에 ‘우리는 하나다’가 쓰인 상의에다 한반도색 풍선막대와 단일기를 흔들며 응원했다. 붉은 상의를 입은 ‘아리랑응원단’은 짝짝이를 치며 갖가지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이들 응원단은 각각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는 하나다’라 쓰인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날 새로운 응원부대가 가세했다. 본부석 스탠드에 나이 지긋한 한 종교단체의 봉사대원들이 주황색 조끼를 입고 빨간색 풍선막대를 치며 응원했다. 50여명의 임원단과 선수단으로 구성된 북측 응원단은 준결승전인 남북전 때와 같이 시종 선 채로 응원을 했으나 긴장감보단 여유가 있었다. 남측 관객의 응원에 힘을 받은 듯했다. 이도저도 응원 소도구가 없는 일반 관중들은 가장 원초적인 박수와 함성으로 대신했다. 장내는 “잘한다”, “힘내라”, “이겨라” 등 짧은 구호성 응원에서부터 “코리아 이겨라”, “우리는 하나다”, “우리나라, 조국통일” 등 절절한 통일구호로까지 넘쳤다.

북측이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골 찬스를 놓치면 관중들은 함성과 탄성으로 화답했고, 골을 넣을 때마다 문학경기장은 달아올랐다. 경기 막판 북측의 공격수 허은별 선수가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3-1로 승산을 굳히자 관중들은 일제히 “이겨라”에서 “이겼다”로 구호를 바꿔 연호했다. 여기엔 너와 내가 따로 없었다. 관중과 응원단은 차치하더라도, 경기장 봉사자들과 통제 요원들, 심지어 기관원인 듯한 사람들도 북측이 골을 넣자 제 할 임무(?)를 잠시 망각하고는 열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환호는 계속됐다. 경기 종료와 함께 북측 선수들이 눈물로 범벅된 채 ‘공화국기’를 들고 응원석을 돌며 답례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조국통일’을 연호하며 화답했다. 북측 김광민 여자축구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남측 관객의 응원에 대해 “이 응원 들으면서 북과 남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 조국통일을 바라는 남측 인민들의 마음을 보았다”고 감격해했다. 비록 북측 응원단은 못 왔지만 남측 관객이 북측 응원단이 된 것이다.

응원의 절정이 지나갔다 싶을 즈음 시상식에서 다시 환호의 정점을 찍었다. 관객들은 경기가 끝나고 30분쯤 뒤에 시작될 시상식을 보기 위해 귀가도 하지 않았다. 시상식에는 금메달 북측 선수들, 은메달 일본 선수들 그리고 동메달 남측 선수들이 참가했다.

남측 선수들에게 동메달이 수여되자 북측 선수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번엔 북측 선수들에게 금메달이 수여되자 남측 선수들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국기 게양대에서 가운데 북측 국기인 ‘공화국기’를 비롯해 양측에서 일장기와 태극기가 오르면서 금메달 국가(國家)의 국가(國歌)인 ‘애국가’(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가 울려 퍼졌다.

시상식도 끝났다. 일본 선수들은 힘없이 미리 운동장을 나갔다. 남측 선수들과 북측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기념사진을 각각 찍으며 자축을 하고 있었다. 그때 관중석에서 남북 선수들을 향해 “같이 찍어”, “같이 찍어”를 연호했다. 함께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측 선수들이 기념사진을 찍다말고 옆에 있는 북측 선수들 쪽으로 와 사이사이로 들어와 함께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다. 순간 인천문학경기장은 이날 최대의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초가을 밤 문학경기장은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문학(文鶴)경기장은 그 이름도 멋지지만 이날만은 한 편의 시(詩)나 금언(金言)이 생각나는 문학(文學)경기장이기도 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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