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첫 무대 데뷔에는 부드럽게 등장하는 법입니다. 24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에서의 기조연설은 유엔무대에 첫 데뷔하는 자리였던 만큼 국제사회에 부드러운 대북 메시지를 던질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날 북한 대표인 리수용 외무상도 유엔 총회 자리에 앉아 있던 터였습니다.

게다가 이미 남측이 북측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유엔무대는 북측을 대화 마당에 나오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측에 호의적인 제안을 했다면 국제적으로 평화 이미지를 얻는 것은 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반대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북 ‘대화’에 방점을 두기보다 ‘북핵’과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에 무게 중심을 뒀습니다.

박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의 핵 포기가 남북 협력과 경제 지원의 선행 조건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그럴 경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선핵 포기’를 주장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의 변종으로까지 읽힙니다.

게다가 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인권 문제를 건드렸습니다.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상의 권고사항을 채택했다”면서 “북한과 국제사회는 COI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여전히 생뚱한 건 지난 해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내 ‘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 의지를 거듭 밝힌 점입니다. 박 대통령은 “유엔 주도 하에 남북한, 미국, 중국 등 전쟁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국제적인 규범과 가치를 존중하며 공원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주변 나라가 다 나서도 북측이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측과 기본적인 대화도 나누지 못하면서 유엔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국제적 포퓰리즘일 뿐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아주 놀라운 게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1991년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면서 “하지만 같은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남과 북이 유엔에서 2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했습니다.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던 당시 북측은 동시가입이 ‘두 개의 조선’을 고착화하기에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정부의 전신인 민자당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 후 유리한 국제정세와 역학관계를 이용해 남북 동시가입을 주장해 성사시킨 것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이제 와서 유엔 동시가입을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이는 남과 북이 하나의 의석으로 유엔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흡수통일’적 시도를 의미합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유엔무대라는 첫 데뷔에서조차 대북 대화가 아닌 대북 압박을 통해 흡수통일을 시도하겠다는 흑심을 표출한 셈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