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환 (‘아리랑’ 응원단)
 

▲ 21일 송도 역도 경기장에서 북측 김은국 선수를 응원한 건 행운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큰 기대 없이 짐을 싸서 인천아시안게임 통일응원단 ‘아리랑’에 참여했다. 하지만 지난 3일간 아리랑 응원단은 몇 번이나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경기장에서 북측 선수와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만남만으로도, 찰라의 눈맞춤만으로도 한 민족, 동포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아리랑 응원단 시작은 약 2천여명의 응원단과 시민들이 ‘통~일 조국!’ 응원 구호를 외치던 20일 북측 여자축구 경기부터였다.

처음에는 응원이 서툰 까닭인지 어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북측 선수들이 뛰어들어오는 순간, 마치 죽어있던 세포가 살아난 것처럼 나도 모르게 목청껏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2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통일응원을 하니 감동과 전율은 더 컸던 것 같다. 이 날 90분간의 축구 경기는 그 어떤 책이나 영상보다 더 크고 강한 통일 염원을 내게 전달했다.

▲ 통일응원단 '아리랑' 단원들은 경기장에서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응원 둘째 날인 21일, 우리가 찾은 곳은 유도 경기장. 소낙비 같은 땀을 흘리며 유도를 하는 북측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경기 규칙 등을 정확히 모르는 것은 대수가 아니었다. 승리의 순간에는 마치 나 자신이 이긴 것처럼 기쁨에 겨워 눈물이 났다.

또 경기에 패배하고 고개를 숙이며 퇴장하는 북측 선수들을 향해서는 “괜찮다”, “고생했다”, “잘했다” 구호를 외치며 격려했는데 응원을 더 잘하지 못한 미안함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유도 경기 3시간 가량의 응원은 흥분과 환희, 아쉬움과 눈물이 뒤범벅된 시간이었다.

이날 저녁, 역도 경기 응원을 위해 신도시 송도로 이동했다. 세계신기록을 다시 수립한 김은국 선수를 응원한 건 행운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시상식 전, 많은 관중이 빠져나가고 관객석에는 우리 응원단과 하나의 무리가 남아있었다. 바로 역도 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북측 선수들과 관계자들이었다.

처음엔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는데 승리의 환희와 뜨거운 동포애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구호를 외치다가 마침내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말처럼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 사이에 모든 장벽이 허물어진 느낌이 들었다. 경기 내내 멀게 느껴졌던 북측 관계자들과 우리들 사이의 관중석 3계단 차이가 어느새 뻗으면 손을 맞잡을 듯한 거리로 좁혀졌다.

▲ 22일 유도 경기장에서 남북 결승전이 펼쳐졌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셋째 날인 22일, 우리는 다시 유도 경기장에 들어섰다. 세계선수권자인 여자 유도 설경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설 선수는 강력한 금메달 후보답게 결승까지 승승장구로 올라갔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남북 대결이 펼쳐졌다. 어찌보면 사이좋게 남과 북이 금메달, 은메달을 나눠가지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승자와 패자를 가려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응원하기 어려운 통일응원단 ‘아리랑’은 인천아시안게임 응원에서도 분단의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남과 북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하는 멋진 경기를 펼치길 바라며 마음 졸이면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스포츠 정신을 겨루는 아시안게임의 감동, 여기에 더해 한 민족을 만나고 응원하는 벅찬 감격까지. 지난 3일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직 2주일 정도의 응원단 일정이 남아있다. 남은 기간, 어떤 경기가 벌어지고 또 어떤 감동을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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