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의 2차 남북고위급접촉 제의에 답하지 않고 있던 북측이 13일 대북 전단살포를 문제삼으면서 남측의 태도변화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북측이 남측에게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물은 모양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북고위급접촉 대표단 대변인 명의로 장문의 담화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남측이 대북 전단살포 중단과 같은 ‘신뢰조성’을 하라는 것이다.

남측은 지난 2월 한 차례 열렸던 남북고위급접촉을 다시 개최하자고 지난달 11일 제안했지만 북측은 그간 침묵을 지켜오다 남북고위급접촉 대표단 대변인 명의의 담화 형식으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북측 대변인은 특히 “지난 2월 14일 북남고위급접촉에서 우리에게 상호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확약한 이후 과연 그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는가”라며 남측 대표단이 “신뢰조성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 의지’를 직접 거론한 뒤 “흐르는 시간은 남측의 요란스러운 맹약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가를 만천하에 보여주었다”고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것이다.

남북간 협상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한쪽에서 폭로할 경우 이는 대체로 그 합의가 파탄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측이 대북 전단살포에 대해 “최근에는 삐라살포를 ‘풍선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명명하고 그 집행을 포병을 비롯한 현지 군무력을 동원하여 내놓고 뒷받침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적시한 것도 단순한 일부 민간단체의 일탈행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북측 대변인은 “지금처럼 최고수뇌부의 특명을 받고 나와 이룬 합의까지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그런 입장과 자세를 가지고서는 언제가도 북남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며 “삐라살포를 비롯한 반공화국 심리모략전행위부터 당장 중지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삐라살포를 비롯한 반공화국심리모략행위와 같은 동족대결책동을 중지하면 북남대화의 문은 자연히 열리게 될 것”이라며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해볼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북측의 이같은 입장표명에 대한 남측의 대응은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남측이 통일부 대변인을 내세워 간략한 논평으로 대응하고 나선 점부터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북측이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 대변인을 통해 2월 남북고위급접촉 내용을 문제삼았는데 통일부 대변인이 방어에 나선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격이나 형식보다는 논평 내용이 “우리 정부는 남북고위급접촉에서의 비방.중상 중단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면서 “우리 체제의 특성상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의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2월의 고위급접촉에서도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는 정도에 그친 점이 더 문제다.

북측이 ‘풍선작전’에 대해 일부 민간단체의 일탈만을 문제삼지 않고 “사태의 심각성은 삐라살포를 비롯한 반공화국심리모략행위를 남조선당국이 직접 조직하고 군사적으로 떠밀어주고 있다는데 있다”고 주장한데 대한 충분한 방어논리를 내놓지 못한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간 대화를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북한도 억지 주장을 자꾸 되풀이하지 말고 이제 우리의 대화제의에 조속히 호응해 나오기를 바란다”고 재차 북측의 호응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북측도 대화의 여지를 남겼고, 남측도 북측에 대화를 촉구했기 때문에 조만간 2차 남북고위급접촉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재개 문제와 북한이 요구하는 전단살포 중단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고위급접촉을 제안하면 북한이 조만간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다른 전문가도 북한 통일전선부(통전부)가 대화 재개의 명분으로 대북전단 문제를 내걸고 남측의 성의표시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낙관적 전망보다는 비관적 전망의 근거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말 이미 한미군사연습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남측의 대화 재개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최근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북한 선수단 1진이 도착한 가운데 북측 국기 게양 문제와 북측 인터넷 사이트 차단 문제 등으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최근 남측 분위기는 북한 응원단은커녕 선수단을 맞을 준비조차 제대로 안 돼 있는 상황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북측이 “군대의 보복타격”, “초토화” 등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남관계를 험악한 지경에로 몰아가고 있으면서도 남조선당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천연스럽게 북남관계개선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안팎이 다른 이중적 행태의 극치로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를 하늘 끝에 닿게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 북측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낸 표현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북측이 남북대화에 선뜻 응해 나설만한 명분을 찾기 어려운데다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남측의 반응도 미온적이라는 점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미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북측 담화가 나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남측은 물론 미국에게도 대북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북측 담화는 “‘탈북자’들과 같은 인간 오작품들을 비롯한 민간반동단체들을 내모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미국의 악질적인 종교단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미국도 겨냥하고 있다.

어쨌든 남북 모두 대화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통해 ‘모든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과 북측의 엄중 경고를 남측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결국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남북 간에 사전 물밑조율을 수행할만한 비선이 없는 조건에서, 더구나 남북관계가 틀어진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입장표명을 주고받는 것은 위험하다”며 “양측이 모두 대화의 의지가 있다면 힘이 실린 물밑조율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북한의 ‘포괄적 세계전략’에 따른 활발한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통전부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추가,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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