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승 / 통일뉴스 전문위원


▲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을 비롯한 71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7월 1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각의 결정에 즈음한 각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해석 변경을 채택한 각의 결정을 규탄하고 이의 철회를 촉구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해석 개헌’ 단행해 군국주의 부활을 알리다

아베 내각의 ‘해석 개헌’ 단행으로 그동안 허명이나마 평화국가라 불리던 일본이 역사의 침로를 군국주의의 과거로 되돌렸다.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승자의 심판이라고 주장하고 패전이 낳은 전후체제의 승인을 거부해온 전전 기득권을 계승한 일본보수파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베 내각은 이번에 헌법 제정 때부터 최대 쟁점이 되었던 집단적 자위권 곧 ‘전쟁할 수 있는 권리’의 행사를 막은 제9조의 해석을 바꾼 것인데, 사실 이 조문은 2003년에 고이즈미 정권이 이라크 전투지역에 자위대를 파병함으로써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세기 전반기에 아시아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고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했던, 역사상 한 번도 평화국가였던 적이 없는 일본이다. 그런 일본이 과거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거나 청산도 하지 않고 일본인들의 이중성인 속내(혼네)를 숨긴 겉보이기(다테마에)에 불과했던 헌법 조문마저 무효화한 것은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시련을 겪은 이웃 나라들로부터 경계의 눈초리를 받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사실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이 그동안 막강한 군사력을 키우는데 전혀 장애로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번에 이른바 해석 개헌을 단행함으로써 군국주의의 부활을 보란 듯이 온 세계에 알린 것이다.

미, 사회주의 계열의 정치세력화 억제 위해 천황제 유지

1946년에 제정된 일본헌법엔 언제든지 개정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쟁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나는 천황제이고 또 하나는 오늘날까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제9조이다.

둘 다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 대한 장기적인 정치 군사 전략에 따라 제시한 맥아더 3원칙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천황제는 새 헌법에서 상징천황제로 바뀌어 살아남았으나, 패전 직후 정치범으로 출옥한 진보세력의 폐지 주장이 드셌다. 현재는 활동이 멈춘 휴화산이라 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폭발할 역사적 마그마가 잠재해 있는 쟁점이다.

미국은 일본 국민들의 동요를 막는다는 점령통치상의 필요와 혁명적 사회주의 계열의 정치세력화를 억제하는 등의 목적으로 전후에도 계속 천황제를 유지시키고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원인으로 되고 있다.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없다는데 어느 누가 책임을 지려 하겠는가.

미, 오키나와 군사기지화 위해 평화헌법 강요

미국이 일본에게 평화헌법을 강요한 배경엔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라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일본을 평화국가로 재생시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그에 따르는 일본 본토의 안전 문제는 오키나와의 미군이 보장해준다는 조건으로 헌법 9조 법안을 제시, 관철시킨 것이다.

의도대로 오키나와에 미군사기지가 완성되면서 이젠 미국에게도 일본 헌법에서 9조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은 오히려 일본의 재무장이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라 9조의 개정까지 바라게 되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일본이 미국의 군사 보조국이 될 때까지만 전략상 필요했다. 이제는 미국이 바라는 것은 일본이 미국에 봉사하는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말고는 어느 나라보다 많은 첨단 무기를 일본에 팔고 있다.

일본은 미일방위협력지침에 따라 긴급 상황 시 미군이 필요하다고 하면 민간 항공기를 제공해야 하고, 미해군의 소해활동이나 해상봉쇄 등을 도와야 한다. 이렇게 되자 평화헌법을 ‘점령헌법’이라면서 패전의 굴욕감을 참아내고 있던 일본 보수파의 생각과 미국의 의도가 대립하지 않게 되고, 그 정치적 마무리를 지은 것이 이번 아베 신조 정권이다.

일본의 전후가 이처럼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계승하여 마침내 군국주의가 다시 백일하에 고개를 들고 일어서게 된 것은 일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책임 또한 못지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는 이웃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과거 청산과 함께 종속적인 대미관계가 청산되지 않고는 일본의 전후가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특히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 같은 패전국 다른 전후사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의 전후사(戰後史)는 일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두 나라는 함께 동맹을 맺고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같은 패전의 시련을 겪고 나서 이제 경제대국이 된 나라들이지만 오늘날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두 나라에 대한 표상은 다르다.

독일은 전후에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과거 청산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보여 왔다. 사회민주당의 브란트 수상이나 슈미트 수상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민주연합 소속의 바이체커 대통령 또한 한결같이 과거역사에 대한 속죄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데 이바지했다.

이와는 달리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시대에 저지른 만행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청맹과니나 다름없다. 그런 일본이기 때문에 독일의 전 수상 슈미트 같은 사람으로부터 부유하게는 되었으나 “국제사회에 진정한 벗이 없는 나라”란 따끔한 충고를 받고 있는 것이다.

1970년 12월 7일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유태인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묵념을 올린 것처럼, 아베 총리가 난징대학살추모기념관이나 위안부소녀상(또는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할 수는 없을까.

독일이 이웃 나라들과 화해하기 위해 자진해서 전쟁범죄와 나치범죄에 대해 보상하고 가해자들을 찾아내 처벌한 것을 절반이라도 따를 수는 없을까.

전후에 독일이 물적 보상을 한 나라는 이스라엘(1952년에 34억5천 마르크 지불)을 시작으로 서유럽에서 벨기에, 네덜란드 등 12개국에 이른다. 독일은 또한 동서관계가 완화되자 폴란드,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에 나치의 잔학행위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도 보상금을 보냈다.

브란트의 진심어린 행동과 이웃 나라들과의 화해는 독일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일본이 전후 70년이 다 되도록 전쟁범죄와 ‘인도에 대한 죄’에 대해 사죄는커녕 사실 인정도 거부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일본, 헌법 탓하던 바이마르공화국 전철을 밟으려 하는가?

예순 아홉 해 전 8월, 우리의 온 겨레를 열광시켰던 파토스는 단순명쾌했다. 일제에게 빼앗긴 자유와 국권을 되찾고 자주독립의 꿈을 이룬다는 감격, 그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은 우리에게 민족의 분단과 격동하는 현대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식민지 예속의 굴레에서 겨우 벗어나니 국토가 동강나고 민족이 갈라졌다.

이 희비가 교차된 운명이 아직도 우리 현대사에서 이어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해방의 감격이 민족통일이란 비원을 수렴하지 못하고 아직도 정점(定点)에 머물러 있는데, 분단의 역사는 무한직선의 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패전국 일본은 미국의 시혜를 입어 온전하게 살아남고 미국의 맹방이 됨으로써 부국강병이라는 메이지유신 이래의 숙원을 이루었다. 어제까지 “오너라 맥아더, 오기만 하면 지옥에 처박겠다”고 노래하던 일본인들이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 되어 온 맥아더를 그들의 천황에게나 바치던 예로 맞이한 덕택이다.

일본인들의 정신구조에 내재된 향일성 성향이 비루한 아시아를 짓밟고 서양 제국주의를 본받자던 ‘탈아입구론’과 ‘아시아맹주론’으로 구체화되어 오랫동안 이웃 나라들을 괴롭힌 역사를 일본은 갖고 있다. 일본은 이제 그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웬 전쟁을 또 하겠다고 헌법해석을 바꾸는 소동을 벌이는 것인가.

그래서 지금 아베 정권의 일본이 1930년대 초의 독일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의 눈초리를 주변국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도 선진적인 헌법을 가지고 있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헌법 때문에 나라가 어렵다면서 헌법 탓을 하다가 나치스가 등장하도록 한 역사의 선례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에 대한 책임의식 없다면 일본의 내일은 ‘지나간 미래’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웃 나라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고 선린우호 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아무리 무력을 키운다 해도 이웃과 적대하는 관계가 되면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 더구나 이웃에 믿을 만한 진정한 벗이 없다면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비극에서 우리는 군사력만으로는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한 현실로 보았다. 지금 일본이 ‘과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어 ‘미래 책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본의 안보 과제는 이웃 아시아 나라들과 쌓인 원한을 풀고 화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원인이 된 한반도의 분단은 일본의 안보,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바로 이어져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어있는 한 일본의 과거 역사는 청산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것이 한반도 분단 상황을 일본이 부화뇌동하여 냉전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그 날, 일본 열도가 분단되지 않고 대신 한반도가 분단된 역사의 역설에 대한 통찰과 책임의식이 없다면 일본의 내일은 ‘지나간 미래’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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