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미경 / 민주노총 통일국장

 

▲ 출국에 앞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가자들이 결의를 다졌다. [사진-엄미경]

광복 69년이 되는 해이다.
연초부터 나라 안에서는 통일대박으로 요란스럽더니, 나라 밖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보유를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고, 한국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침략전쟁 시기 역사의 반성과 보상, 진실이 규명되기 전에는 일본은 결코 보통국가로써의 군사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일본의 재무장’. 이 분노가 양대노총을 일제 침략기 시절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찾아 나서도록 만들었다. 

8/22~24일, 2박3일간 도쿄와 교토 일대를 방문하면서 양대노총 참가자들은 슬픔과 분노에 앞서 깊은 죄의식과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원하지 않았던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온 조선인들, 강제 노동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았던 조선의 노동자들, 성노예로 치욕적 삶을 강요받았던 조선의 여성들...

그러나 식민지 시절의 과거사가 아니었다.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그들의 삶과 죽음은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 현재까지 대를 이어 2대, 3대로 차별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도쿄에서 한일단체 간담회가 토론으로 진행됐다. [사진-엄미경]

▲ 도쿄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엄미경]

8/22(금), 도쿄에서 진행된 한일단체 간담회는 과거사이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차별과 탄압의 문제를 토론했다.

- 우키시마마루호 사건 <동경진상조사단>, 조선인 노무동원(강제연행)과 미불임금문제 <전국네트워크 사무국>, 우천사의 조선인 유골문제 <동경진상조사단 사무국>, 동경대공습 조선인 희생자 <동경진상조사단>, 고교무상화 및 조선학교 차별 문제 <조선학교 배제 반대 연락회>...

전쟁의 대가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성별, 나이, 국경을 초월하여 처참했지만 그 진실규명과 희생자 유골문제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차별과 왜곡으로 역사의 그늘 속에 일방적으로 묻혀 있다.

제26회 조선인 전쟁희생자 추도회는, 이른바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 단바 망간 광산 앞에서 "일제 강제 징용 진상 규명하라!" [사진-엄미경]

▲ 단바 망간 광산 갱도. [사진-엄미경]

8/23(토), 단바시 망간 광산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무덤이었으며 산 역사였다. 단바시 망간 광산 일대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는 3천여 명에 달한다. 갱도가 무너져 그 자리에서 숨진 노동자, 힘든 노동으로 숨진 노동자, 도망가다 맞아 죽은 노동자... 그런 조선인 노동자의 역사를 알리고 남기기 위해서 ‘단바 망간 기념관’은 오늘날까지 힘겹게 유지되고 있었다.

▲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들을 위한 상징물. [사진-엄미경]

8/24(일),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 위령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곳에서 만나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고향으로 되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던 조선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키시마마루호에 탑승했다. 당시 그 탑승 인원이 얼마나 됐는지 진실은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았다. 고향(부산)으로 돌아 갈 유일한 배였으니 수많은 조선인들이 그 배를 탔을 것이라는 추정만 있다.

1945년 8월 24일 부산으로 가야했던 우키시마마루호는 난데없이 마이즈루 항구로 들어섰다. 그리고 항구를 300m 남짓 남겨두고 우키시마마루호는 폭발했다. 그 폭발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기름 유출과 죽은 시신과 살고자 바둥거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인 죽음의 바다에서 그들을 구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마이즈루의 어부들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희생자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며 37년째 우키시마마루호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가해 국가의 국민으로써 희생자를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것은 우리의 도리입니다.”

나라를 잃은 노동자 민중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분노했고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 우키시마마루호를 삼킨 바다는 말이 없다. [사진-엄미경]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역사상 처음으로 강제징용 희생자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양대노총만으로는 69년간 묻힌 역사를 밝혀내고 사죄와 보상,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내는 투쟁을 진행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연대하여 함께 해야 한다. 연대에는 국경이 없다. 이념도 없다.

끝으로, 광복 70년이 되는 해에는 더 많은 다양한 자리들이 만들어지길 기원한다. 그 중에서도 남북의 노동자들이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들의 역사를 함께 밝혀내고 함께 추모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내는 길에 남북의 노동자들이 어깨 걸고 함께 한다면, 어두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넋이 해방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 않겠는가.

(수정,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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