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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런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아”『경계선』독일어판 낸 이영빈 목사 부부
독일=이은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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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7  10: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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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계선』 독일어판을 출간한 이영빈 목사. 서재에는 이응로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은희 통신원]
지난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이영빈 목사와(88)와 김순환 선생(86) 부부가 함께 낸 독일어판 『경계선』(Grenzgaenger, 2013)과 김순환 선생의 자료집 『거센 바람을 거슬려가며』(2010) 출판을 함께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경계선』은 1996년 한국 내 ‘도서출판 고난함께’에서 출판된 책으로 2005년 증보판이 발행된 바 있다. 이 책은 이영빈 목사가 1955년 독일로 유학한 이래 동포사회사역자로서, 독일교회 목사로서, 통일운동가로서 살아온 노부부의 활동의 기록일 뿐 아니라 그 활동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듬뿍 담겨있는 책이다. 이에 앞서 1994년에는 『통일과 기독교』가 ‘신앙과 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두 분을 찾아뵈었다. 이영빈 목사의 서재에는 이응로 화백의 작품(사진)이 둘 걸려 있었다. 오른쪽 작품은 이 화백이 본에서 이영빈 목사와 교류하던 시기의 작품 <이집트로 피신하는 예수>이며 독일어판 『경계선』의 표지화로 쓰인 그림이다. 왼쪽 그림은 이 화백이 파리로 간 후 서양의 전격적인 추상화에 동양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으로 이응로 화백과 이영빈 목사 사이의 우의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노부부의 식탁 뒤로는 흑백사진의 추억들과 고향산천 풍경화가 걸려 있다.

이영빈 목사 부부는 동포사회 초기에 간호사 광부들이 노동환경과 체류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적극 봉사하며 활동하였지만, 동포사회 속에 조작된 이데올로기와 철조망으로 인해 ‘한인회’ 중심의 동포사회에서는 유리되어 있다. 책 출간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나마 찾아뵙고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동지와 같은 부부

□ 풍경 :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 이영빈 : 목사로서 공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지라 기록을 해 둘 필요를 느꼈습니다. 일부내용은 주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료로서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낸 독일어판 『그렌츠겡어』(Grenzgaenger)는 독일교회 측에서 자료를 남기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 햄스터 기질을 발휘해 3년에 걸쳐 탈고한 자료집 『거센 바람을 거슬려가며』의 독일어판을 최근 발간한 김순환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이은희 통신원]
■ 김순환 : 난 햄스터 같은 기질이 있어요. 뭘 물어다 놓고 절대 버리지 못하는 속성이지요. 이사를 다니면서도 별의별 자료를 다 들고 다녔어요. 이 자료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정리하였습니다. 거의 3년 걸렸습니다.

잊혀진 사람

□ 풍경 : 한인사회 원로이신데 ‘한인회’ 모임에선 잊혀진 분 같으십니다.

■ 이영빈 목사 : 이미 옛날에 느낀 일입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4년 동안 4천 명 간호사와 3천 명 광부들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간호사와 광원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하며 매일 백 킬로미터에서 천 킬로미터를 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겔젠키르헨에서 20명 노동자들이 병가를 자주 낸다는 이유로 예고도 없이 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노동법에 따르면 병가 때문에 해고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계약(Rotationsvertrag)에 따르면 3년마다 신선한 노동력을 한국에서 공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노동력 수출을 한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 개인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노동자들이 고용주와 문제가 있을 때 공관에서는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노동력 수출정책에 따라 독일 맘에 들고 안 들고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 광부이지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노동을 해 본 이들이 거의 없어 쉽게 상처를 입거나 아파 드러눕기 일쑤였습니다.

마침 내게 구스타브 하이네만 변호사 사무실 같은 위력 있는 조커가 있었지요. 하이네만의 변호사 사무실은 당시 상당히 유명하였는데 노동자 문제를 전문적으로 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한 번도 고용주를 위해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하이네만 변호사 사무실에 한국노동자 무더기 해고 건을 넘기게 되니 광산기업에서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하이네만 사무실이 우리들의 위탁을 받아서 고용기업에 전화를 했더니 깜짝 놀라서 내게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노동자들과 변호사 사무실 사이를 중재한 것이냐 하면서 사정을 하소연했습니다. 원자력으로 바꾸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며 한국에서 한 달 생활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내게 사정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변호사와 이야기하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해고처리가 바로 취소되었습니다. 쾌거였지만 이 일로 대사관측에서는 이영빈 목사가 좌파 목사라고 소문을 퍼뜨렸지요.

3년 후에는 귀국하여야 한다는 3년 로테이션 계약은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계약은 바꿀 수 없었지만 광부들이 3년 노동계약을 마치고 귀국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 년 반 동안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노동국장과 협상한 결과 3년 계약은 변경할 수 없더라도 1년 반에서 2년 정도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해당된 사람들은 내가 도움을 준 것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

동포사회 속의 철조망

□ 풍경: 12년 전 뒤셀도르프에서 어떤 분이 목사님이 편지를 당국에 써 주시며 도와주셔서 체류문제가 해결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영빈 목사가 독일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 이영빈 : 아,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간호사와 광원노동자가 결혼한 경우 간호사는 독일병원에서 붙들고 싶어해서 꼭 계속 일하게 하고 싶어해서 비교적 체류 문제가 잘 해결되었지만 남편이 광부인 경우 생이별 압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 풍경 : 한인사회 초기에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한인사회에서 따돌림받는다는 느낌이라든가 그런 소외로 인한 외로움은 없으신지요?

■ 김순환 : 처음에는 좀 안타까운 느낌도 있었지만, 우리는 정의로움을 위해 행동하였습니다.

■ 이영빈 : 동포 개인의 문제를 위해 일하는 시기는 60년대 말에 마무리되었습니다.

□ 풍경 : 오늘날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통일운동가로만 알고 있지만 한인사회 초기에는 노동문제 이주문제에 많이 관련하셨군요.

■ 이영빈 : 많은 동포분들이 우리에게 고마워했고 서로 인사를 잘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70년대 말부터 북의 교회와 대화를 시작하자 우리가 공산주의자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공관에서 심어놓은 철조망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사람들이 우리와 잘 지내면서도 공공연하게는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고 우리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려 들지 않곤 합니다. 우리에 대해 좋게 말했다간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화를 내지 않습니다.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순환 :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해서 그런 것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쓸 것입니다"

   
▲ 동지이자 부부인 이영빈 목사와 김순환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이은희 통신원]
□ 풍경 : 분단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모든 문제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남북의 문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순환 :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북에 대해 나쁜 말만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며칠 잠시 다녀와서 그 사회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서로 격려하며 만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 풍경 : 다음 책을 계획하십니까?

■ 김순환 : 또 쓸 것입니다. 어떤 책을 쓸까요? 다음에는 좀 재미있는 동화나 소설 같은 것으로 쓸까요?

* 이 인터뷰 기사는 독일 이은희 통신원이 독일 동포신문 <풍경>에 게재했던 것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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