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산과수농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 6월 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양시 사동구역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을 현지지도했다. 그는 새로 건설 및 개건한 남새(채소) 온실들을 돌아보면서 생산 실태를 파악한 후 “온실 남새재배의 과학화, 집약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것을 주문하고 이 농장을 “온실 남새생산의 전형 단위로, 온 나라의 본보기 농장으로 꾸리자는 것이 당중앙의 결심”이라고 강조했다.

야채 생산 농장만 2번 방문

김 제1위원장의 올해 첫 협동농장 방문이다. 지난해 김 제1위원장은 6월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송학협동농장을 시찰했다. 2012년 4월 공식 취임 후 김 제1위원장이 협동농장을 시찰한 사실이 북한 매체에 보도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협동농장을 공식 방문했다.

주목할 대목은 김 제1위원장이 방문한 두 협동농장이 모두 채소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평양 시민을 위한 남새전문 생산기지’이다. 송학협동농장도 새로 채소온실이 건설돼 태양열로 배추, 상추, 쑥갓, 오이, 토마토 등을 사시사철 생산하고 있는 농장이다. 이 농장을 방문했을 때 김 제1위원장은 “지금 전국적으로 남새(채소)온실 건설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것이 현실에서 은(보람있는 결과)이 나고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이곳을 찾아왔다”라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북한은 2012년 평양시에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새로 만든 후 야채 생산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과학기술지도서’를 전국의 온실에 보급하는 동시에 도, 시, 군들에 건설할 표준화된 온실 설계안을 내려보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도, 시, 군에 ’채소온실’이 건설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즉 김정은 제1위원장의 두 차례 협동농장 시찰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적극 추진되고 있는 온실 건설 실태를 점검하고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쌀과 함께 야채, 고기 문제 해결 추진

▲ 북한의 선전 포스터. 과일과 채소 생산의 과학화를 독려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농업 발전의 중심인 협동농장에는 현지지도를 가지 않고 있다. 취임 후 두 차례 협동농장을 방문했지만 그나마 식량증산과는 거리가 있는 야채 생산을 독려했을 뿐이다.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자주 협동농장을 방문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와 비교된다. 그는 왜 ’주공전선’의 현장인 협동농장을 현지지도 하지 않는 것일까? 지난 2년 간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강조했다. 인민의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과제였다. 북한 언론매체들도 “먹는 문제는 쌀과 고기의 해결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만 보면 식량보다는 오히려 야채와 고기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2011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함께 신설된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현지지도한 후 전국 협동농장에 남새온실을 짓도록 했고, 지난해와 올해 협동농장을 방문해 온실 실태를 점검했다. 영양적 측면에서 비타민 섭취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과수농장의 확대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2009년 평양에 대규모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건설한 후 이 농장을 본보기로 농장의 과수밭 조성과 과수농법 등을 전국에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6월과 지난 7월 23일 강원도의 고산과수농장을 현지지도했다. 고산과수농장 확대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주요 건설 과제로 제시됐다. 북한은 고산과수농장과 같은 과수밭들을 2016년까지 모두 30만 정보를 새로 건설할 계획이다.

대규모 축산단지 조성과 수산업 강조

▲ 전 국가적으로 개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축산단지 세포등판. [자료사진 - 통일뉴스]
다음으로 김 제1위원장은 대대적으로 축산업 장려에 나섰다. 이를 위해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세포등판 개간을 제시했고, 5만여 정보의 땅을 1년도 안 걸려 개간을 마쳤다. 지난해 10월 1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세포등판 개간 사업에 참여한 근로자들에게 직접 감사를 보냈기도 했다.

세포등판은 강원도 북측 지역 세포군, 평강군, 이천군에 이어지는 대규모 고원지대다. 개간된 5만 정보(1억 5,000만평)는 서울시 면적(약 1억 8,000만평)에 근접하는 규모다. 세포등판에는 1단계로 자연 목초지, 인공 목초지, 무.돼지감자.사탕무밭, 방풍림, 저류지, 수백 동의 축사, 20여 동의 축산물 가공기지, 1천 세대 주택단지 등이 들어섰다. 현재는 축산기지와 축산물 가공기지 건설을 하고 있으며 2015년이 완공 목표라고 한다. 대규모 축산단지의 조성은 영양적으로는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수산업에 대한 강조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6일에는 평양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열었고, 김 제1위원장도 올해 첫 현지지도로 북한군 수산물 냉동시설을 찾았다. 북한은 올해 ‘수산물 대풍’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김 제1위원장의 수산업 증산 방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당시 ‘마지막 친필문건’이 주민들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방안에 관한 것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김 제1위원장은 “죽으나 사나 수산을 치켜세우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농업 현장이 활기를 띠고 강원도 고산 과수농장과 세포 축산기지가 건설 중인 상황에서 “물고기 문제까지 풀리게 되면 인민 생활에서는 커다란 향상이 이뤄지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식량난이 여전히 심각하고, 많은 주민들이 기아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외부 사람들에게 이러한 김 제1위원장의 행보는 의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식량생산량의 추이를 보면 북한의 정책적 방향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량 생산 자급 수준에 도달

▲ 지난 연말 유엔의 북한 식량생산 추정치. [자료사진 - 민족21]
현재 전문가들이 북한 식량생산량 통계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하는 것이다. 두 기관은 북한을 방문해 다수의 농장을 실사하고 북한 농업성의 자료와 종합해 매년 <북한의 작황 및 식량안보평가 특별보고서(Special Report: Crop and Food Securit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K)>를 발행한다. 지난해 11월 이 기관이 발표한 2013/2014년(이모작을 통한 2013년 가을 수확분+2014년 봄 수확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식량생산량은 503만톤(텃밭과 경사지 수확 포함)이다.

2010/2011년 425만톤, 2011/2012년 445만톤, 2012/2013년 484만 4,000톤으로 추정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최저치를 기록했던 1996년 260만톤에 비하면 2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식량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식량부족분도 줄고 있다. 북한 인구는 2013년 12월 현재 약 2,480만 명으로 추정된다. 북한 정부는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 목표치를 176kg(도정 후, 도정 전 213kg)으로 정하고 있다. FAO는 2013/2014년도 세계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을 151.7kg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경우 2014년 1월에 중국인 식생활 지침에서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을 135kg으로 제시했다. 우리의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은 2011년 기준 126.7kg이다.

북한 정부의 목표치에 따르면 2014년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곡물은 약 436만 5,000톤이다.
여기에 사료용, 종자용 곡물이 필요하고 수확 후 손실도 감안해야 한다. FAO/WFP는 사료용 옥수수와 감자를 12만 톤, 종자용 곡물을 20만 9,000톤, 수확 후 손실분을 72만 6,000톤으로 계산했다. 전체를 종합하면 542만 톤이 필요하다. 전체 생산량의 7.8%에 해당하는 39만 톤이 부족한 셈이다. 식량자급률을 계산하면 92.8%가 나온다.

FAO/WFP의 보고서는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을 174kg으로 보고 계산하여 34만 톤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0/2011년 FAO/WFP의 보고서에서 86만 7,000톤으로 부족분을 추정한 것에 비해 크게 개선된 셈이다. FAO/WFP와 달리 최근 미국 농무부(USDA)가 공개한 <2014 식량안보평가>는 북한의 올해 식량부족분을 7만톤으로 추정했다. 미 농무부는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2010년 100만톤에서 2011년 81만톤, 2012년 84만톤, 2013년 44만톤으로 완연한 감소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통계 주체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9만~39만톤 가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치는 다르지만 북한의 식량부족량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추세는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수치는 북한이 30만톤 정도를 수입하고, 일부 대외지원을 받을 경우 통계상으로식량부족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저평가된 감자 생산량, FAO/WFP 통계에서 빠진 군대 산하 농장 수확량, 개인.공장별로 수입한 식량 등을 감안하면 북한의 총 식량확보량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북한은 자체적으로 지난해 식량총생산량을 600만톤 정도로 집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북한은 올해 식량 생산목표를 650만톤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통계와 FAO/WFP의 통계를 종합해 볼 때 북한은 기준량만 놓고 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을 자체 생산했거나 일부 수입을 통해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 농무부도 앞으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북한의 식량부족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전히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는?

▲ 대규모로 조성된 대동강과수농장. [자료사진 - 민족21]
그러나 여전히 북한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북한 식량사정이 어렵다고 평가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지역별, 계층별, 직업별로 식량 배급 및 공급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평균으로 따지면 부족하지 않지만 평양과 지방(공급의 우선 순위), 생산목표치를 달성한 협동농장과 그렇지 못한 협동농장(협동농장의 생산력 차이), 제대로 가동되는 공장과 그렇지 못한 공장 사이에 공급량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고, 공급부족량을 자체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구매력이 있느냐에 따라 총 개인소비량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북한 주민이 주식으로 삼는 쌀과 옥수수 생산량만 놓고 보면 여전히 필요량에 미달하고 있다. FAO는 2013/2014년도에 북한은 쌀(190만톤)과 옥수수(230만톤+수입 20만톤)를 합해 총 440만톤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FAO가 추정하는 연간 최소 소요량에서 1백만 톤 정도 부족한 양이다. 이것은 총 곡물생산량에서 밀과 보리, 감자, 콩 등을 제외한 것이다.

북한은 부족한 주식(쌀과 옥수수)을 보충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감자혁명’을 내세우며 감자 생산을 크게 늘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감자 생산과 소비를 장려하고 있지만 인민들이 감자 먹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처럼 북한 주민들은 감자를 주식 대용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즉, 전체 곡물생산량에서는 자급하거나 자급에 근접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주식 생산량에서는 아직 크게 부족한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체 곡물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시장에서의 쌀과 옥수수의 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시장에서의 쌀 가격은 기본적으로 중국 쌀 가격에 연동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지만 북한 내의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큰 폭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쌀을 찾는 구매층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상인들의 사재기도 하나의 요인이다.

따라서 북한이 곡물가격을 안정시키고 곡물의 수매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전체 곡물생산량에서 주식인 쌀과 옥수수의 생산비중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또한 곡물 증산과 함께 균형적인 영양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FAO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1,700만명의 하루 섭취 영양분이 일반 성인의 필수 영양분인 2,100칼로리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는 규모다. 이 통계는 과장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북한 주민의 상당수가 여전히 성인 필수 섭취 영양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 어업, 축산 분야의 남북 협력 필요

그런 점에서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북한이 대규모 야채 온실과 과수농장을 건설하고, 축산단지 건설과 수산업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수매가격의 현실화, 분리관리제의 강화와 포전담당책임제 도입 등을 통해 양적으로 농업생산량을 끌어올리는 한편, 대규모 야채․과일․버섯․축산 단지 조성을 통해 질적인 영양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식량 자급과 주민 영양 개선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다. 비료 증산, 수로 신설 등 농업 기반 조성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협동농장 현지지도는 한창 진행되고 있는 농업개혁이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는 시점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은 1-2년 안에 100% 자급할 수 있는 곡류 650만톤 생산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주식인 쌀과 옥수수 생산량이 자급(정부의 수입 능력 포함) 수준에 도달하고 야채와 과일, 고기를 충분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종합적인 청사진을 세우고, 농업개혁 등을 통해 그러한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일회성 대북 지원이 아닌 장기적인 농업, 어업, 축산 분야의 남북 협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임 셈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