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림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소용없다. 그저 박물관에 처박혀 사람들의 눈요기 감 밖에는 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궁중회화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기 위함이다.
현대의 미술은 아주 직관적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이끌어내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조형성은 명쾌하다. 또한 작품의 내용도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 또한 남녀노소 관계없이 쉽게 접근하고 수용한다.
이것은 시대의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은 엄청난 속도와 방대한 사이버 공간이 지배하는 디지털의 시대이다. 이런 환경에 따라 대중들의 정서나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그림 한 점을 놓고 여러 선비들이 둘러 앉아 감상을 하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미학이나 작품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의 생활환경에 맞지 않으면 소통되기 어렵다.
미술작품의 질적인 수준이 높다고 하지만 인터넷이나 매스미디어에서 대량으로 방출하는 이미지의 홍수를 넘기는 불가항력이다.
정치인이나 장사꾼들은 오래 전부터 그림이 가지고 있는 주술성, 대중성을 간파하여 이용했다. 미술이 창조한 가상의 시공간과 사람이 보는 시공간은 거의 사촌관계이다. 엄청난 물량의 가상 이미지를 쏟아 부으면 사람들이 보는 현실의 세계도 바뀌어 버린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림(이미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넓히고자하는 욕구가 있다.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보고 체험하는 것 외에는 없다. 보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사람관계의 대화로 이어진다. 온 몸으로 체험하는 일은 어렵지만 보는 것은 쉽다. 보는 일과 체험하는 것의 관계에서 언제나 보는 것이 우선이다.
‘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보는 행위’가 곧 지식을 만들고 지식은 가치관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당연히 가치관은 행동을 통해 구현된다. 그러니까 ‘보는 행위’가 곧 실천적 행동을 유발하는 셈이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학문이다. 그림이 창조하는 세계는 언제나 아름답고 꿈꾸는 미지의 세상이다. 사람이 생각과 노동을 통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세상은 미술작품, 혹은 그림(이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궁중회화는 왕족, 양반, 백성들을 포함한 조선이란 국가가 추구한 이상세계가 담겨있다.
수묵산수화에는 선비들이 꿈꾸는 이상세계가 그려져 있다.
민화에는 백성들이 추구한 ‘부귀영화, 불로장생’이라는 도교적 세계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그림이 현대적 가치를 가지고 현대인들의 미래를 담아낼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당대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당대의 철학은 군사, 정치, 경제라는 요소로 드러난다. ‘군사적 패권, 금융자본주의’라는 당대의 철학은 우리그림과는 별 관련이 없다. 또한 철학을 반영하는 미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그림은 현대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의 구현이라는 ‘부귀영화와 불로장생’이다.
엄밀히 말하면, 궁중회화와 민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성(聖)과 속(俗)의 표정을 가진 하나의 얼굴이다.
지금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보다는 ‘부귀와 불로장생’을 담은 그림인 ‘민화’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민화의 ‘부귀영화’는 무제한의 소비를 통한 허영과 사치라는 금융자본주의와 맞아 떨어지고, ‘불로장생’은 신의 영역인 늙음과 질병,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본주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대원근법에 따른 시공간의 확장, 화려한 색상과 간결한 형상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 궁중회화는 전시장 벽면을 다 채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또한 미려하고 진한 색상을 구사해 어느 전시장에도 잘 어울린다. [자료사진 - 심규섭]

민화가 유행하는 것은 돈 많은 부자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민화작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을 나오고 해외를 다녀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돈과 권력, 명예와 지식을 가지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부자들이 사자춤이나 도자기와 녹차와 같은 중국적인 것을, 유럽의 부자들이 그리스로마 문화를 추구하고, 일본의 부자들이 훈도시를 입고 신사(神社)에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이 동대문 디자인센터에 전시되었을 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관람한 사례가 있었다. 전시된 작품은 수묵화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주자성리학의 가치인 ‘엄격한 예법과 청렴과 청빈’이 담긴 어렵고 불편한 그림을 보기 위해 비싼 관람료를 내고 시간을 낸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전시된 작품이 거의 국보급이라 돈 구경을 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정체성의 추구와 자존심의 발로라고 보는 게 맞다.
민화가 현대인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면서 수십만 명의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숫자는 서양화를 취미미술로 배우는 인원과 맞먹는다. 그림을 배우며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이 곧 미술작품을 구매하는 최대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화는 궁중회화를 바탕으로 대중화된 그림이다.
원초적 욕망을 담았기에 대중성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조형성이나 규모, 질적인 문제에서 궁중회화에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민화가 인기를 누린다면 민화를 통해 궁중회화를 발견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궁중회화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가장 큰 문제는 궁중회화가 민화에 비해 창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따라 배우기도 어렵다. 당연히 창작된 작품도 거의 없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그럼에도 궁중회화는 현대성을 넘어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궁중회화가 왕실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보물은 모두 웅장한 성당에 모여 있다. 왕권의 시대에는 왕궁에 모든 보물이 집중된다. 조선시대의 가치와 보물은 모두 궁궐로 집중되었다. 조선의 궁궐은 조선 최고의 권력자와 지식인들이 모여 정치를 하는 곳이다. 당연히 최고의 미술작품, 최고의 음식, 의복, 장신구, 외국 사신들이 가져온 보물 따위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느 나라를 가든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은 그 나라의 가장 큰 종교시설이거나 왕궁이다.
궁중회화는 국립미술기관인 도화서, 차비대령화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창작된 그림이다. 궁중화원은 엄격한 시험을 거쳐 선발된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다. 또한 수 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검증된 미술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생존을 넘어 생활이라는 질 높은 삶을 추구한다. 좋은 것이 만들어지면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누구나 따라 한다. 왕과 귀족이 누리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자신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둘째, 궁중회화에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민족의 내용을 담으면 민족 구성원들이 좋아하고, 종교적 내용을 담으면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생명사상’은 인류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이다.
궁중회화에는 특정한 종교나 민족성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기독교나 불교, 민족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도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
확대원근법이란 조형원리에 의해 구현된 궁중회화는 생명존중, 공동체의 가치, 평화, 공생공영이라는 보편적 철학을 담고 있다. 확대원근법은 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묶어 표현하는 조형원리이다. 서구의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동양의 공동체가 더 많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생명’이 미래의 중심사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러한 내용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수용된다. 지식인들이 좋아하면 중산층이 수용하고 대중들이 따라한다.

▲ 궁중회화는 규모가 크고 직관적인 그림이다. 단번에 사람의 시선을 잡아내는 간결하고 명쾌한 조형성을 가지고 있다. 위의 사진은 예를 들기 위해 가상으로 만든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셋째, 규모(規模, scale)가 크고 직관적이다.
궁중회화는 길이가 3m, 높이가 2m에 이르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정도의 크기면 대작이다. 미술에서 작품의 규모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림 속의 시공간이 아주 넓고 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규모가 손바닥만 하게 작으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흔히 서양의 그림은 크고 동양의 그림은 작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궁중회화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편견이다. 중국그림에도 큰 그림이 있지만 규모가 크면서 동시에 선명하고 진한 채색화는 찾기 어렵다.
만약 궁중회화 작품을 서양화처럼 넓은 액자에 넣으면 한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커진다. 선명하고 진한 채색에, 웅장하고 역동적인 자연을 담은 거대한 그림 앞에 선다면 누구라도 압도당할 것이다.
또한 궁중회화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누구라도 척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어렵고 난해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현대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세상에서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면 도태한다. 좋은 물건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저 그런 물건이 요즘 말로 ‘대박’이 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매체광고, 혹은 정치적 구호는 구구절절한 설명과 논리가 아니라 직관성에 의존하고 있다. 직관은 논리나 이성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논리와 이성을 하나의 지점으로 집약시킨 것이다.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십장생도, 궁중모란도, 책가도, 궁중화조도 따위는 화려한 색상과 정형화되고 간결한 형상, 시각적 중독을 일으키는 반복성과 대칭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오랜 전통과 천재적 화가들에 의해 형상은 간결하게 다듬어지고, 불필요한 요소나 색상은 정리되었다. 그래서 화면을 키우거나 줄여도, 색을 바꿔도 원형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조형성을 획득했다.
규모가 크고 직관적인 작품들이 현대미술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또한 거리나 광장, 관광, 도시환경, 공공기관, 공공장소를 장식하는데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직관성이 강한 그림을 직관적이지 않게 만든 경우도 있다.
인사동 입구에는 타일로 붙여 만든 오봉도가 있다. 규모가 크긴 하지만 궁중회화의 직관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노숙자들의 쉼터가 되어 버렸다. 만약 오봉도의 각 부분을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조명을 넣는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될 것이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밤에는 내부조명으로 은은하게 빛날 것이다. 이런 작품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인사동 입구에 장식되어 있다면 세계적인 만남의 장소, 사진 명소(photo zone)가 될 것이다.

넷째, 디지털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
궁중회화는 당대의 천재적 화가들에 의해 창작되었지만 서명이나 낙관이 없다. 그것은 도화서나 차비대령화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공적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창작한 작품은 지적재산권(license)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용이 제한된다. 궁중회화는 애당초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공공성이 붙어 있다는 것은 공동체의 모든 성원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디지털 문화의 특징은 인터넷을 통한 대량 복제와 수용이다. 궁중회화는 극단적으로 정형화되었기 때문에 복제가 용이하다. 본그림만 있으면 쉽게 재창작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그림이라도 모두 궁중회화의 본질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궁중회화의 특징은 18~19세기 민화가 대중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그림을 통해 쉽게 복제가 되고, 다시 다른 그림과 결합하면서 수많은 종류의 그림이 생겨나 소통되었다.
민화가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은 비단 본그림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값싸고 다루기 쉬운 미술재료의 공급이 있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값싼 화학물감과 화지 때문에 그림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회화의 출현은 어렵고 난해한 미술을 쉽고 편하며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디지털문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활에서 필수조건이 되었다.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약간의 프로그램만 이용하면 자신의 정서에 맞는 그림으로 바꿀 수도 있다.
디지털로 표현하는 그림은 규모나 변주로부터 자유롭다.
10m 이상의 크기도 쉽게 창작할 수 있으며, 약간의 조정만으로도 수 십 점의 변주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원본과 전혀 차이가 없이 무제한의 복제가 가능하다. 물론 복제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없다.

궁중회화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수묵화나 민화에 대한 수많은 전문서적과 논문들이 있지만 궁중회화는 그저 궁궐을 장식했던 그림 정도로 머물고 있다.
궁중회화가 깨어나는 것은 화려한 진채화가 부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그림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에 알려지고 북한의 조선화와 통합을 이루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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